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을 만드신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故 이태석신부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리는 건.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겁니다.
이런 훌륭한 故 이태석신부님이 계시기에 그래도 한국이 지탱해 나갈 수 있나 봅니다.
위를 보아도 옆을 보아도 앞을 보아도 다 그렇고 그런 사람 뿐.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 ---.
어쩌면 저도 그중에 한 사람일 뿐 입니다.
故 이태석신부님 영상을 두번 보았습니다.
故 이태석신부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사레지오를 다녔습니다.
언제부터 이름이 살레시오로 바뀌어졌는지도 잘 모릅니다.
사업에 한창 열중할 무렵 고등학교 후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에도 살레시오 동창 모임이 있는데 나와서 무언가를 맡아 달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답니다.
아이도 어리고 그때 상황이 잠을 두세시간밖에 잘 수 없었어요.
고2때 생각이납니다.
교장수녀님께서 영세를 받고 학교에서 중책을 맡으라고 하셔서 저는 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빠는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데 엄마는 한집에 종교가 두개면 망한다고 절대로 반대를 하셨지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엄마가 되어서 생각해 보니 반대 입장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왜?
오직 공부만 강요를 했는지 지금도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인생인지 엄마가 정해놓은 길을 걸어가야 만 하는 인형인지 모르겠습니다.
마흔이 넘어가고 어느날.
아! 인생은 이렇게 사는게 아니야.
지금 뭘하고 있는거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눈물이 너무나 흘러서 서울의대 연구지원점에서 나와서 회화나무 아래에서 얼마나 길게 눈물을 펑펑 쏟았는지 모릅니다.
나중에는 소리까지 내면서 엉엉하고 울었던 그 시간 이후로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는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나는 모든 결정을 혼자서 하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떨지라도 그건 내가 결정한것이기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느때든지 아닌것은 아닙니다.
나만 그런가!
가끔씩 아주 가끔씩 순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혼탁한 현대를 살아가는데 그 분들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걸 느낍니다.
故 이태석신부님께서 홀로 수단에 가셔서 아픈환자가 밤에 찾아와도 두번 문을 두드리게 하신적이 없다고 합니다.
故 이태석신부님은 철인이셨을까요?
저는 故 이태석신부님이 왜 이렇게 빨리 가실 수 밖에 없는지 느껴집니다.
사람인데 잠이 깜박 들 수 도 있으셨을텐데 밤중에 환자가 찾아와서 두번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잠을 주무셨을까요?
故 이태석신부님의 삶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 몇백배를 사시다 가셨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두세시간만 잠을 자고 오년을 하다가 지쳐서 세상살이를 다시 바꾸었는데
누군가가 故 이태석신부님이 하시는 일들을 나누워서 했었어야 했는데
누구도 할 수 없으셔서 외로이 홀로 그 많은 일들을 스스로 감당하셨으니
의사인 자신도 자신이 병을 알텐데도 ---.
故 이태석신부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랑"이라는 씨앗 하나를 땅에 떨어 뜨리고 가셨습니다.
그 씨앗이 썩어 많은 열매를 맺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故 이태석선생님은 가셨지만 수단에 있는 그 아이들의 눈에서 나오는 하염없는 눈물로
故 이태석신부님은 사랑으로 다시 아이들의 가슴에 내내 남아서 기록되고 성인으로 남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겁니다.
저에게 이 글을 읽게 해주시고 영상을 보게 해주신 분께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故 이태석신부님 사랑합니다.
'건강 한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국민건강보험공단 블로그 건강천사 1주년 기념 이벤트 (0) | 2011.02.23 |
---|---|
우리나라 사람은 왜 장애등급 안 받으려 할까? (0) | 2011.02.23 |
수소스파 Hydrogen Spa를 아시나요? (0) | 2011.01.18 |
두성비아이(주) 식품사업부 (0) | 2010.12.24 |
PMN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는 누가 하는가 (0) | 2010.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