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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장대 아래 날지 못하는 비둘기

만년지기 우근 2011. 4. 4. 09:22

 

 

화성장대 아래 날지도 못하는 비둘기

                                                               우근 김  정  희

 

수원화성 팸투어는 걷는게 장난이 아니였다.

서장대.화성장대는 매번 올라가서 이번에는 포기했다.

서장대보다 더 애처로운 날지도 못하는 비둘기가 내 발목을 붙들었다.

비둘기를 찍는다고 천천히 천천히 발길을 옮기면서 가까이 다가가는데 눈빛을 보니 울고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 비둘기랑 한참 이야기했다.

생로병사는 자연의 섭리야.

다음 생은 더 좋은 인생으로 태어나는 거야?

이게 웬일인가.

비둘기가 고개를 끄덖이며 눈빛으로 말을 한다!

세상에!!!

쪼그리고 앉아서 얼마나 힘이들까?

 

봄날 양지 쪽 햇살을 가리지 마라고 한다.

나는 같이 쪼그리고 디카를 내려놓고 비둘기의 마지막 유언을 들었다.

 

 

 

 

 

 

 

 

 

 

 

 

 

 

 

앞전으로 나무의 번호를 고정시키는게 몹시 눈에 거슬린다.

이것도 나무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목걸이로 바꾸십시요!!!

 

 

 

 

 

 

효원약수에서 약수 한잔을 들이키고 서장대. 화성장대를 오릅니다.

물맛은 너무나 좋은 맑은 물맛입니다.

 

 

 

 

화성장대에서 화성열차승차장이 있습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서장대의 모습입니다. 

 

 

나무도 세월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서장대 화성장대

 

 본문

 

서장대(西將臺) 성안이 한눈에 들어올 뿐 아니라 멀리 남쪽과 북쪽 들판이 다 보이는

팔달산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석성산의 봉화와 황교(皇橋)의 물이 한 눈에 들어오고, 한 성의 완급과 사벽(四壁)의 허실은

마치 손바닥 위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 산 둘레 100리 안쪽의 모든 동정은 앉은 자리에서 변화를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돌을 쌓아서 대(臺)를 만들고 위에 층각(層閣)을 세웠다. [화성성역의궤 권수(卷首)]


서장대는 2층의 누각으로 남한산성의 수어장대(守禦將臺)와 같이 아래층을 개방하고 한가운데에

장수가 머물 수 있는 마루를 두었다.

위층은 사방에 교창(交窓)을 내고 판자를 깔아 바닥을 만들었는데 이는 군사가 올라가서 주변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함이다.

 

그 모습이 아래층은 사방이 각기 3칸이고 위층은 사방 1칸에 불과하여 위층이 아래층에 비해 갑자기 좁아진다.

이것은 위층에 여러 군사들이 올라가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으로 화성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로 지어졌다.


서장대 앞 좌우에는 붉은 외간이라는 큰 깃대를 세웠다.

성안 사람들은 외간 끝에 걸린 깃발만을 보고도 군사 조련이나 특별한 행사 등

서장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서장대 뒤쪽에는 8각 평면의 서노대(西弩臺)가 높게 세워졌는데, 이곳에서 노수(弩手)가 쇠뇌를 쏜다.

그리고 그 북쪽에 군무를 볼 때 사용하기 위하여 후당(後堂) 세 칸을 지었다.

 
서장대에서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연을 치른 을묘년 행차

장대한 군사 사열식인 성조식(城操式)을 치렀으며,

이를 기념해서 친필로 '화성장대(華城將臺)'라는 현판을 썼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문지방 위에 임금께서 쓰신 큰 글자 '화성장대(華城將臺)'로 편액(偏額)을 붙였다."라고 하였다.

이 현판은 20세기 초에 사라져 버렸고, 지금의 현판은 1971년에 건물이 새로 고쳐져 세워지면서 새로 달아놓은 것이다.

상량문은 당시 우의정으로 있던 체제공(蔡濟恭, 1720-1799)이 썼다.

 
서장대에서의 군사지휘는 왕이 직접 행하였는데, 그 절차와 훈련 내용은 따로 규칙으로 정해져서

함부로 바꿀 수 없도록 하였다.

'화성성역의궤' 의주(儀註)편에 '임금께서 친히 참가하는 서장대의 군사 훈련 의식'이라는 항목이 마련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군사들이 각종 무기와 신호용 깃발이나 포를 갖추고 성곽 곳곳에 늘어서 있고,

서장대 주변에는 지휘관들이 둘러선 가운데 왕이 서장대에서 직접 군사 훈련을 이끌도록 되어 있다.

 

정조의 명령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우렁찬 나팔소리와 함께 서장대에서 깃발이 올라갔으며,

이를 본 사방의 성문에서는 화포로써 응대하고 깃발을 흔들었다.

이것은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를 상정해서 짜여진 치밀한 군사 훈련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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