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마당

[스크랩] 의친왕의 11번째 아들이자 가수 이석씨의 이야기 영화화 한다면...

만년지기 우근 2007. 7. 22. 01:41

 

조선시대 마지막 왕인 의친왕의 11번째 아들이자 가수 이석씨

 

비둘기 처럼 다정한 사람들 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갈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 샘터에

비둘기 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을 지어요

 

 - 이 노래 들어 보셨나요? 조선시대 마지막왕 의친왕의 11번째 아들이자 가수인 이석씨가 부른 노래 입니다. 저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었는데, 2002년 군대에 있을때 근무를 서면서 우연히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게스트로 출연한 이석씨의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 집필에 대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이후 몇번 자료를 찾고, 트리트먼트(시높시스의 다음 단계로 시나리오를 구성하기 전에 씬별로 짧막하게 내용을 요약하는 과정)를 구성하다가 제가 당장 이 작업에 올인 할 만한 처지가 아니였고, 왠지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한 초짜가 작업하기에는 소재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그래서 트리트먼트를 반즘 구성 하다가 몇년간 묶혀 두다 결국 포기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로 구성하기에 꾀 괜찮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공개 하고, 소재에 대해서 공감 하신다면, 가상으로나마 여러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보면 재미도 있을것 같고, 작업을 할 적임자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듦니다.

 

 물론 시나리오 작업은 글을 쓰는데서 끝나는게 아니라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내용으로서 당사자와의 협의와 많은 당시 역사 자료 및 인터뷰등의 전반 작업과 시나리오를 제작자에게 어필해서 영화 화 할 수 있을때까지의 후반 작업(마케팅)이 필요한데, 저는 우선 만사 다 제치고 이 작업에 올인 할 수 있는 용기가 없네요. 부디 이 소재가 훌륭한 적임자를 만나기를 바랍니다.

 

 제가 라디오를 통해 들은 인터뷰 내용들만 해도, 저로서는 꾀 끌리는 플롯(이야기의 요소와 요소를 연결하는 구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요. 어린시절 황궁 생활을 했던 왕자가 젊은 시절 밤무대와 미군 부대를 전전하면서 노래를 부르러 다니고, 최근 말년에는 거처할 집이 없어서 지인의 도움으로 한동안 찜질방에서 생활 하면서 "찜질방 이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답니다. 이 세 줄의 내용 만으로도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으세요?

 

 현재 이석씨는 다큐멘터리와 몇몇 언론을 통해 이야기등이 전해 지면서 종친회 등의 도움으로  전주 풍남동에 위치한 경기전(태조 이성계의 대표적인 유물 사적 제 339호)을 관리 하면서 전보다는 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 대학 강당 등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 시나리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저는 영화를 통해 국민들의 관심을 얻고, 최소한의 국가적 지원을 얻어서 예우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었는데, 지금 생각으로는 이 이야기가 만약 영화로 제작 된다면, 충분한 상업성과 대중성을 갖추어야 한다고도 생각 합니다. 그래야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실효가 있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요?

 

 만약에 가상 드라마 "궁" 처럼 조선 왕조가 그대로 이어져 왔다면, 이석씨가 왕이 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고 생각 합니다. 11번째 아들이니깐요. 하지만 조선 왕조가 일제에 의해 멸하고, 다른 왕자와 공주들은 모두 미국과 일본으로 각각 흩어졌습니다. 왕가를 떠나서 11명의 형제를 둔 중년의 사람이 찜질방을 전전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네요.  

 

 남의 집안 문제에 왈가왈부 한다는게 물론 조심스러운 면이 있지만, 비난을 사더라도, 누군가에 의해서저는 물론 이석씨와의 협의를 거쳐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과 상업성을 충분히 갖춘 좋은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석 (황손)

위키백과

이석(李錫, 1941년 ~ )은 의친왕(義親王)의 열한번째 아들이다. 아명은 영길이며, 호적명은 해석이다. 가수 생활을 했으며, 〈비둘기 집〉이라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창경 초등학교를 거쳐 경동 중·고등학교를 나와 한국외국어대 서반아학과에 입학했다. 1962년 미국 제8군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듬해 무대를 옮겨 워커힐에서 영어로 사회를 보며 팝송을 불렀다. 1966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샌디애고 김병묵 한인회장의 초청으로 1979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1989년 귀국했다. 2000년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으며, 이 후 2004년 10월에 전주 한옥마을 승광재(承光齋)에 입주하였다. 2005년부터 전주대학교 사학과에 객원교수로 출강을 한다.

 

 

가제 : 찜질방 이씨

 

시놉시스

 

 마땅히 거처 할 데가 없어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고 있는 60세의 한 남자. 어느 날 저녁 찜질방 TV 속에서 조선 왕조와 문화재 시설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하고 있다. 채널을 돌리려는 사람과 실랑이 끝에 맥없이 물러서고, 잠을 청하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깊은 생각에 잠기며 시간은 과거로 흘러 조선 말기 그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동궁으로 향한다. 그는 조선 마지막 왕조 의친왕의 열한번째 아들 이석이다. 그의 인물 중심으로 한 조선 왕조의 몰락과 고뇌 미군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경위등을 보여준다.

 

오프닝

 

 2000년 어느 인력 소개소 앞 60세의 한 남자가 사람들과 함께 인력 사무소 앞에서 오다를 받기 위해 서성거리고 있다. 그는 인력소 소장의 공모에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애타게 손을 들지만 결국 오다는 바닥이 나고, 몇몇 사람들과 함께 일을 받지 못한채 그 자리에 남는다.

 

 허름한 식당에서 동료 인부들과 함께 신세 한탄을 하는 그는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묵묵히 있거나 화재를 돌리려 한다.

 

 그 날 오후 찜질방에서 우연히 조선 왕조와 문화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진부한 이야기에 손님중에 한명이 채널을 돌리려 하자, 평소에 어눌하고 주눅이 들어 있던 그의 모습에서는 이해 할 수 없는 집착을 벌이며 손님과 실랑이를 벌인다. 평소 그에 대해설 잘 알던 찜질방 주인이 그를 말리고, 그는 이내 다시 의기 소침한 모습으로 자리를 펴고 눕는다.

 

 찜질방 TV 의 토크쇼 소리와 함께 그는 깊은 생각에 잠들고, 이야기는 1950년대의 초의 어린 시절 과거로 과거로 향한다.

 

 

이석씨의 역할로 적합한 배우

 

안성기 

신 구

 

 이 순 재

 

 

출처 : 이랑이
글쓴이 : 김의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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