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할까
우근 김 정 희
소리없이 침묵하고 아무것도 없다
내가 없어져 버리면 사그라져 버리면
재는 남아 있을까
너를 위하여 살아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할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내가 바라는게 무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조용히 말없이 없어져 버리고 싶다
새가 한마리 내 곁에 와서 말한다
알아듣지를 못하는 말로 지껄이며
나는 네가 아니야
말을 해주었어야지
나를 모르고 나를 안다고
이끼가 벌써 깨어나서
살그머니 피어오르는 안개에게 말하는 소리
나는 절대 네가 아니야
세월이 가고 있다고 금방
누구나 다 알고 있지
구름도 알고 있고 바위도 알고 있어
나무야 너는 말을 할줄 아니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할까
눈물 한사발 흘려보내 주면
가시덤불이 무지개가 된다면
말라버린 가슴으로 눈만 뜨면
새고있는 미래는 그 미래는 어떠니
다발로 갔다주면 남을까
구멍 뚫려버린 바가지로 세어 보아도
새고있는건 보이지 않고 흰 머리카락 숫자만 늘어나고
새는 날아가 둥지를 찾는데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할까
푸르른 창공 닮아서 푸르게만 보이는
한 순간이라도 나는 그걸 잊지 않는다
공유할 줄 알아야 한다
가릴것을 가려야 한다
아무리 외쳐도 모르면 이제는
나는 없는 것으로 알면 된다
너를 위하여 나는 없다
나는 그렇게 한다
숭례문 49제는 3월 29일에
우근 김 정 희
온 국민을 가슴 아프게 만들었던 숭례문 전소가 벌써 한달이 되어버렸습니다.
200년 3월29일 숭례문 49제를 합니다.
숭례문은 600년을 지켜온 우리의 국보 제1호 입니다.
언제부터를 말하는지하며 49제의 의미를 어제 맛대로 촌닭에서 칠향계로 저녁을 먹으며 8분의 선생님들과
이야기 했습니다.
가슴저리며 울분했던 대한민국이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숭례문 복원은 지금 어떻게 진행이 되고있는지
저는 이제 이런 가슴아픈 슬픈역사를 다시는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임진왜란때도 버텨주었고 6.25사변때도 아무일이 없었던 남대문은 풍수상으로 보더라도 남대문이 갖는 의미는
대단한것이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서울 성곽중에서 제일오래된 목조건물이 전소되어버렸을때 저는 내내 울음이 나와서 아무말도 하기싫었습니다.
잃어버리고 나면 그 소중함을 안다고 합니다.
한번 없어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문화재에대해서 다시 한번 더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2008년 숭례문 49제를 천신암 김혜숙선생님이 행사를 하신다고 합니다.
블로거 여러분들께서 오셔서 같이 동참해주셔서 49제를 널리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 전소의 아픔을 여기에 오셔서 같이 해주시면 해서 남대문에 전 사진과 전소후의 사진을
보여드립니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아픈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하늘에 기도합니다.
협찬은 맛대로 촌닭 최원호 사장님께서 하십니다.
어제 중국에서 오후2시에 돌아오셔서 바로 대학로에서 프랜차이즈 상담을 하시고 다시 방화동 본사에서
상담을 하신다고 제차에 타시면서 만주를 다녀오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맛대로가 세계최고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노력하시는 사장님을 보면 서
아 21세기에 우리는 세계최고가 되는날이 분명 오리라 생각합니다.
종 목 |
국보 제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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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서울숭례문(서울崇禮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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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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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1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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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일 |
1962.1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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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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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
조선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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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유 자 |
국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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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리 자 |
중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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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설명 | 전문설명 |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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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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