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대로 촌닭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
우근 시사한마당 2008/06/2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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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로 촌닭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우근 시사한마당 2008/06/2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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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려놓은 지도를 옮기면서
우근 김 정 희
내가 20대 시절 써놓은 지도를 그대로 옮기는데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찢어져서 더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학교시절 소설공부를 할때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하셨을때는 그 마음이 어떤것인지 몰랐다.
글이 나오고 안 나오고만 있는줄 알았다.
어제는 내가 많이도 지쳤었다.
다른이에게 아픔을 드러내라고 해야했기에 그리고 듣기싫어도 들어야했기에 ---
그래서 나는 나를 모르는 분과 긴 통화를 했다.
나를 아는 사람과 통화를 했다면 처음부터 울먹이다가 마음만 아프게하고 말도 안하고 끊어버릴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1979년부터 2008년이 되어보니 30년이라는 긴긴 세월이 흘렀다.
인연이란 있는걸까? 만드는 걸까?
다시 만난것도 벌써 3년째인데 그냥 그런 이야기는 처음 만나던 날 주절 주절 떠들고
그리고 띠엄 띠엄 이지만 끊기지는 않았었다.
나는 작년을 어렵지만 행복했다고 말하고 자유하였다고 말하고 쓰고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상황은 말이 아니지만 나는 지금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어서 그리고 자유하여서 너무나 좋다.
부모가 되어서 나를 바라 본다.
누구도 바라보았다.
혹 누군가에의해서 자유를 빼앗겨 버리고 끌려간다고 생각하는 삶은 며칠은 살 수 있으리라.
지금 나도 나이가 몇인데 부모님은 내가 아직도 유치원쯤 다니는 아이로 보이는지 모른다.
30년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머리가 심하게 요동을 친다.
전주 비빕밥을 점심으로 먹으며 넘어가지 않지만 꾸역 꾸역 집어넣었다.
그리고 밖에나가 커피를 마시며 나는 내 이야기를 부모가 누구에게 말하는걸 옆에서 들었다.
유치원생이라서 나를 내가 이야기하지 못하고 엄마가 대신 비구상으로 들어야했다.
아니 듣지 않으려고 했다.
고속버스에 오르는 엄마 뒷모습을 나는 보기가 싫었다.
가슴을 많이도 아프게도 했지만 나는 더 많이 아프다.
먹먹하기에 일부러 떨어져서 보았다.
내가 이렇게도 살아가면서 숨을 쉬고 호흡을 한다는게 그래서 호주머니를 뒤졌더니 없다.
다른향으로 피우며 삭혀야해 사람들이 많으니까?
사진을 2개 찍었다. 그래 지금을 남기자.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이사진을 보면 그때의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겠지.
차가 내 시야에서 떠나고 전화를 하고 나는 기다리다 사진을 2컷 찍고 주차장으로 간다.
소월길을 지나 시청에서 내려주고 광화문을 거쳐서 아름다운길 걷고싶은 길 창경궁 돌담길을 지나서
성대를 지나서 구비구비 달동네 나는 집으로 왔다.
누가 정해 놓았었을까?
아니면 이미 질기디 질긴 누군가에의해 운명지어져 버렸던 정해져버렸던 일이 였을까?
오면서 많이 고개를 넘어왔던 오음리의 이야기를 다시 상기해 본다.
다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눈내리던 오음리고개에서 살아남아 지금도 호흡을하고 있다.
세상에 태어아사 부모에게 아니 어머니에게 한번도 아니오를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나는 1981년의 이문동 사건이 갑자기 떠오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그 순간과 누구의 있을 수 없는 일도 그만한 사건이었으리라.
알기만한다. 아니 얼굴은 안다. 어쩌면 마음도 누구보다는 더 많이 알것이다.
그렇다.환경도 누구보다 더 많이 안다. 그 시절도 안다.
그리고 모른다. 무엇을 안다고 표현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냥 보기만 했지. 아니 보여준대로만 보았지.
그리고 어제 이야기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화장실로 바로 직행을 한다.
가슴에 묻고있으면 병나 그냥 있으면 안돼.
그리고 긴 전화를 했다.
아, 피곤에 지쳐서 잠이 들었다가 기력은 없지만 일어나서 지도를 다시 들었다.
남동생의 탄생이 나온다.
그때는 살아있었는데 지금 벌써 11년째라고 엄마는 울먹이며 눈물을 흘리며 또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럴때마다 짜증을 부렸다.
다 모두다 피해자들 뿐이고 상처투성이들이 되어버려서 조금만건드려도 눈물이 흐를것 같다.
긴 시간을 내내 흑흑흑하면서 울고 싶다.
아니 외할머니 품에서 엉엉하면서 때를 쓰고 싶다.
아니 그냥 이대로 접어버리고 싶다.
그래 그렇게 하고 싶다.
그 마음이 전해졌나. 대구에서 언제내려오느냐고 전화가 왔다.
이럴때 나를 찾아주는 분에게 나는 무어라 말해야 하는가.
나를 위하는건 무언가.
나는 이렇게 엄마를 보냈다.
그게 나적인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누군가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돌아가시면 후회할것이라고 그래도 천성인지 본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닌것을 아니라고 해야지 그게 부모이니까? 자식이니까? 나이니까? 그리고 누구이니까?
그래서 얼렁뚱땅 넘어가야 옳으냐고 지금 이시간 다시 2장의 사진을 다시 올리면서 자신에게 물어본다.
엄마를 보내고 나는 며칠을 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대단한 광풍과 위력으로 난도질 당한 나를 하나씩 하나씩 다시 모자이크 해야 한다.
결국 누가 무어라해도 나는 나의 길을 다시 걸어간다.
며칠동안 수습으로 되어질지 모르겠으나 주어지고 떨어져 나가고 흔들어놓은 나의 잔영들이
웃기도하고 진한 눈물도 보이고 비가내리고 눈이 쏟아져 내리는 것들이 사그라지고 또 나타난다.
사는게 그런거야 살아있다는 바로 그거야 그리고도 주어져버렸다면 또 다시 그 길로 들어서리라.
인생이라는 굴레로 다시 한번 뒤집어쓰기를 하고 내 얼굴을 나름대로 화장을 하고 그러고도 모자라면
원하는 나를 또 끄집어도 내어서 보여주어야 할것이다.
내가 그려놓은 지도에 그지도에서 나는 다시 길을 걸어 간다.
이제 다시 시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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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명견 우리집 흰둥이
우근 김 정 희
이번에야 우리집 진도개 흰둥이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흰둥이는 KBS에서는 9시 뉴스에 나왔었구요.
MBC,SBS에도 각각 나와서 화제가 된 정말로 영리한 진도개 우리집 명견 흰둥이의 자태를 보십시요.
이번에서야 사진으로 보여 드리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제가 8월10일에 낸 기사입니다.
http://blog.daum.net/hangle114/5076118
모델을 하도해서 그런지 아니면 사진 찍는 제 실력을 아는지 모델을 안할려고 해서
둘째녀석 김기현이가 같이 모델로 나옵니다.
임신한 채 45일 만에 돌아왔던 흰둥이가 새끼를 5마리 낳은중에 한마리가 살아서 키웠었는데요.
이번에 집에 가보았더니 흰둥이만 보이고 보이지 않아서 물어 보았더니 10월 중순에 새끼가 차에 그만 치여서
하늘나라로 갔다고 하네요.
이번에 둘을 모델로 해볼려고 했었는데 아쉽군요.그리고 새끼를 한번 더 낳았습니다.
흰둥이가 이번에는 새끼를 몇마리 낳았느냐고 물으니 한마리만 낳았다고 합니다.
흰둥이가 45일을 미아가 된 채 아니 집을 찾으려고 헤메다가 애가 닳아서 그랬나 아니면 아빠 이야기대로
흰둥이도 늙어서인지 이번에는 새끼를 한마리 밖에 낳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새끼는?" 창평 사돈댁에 보냈다고 합니다.
창평에 가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더니 바쁘시다는 말씀에 그냥 올라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돈댁 보살핌으로 잘 크고 있을 흰둥이 새끼를 언젠가는 보리라 생각하면서 흰둥이의 목에다 채우는 목걸이에
지금도 시간만 나면 풀어주시는 아빠와 개짖는 소리만 들리면 엄마와의 큰소리는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제가 저녁 시간에 도착을해서 흰둥이를 먼저 찍었습니다.
겨울이라서 6시만 되어도 깜깜해진 밤이라서 목걸이를 하고 있는 흰둥이가 꼬리를 흔들며 목걸이를 풀어 달라고 하는것 같아 마음이 좋지않았지만 지금은 안된단다.
내일이되면 풀어줄께? 잘자라 흰둥아 하며 사진만 찍는 내 모습에 흰둥이는 고개를 드리밀며
꼬리만 흔들었습니다.
광주에서 자라는 둘째가 4학년인줄 알았는데 3학년이었습니다.
아이쿠 이게 엄마라고 엄마는 나를 4학년으로 써놓으면 어떡해? 3학년인데?
형아가 6학년이니 두살차이라서 4학년으로 착각했나봐 형이 7살에 학교를 가고 너는 8살에 학교를 갔는데 미안 미안 정말로 4학년인 줄 알았다.
집에 도착하기전에 7살부터 다니고 있는 한문학원엘가서 학생이 두명이 있어서 김기현이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몇학년이요? 해서 4학년이라고 했더니 김기현은 3학년이란다.
아니야 4학년이 맞을걸하고 나이계산을 해보니 3학년이 맞았다.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다.
형아가 6학년이라서 착각을 했구나.
하고 한문학원을 몇컷 찍고 집으로 왔습니다.
밤 6시가 넘어서야 돌아오는 초등학교 3학년의 하루가 불쌍해 보입니다.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놀아야 하는데 초등학교3학년이 6시에 학원이 끝나면 그때서야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어릴때는 하루종일 놀았었는데 이 아이들에게 추억이란 무엇이 남게될까?
다음날이 되어서 흰둥이를 모델로 찍어야 하니 기현이에게 제가 네가 흰둥이를 데려오라고해서 겨우 겨우 찍은 흰둥이는 명견답게 아이와 잘 놀아주다가 시간이 지나자 마실을 가는건지 친구를 찾아서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광주 저희집은 동성철강을 하고 있습니다.아빠는 이일을 45년이 넘도록 해 오셨습니다.
워낙 개를 좋아하셔서 저는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개가 없는 우리집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번에서야 제가 둘째녀석에게 제 블로그를 보여주었더니 거기에도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 나와서
얼른 수정을 했습니다.
어- 휴 엄마 자격도 없지요?
아이가 몇 학년인지도 모르는 엄마를 ---
여기가 광주광역시 북구 동림동 885-2 번지 입니다.정확하게 062-523-3878 062-513-7936번입니다.
우리가 어릴적에는 전화기도 놓기 어려울때가 있었습니다.7936번의 전화번호는 그래서 귀한 전화때의
전화번호입니다.
이렇게 저희집에는 하루종일 철근을 가져다가 원하는대로 잘라주기도 하고,절곡도 해주고 앵글도
절단을 해줍니다.
나머지 부분들도 있습니다. 필요하신분들은 전화를 해주십시요. 아빠의 철칙 1000원 미만은 그냥드립니다.
사회에서 좋은일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아빠가 내세우신것이 바로 1000원 미만으로 가져가시는
분들에게 써비스를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가지가 많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유명세를 치른 흰둥이가 이 넓은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에야 몇평쯤 가게를 쓰고 있느냐고 제가 여쭈어 보았더니 600평쯤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제가 볼때는 더 넓어 보여서 그것밖에 안돼? 그랬지만요.
하남대로변이다보니 개들이 차사고로 많이 하늘나라로 갑니다. 흰둥이는 그런데 여기 신호등을 건너서 날마다 직원들퇴근을 시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날도 밖에서 흰둥아 퇴근시키고 왔어? 하는 말에 제가 나가서 그걸 찍으려했는데 말해주지.
다음 번에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해야지요.
이 신호등길을 건너서 버스가 오면 타는 걸 확인하고 다시 신호등을 건너옵니다.
24시간 차가 많이도 다니고 있습니다. 저 대로에서 흰둥이 새끼가 그만 차에 치여서 10월중순경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합니다.
흰둥아 무얼 그렇게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니?
이번 대통령이 누가 될까?
그 생각하고있니?
"아 - 휴 그 생각하면 머리아파요.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올께요."하고 일어나더니 뒷모습만 보이며 걸어가다가
내가 불러도 뒤돌아보지도 않습니다.
"흰둥아 흰둥아 모델하다가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해?"
아무리 불러도 내 시야에서 멀어져만 가는 우리집 명견 흰둥이를 생각하면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제발 의리를 지키세요. 한번 주인은 마지막까지 주인입니다."
사람은 개를 버리지만 흰둥이는 집을 그리워하며 45일을 헤메다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누가 흰둥이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흰둥아 네가 사람보다 훨씬 더 낳구나."
흰둥이를 생각하며 이 겨울 어렵고 힘든 이웃에게 귀 기우려주어서 그 이웃이 사회에서 떠나지 않고 따순 겨울을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걸느끼게 하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이글을 마칠까 합니다.
진도개 천연기념물지정경위
제 블로그에 8월10일에 올려져 있습니다.
http://blog.daum.net/hangle114/5076118
원본 주소입니다.
http://www.jintizen.com/
이번에 진도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된 경위를 자세히 읽고나서 흰둥이를 더욱더
보호 차원에서라도 잘 해주어야 겠다고 말하는 김기현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진도개가 그렇게 없어질 위기가 있었냐면서 이런건 여러 학생들이 보아야 한다고 말해서
다시 내보내는 것입니다.
흰둥이때문에 3번씩이나 TV에 나와서 인터뷰를 했었던 둘째녀석은 광주에서 학교를 잘 다니고 있습니다.오늘도 흰둥이는 직원들 퇴근시간은 어찌알고 와서 퇴근을 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으로는 찍지 못했지만 지금도 명견 흰둥이는 동성철강에서 직원분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버스에 오르면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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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고 일년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나는 2007년에 무엇을 했는지
돌아다 보았습니다. 잘 살아왔을까.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아왔는지
다시 한번 깊이 마음다하여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귀를 열어서
들어주는 따뜻한 한마음을 내어주시는 연말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근 김 정 희
지나가버린 시간앞에 인간이란 숙연해 지는가 보다
어느덧 네가 커서 고3 이라니 .....
한참 어려울 시기라 생각해 본다.
인간에게는 기회라는 것이 여러번 주어지거나 항상 존재해 잇는것이 아닌줄로 안다.
적어도 올해의 기회는 가장 현명하고, 고달프고, 외로운 경주가 될 것이다.
그래도 학교라는 테두리나 사회의 제약들이 너의 자유를 구속시킬때가 자유의 음미를 할 수 있는것 아니겠니?
조금의 노력으로 참다운 자유를 간직했으면 한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것은 진실로 소중하게 다루워야해.
판단이라 말하고 싶은것들 .....
잘못된 한순간의 판단이 평생의 짐이 될 수 도 있다는 사실을
바람의 숨결에도 봄의 내음이 완연하다.
이봄날에 밤낮없이 고생하는 너에게 조금이나마 정신적인 불안에서 벗어나 보라는 의미에서 쓰고 있다.
내년이면 같은 성인이 되어있을 너를 그려본다.
바쁘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서신 한번 띄우질 못했구나.
진우야.
너는 너의 인생 나는 나대로의 길
어차피 인간은 외롭고,고독하고,그리운것이라는 이중섭의 시가 아니더라도
홀로 태어나 홀로 살아가는것 아닐까?
내가 말하는 홀로란 정신적인 고유의 영역을 말 하는 것이다.
사실은
1987년쯤으로 생각되는 편지입니다.
지금은 이세상사람이 아닌 남동생 지난주에 제사를 지내고 왔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노라
우근 김 정 희
믿어라 믿어라 그것이 사랑이노라
사랑의 말들은 이미 그 단어속에서 우롱을 당하기 시작했고
그냥 그냥 그저 그저 살아버린 인습으로
습관 지워져 버려
벗어나지 못하고 빠져 나올려고 생각도 하지않는
너의 관념
말과 행위가 달라
말과 행동이 같지 않아
그럴바에야
침묵하고 서로에 대해 관심을 없애 버리면
그만 그만 일것
쉽게 쉽게 살아들 가자
허탈한 모습대로 짝지워버린 실루엣
전형대로 변신을 시작해 버려
믿음으로 믿음으로서 사랑해 버리면
남는건 무엇일까
청춘도 남용의 계절도 나의 뒷전으로 밀려 갈려고 한다
다 없애버려
넌 아무것도 없었어
태어날때 혼자였잖아
지금도 혼자이고 미래에도 혼자이고 마지막에도 혼자
의지할건 육체도 아니야
너의 얼굴을 보아
한번이라도 같은 얼굴이 되어본적 있는지
너의 정신을 판단해봐
이리 흔들리고 저리 찌들리고
한번이라도 똑바로 판단된 정신으로 얼마나 버텨 왔는지
심청의고장 곡성 목화밭에서
목화가 피어있는 곡성 겸면 풍경
우근 김 정 희
효녀 심청이의 고장 곡성 겸면 들녘에서
풍요로운 하얀 목화 밭을 보았다
어릴적 피어나던 그대로 탐스런 목화꽃
솜으로 바뀌기에는 넘쳐나서 필요가 없어
얼마나 시릿 시리하는 하이얀 눈꽃 피어났을까
외할머니 가시고 안계시지만
그 품속처럼 화하게 느껴져서
발걸음 멈추고서 목화밭 솜 되거라
하얀 눈송이처럼 편안한 잠 오거라
효녀 심청이 무슨 마음으로 임당수에 뛰어 들었을까
논이 변하여 연밭으로 바뀌고
아니 연논으로 이어 이어 뒤집어져도
옆에서 피어난 목화는 누구도 주인이 없나 보다
누구를 기다리지 않아서 하얗게 피어나
기다리다 기울려져가는 겨울이 되어서야
하얗게 뽀얗게 드러난 햇것이건만
누가 없어서 기다리지 않는게 아닐런지
외할머니 머리처럼 하얗게 되어버린
목화는 어디로 가야 할까
왜 이리도 슬퍼 보이는지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숨을 죽이고 눈물만 주르르 주르르
그날 가슴 절이게 조이드시
쓸곳 없어서 피었다가 가버린
지나가는 나그네 눈요기나 되었을까
효녀 심청이 목화가 있는 곡성 들녘에 서서
이곳 보면서 무슨 생각 할까
조여드는 하늘가 누워 스밀거리는 오후
목화 이불로 덮어보는 따순 겨울이 그리웁다
동방 4
엄마의 기억
우근 김 정 희
수화 그녀가 국민학교를 들어갔다.
국민 학교 그것도 5리나 떨어진 곳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면 수화 그녀는 학교에서 놀림감이 되었다.
학교 전체에서 수화 그녀 혼자서 책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이였다.
그것도 시골에서는 한번도 볼 수없는 가죽가방 말이다.
수화는 날마다 놀려대는 것이 창피스러워서 어떨때는 엄마 몰래 보자기에 책을 싸서
학교에 간다.
학교에 갔을때는 좋았지만 집에 들어가면 또 엄마에게 혼이난다.
그녀는 반에서나 선생님들 한테서 거의 학생으로서 대접을 받고 다녔다
학교 선생님 댁에 놀러가기도 하고, 가끔 엄마가 학교에 나타나시면 교장선생님 이하
담임 선생님들과 정답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학교 담임선생님보다 엄마가 더 무서웠다.
6월 어느날 햇살이 유난히도 밝았던 날 그날은 학교에 꽃을 가지고 가고 싶었다.
수화는 외할머니에게 "할머니 나 작약꽃 학교에 가져 갈래"
외할머니는 "그래라" 하셧다.
그래서 작약꽃을 꺾으면서 수화는 이런 생각에 잠겼다.
이 꽃을 학교에 가지고 가면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꽃처럼 환하게 될것이고.
반 아이들은 나를 또 부러운 눈으로 쳐다 보겠지?
그런 생각들에서 한아름 꽃을 꺾고 있는데 수화 그녀의 뒤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왜 꽃을 꺾어"
엄마의 소리지르는 얼굴은 세상에서 제일 보기 싫은 이상한 모습이었다.
수화 그녀는 발발 떨면서 "할머니가 학교에 가져가라고 해서 ----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손은 마귀의 손이 되어서 수화 그녀의 얼굴에 와 닿았다.
엄마는 "꽃 전부 내 놔"
수화 그녀는 바들 바들 떨면서 꽃을 넘겨 주지도 못한채 땅바닥에 떨어뜨려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수화 그녀의 엄마는 정식으로 매가 등장을 했다.
수화 그녀의 엄마는 부지깽이 같은것을 들고서 닥치는대로 때리는 것이였다.
이럴때마다 신처럼 나타나시는 외할머니 할머니는 수화 그녀의 엄마에게서 매를 빼앗고
"야! 어린것이 꽃을 꺾었기로 그렇게 잘못 했단 말이냐 내가 꺾으라고 했다. 내가" 하시면서 말리셨다.
그때부터는 수화 그녀는 눈물이 악으로 변하여 엉 엉 소리를 지른다.
"시끄러워" 한마디면 그쳐야하는 소리지만.
그러자 여지없이 엄마 입에선 "시끄러워 이년아!"
뚝 채재기를 해도 안된다.
그렇게 가져간 꽃이 교실에서 환하게 웃어주었지만 선생님은 미소로도 예쁘게 보여주셨지만,
아침 엄마의 매로 인하여 지금도 수화 그녀의 뇌리속에 박혀서 떠나질 않는다.
수화 그녀는 작약꽃만 보면 두려워진다.
작약꽃의 부피만큼이나 .....
어느 여름날 아침의 매 탓일게다.
외할머니는 항상 고고한 학처럼 생각이 든다.
그와 반해서 엄마는 무서운 폭군이었다.
그래서 수화 그녀는 외할머니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항상 외할머니가 엄마였으면 하고 생각했다.
가을 소풍에 엄마가 왔다.
사진도 찍었다.
외할머니와 이별을 해야할 시간이 온것이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