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허주 김 정 희
비가 내린다
39살 양숙을 보러 갔던 날
고대 안암병원 입원실에서 미소 짓던
그녀는 무엇이 되었을까
나에게 많이도 아파해 했고
같이 있어 줄려고 했지만
그때는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같이 일했던 예쁘디 예쁜 여자 양숙
암으로 떠나 보내야 한다
세상에 태어나 누구나 한번은 돌아 간다
2001년 조금 나아져서 회사 전직원 제주도 여행 때
같이 갔다
예쁜 얼굴만큼이나 음식도 잘했던 양숙
제주도 유채꽃밭에서 찍은 사진만 남아 있다
말기 암 마지막으로 강릉에 있을 때
구비 구비 돌아가는 대관령고개에서 전화를 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회사 야유회를 속초로 정했는데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
나에게 보이기 싫다고 한다
며칠 남지 않았는데
대관령 고개를 천천히 넘으면서
세번째 전화를 했다
싫다고 고개를 흔든다고 전해져오는 데
이제 전화도 그만 하라한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야유회는 내내 우울한 블루 였다
속초에서 대관령 고개를 넘으면서
다시 전화를 했다
양숙은 모르게 통화를 했다
보내야 하는 엄마는 말을 못한 채 울고 있다
양숙은 이제 아무것도 넘기지 못한다고
안타까운 고통은 몰핀을 써도 써도 듣지 않는다 했다
호스피스를 생각했다
마지막갈 때 잘 가야 하는데
어쩌면 좋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동해바다 수평선 바라다보며
같이 가을 야유회도 가고 싶어 했는데
바다는 수평선을 보여주며
철썩 처얼 썩
잘가 잘가야 해
수평선 너머로 보냈던
일주일 후
그 다음날 양숙은 세상과 별리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한달 후
고양에 놓여진 양숙사진 한장을 보았다
제주도에서 내가 찍어준 사진이였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왔다가 가는 길
올때 같이 갈때도 같아야 하는데
양숙씨가 보고 싶다
방명록에 쓴 헌시 사진으로 담아
양숙씨
그때는 내가 시집을 내고 싶었어도 시가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시집을 내고 싶은데도 돈이 없어못내
인생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어쩌면 그런거야
오늘만 있어
그래서 날마다 오늘만 살아
나에게 양숙은 39살
예쁜 그 모습으로 남아 있어
하늘나라에서 지금 나를 보니 어때
그 시절 지친 나보다
지금 내가 더 낫지 않아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던
제주도에서 21세기를 맞으면서
21세기 새해 첫날
떠오르던 성산바다 일출
구름사이로 해가 떠오르고
누군가 어린 여자아이가 그랬지
소주병이 떠있네
그래 내가 들고 있는 술이구나
인생이란
여행이야
추억이야
사랑이야
좋은 것만 남아 있어
잊혀지지 않아 알지
비가 내린다
장대비야 내려라
하늘 무얼하는지
얼굴 보고 싶지 않게 내려라
쏟아져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