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의 <오적>1970년 6월 2일 중앙정보부는 <오적>을 게재해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이유로 시인 김지하씨와 사상계 편집인 김승균씨, 사장 부완혁씨를 구속했다.
또 이를 전재해 배포한 신민당 당보 <민주전선>의 편집국장 김용성씨를 전국에 수배했다. 이른바 <사상계 필화사건>이다. 그 동안 전국의 서점에서 시판중인 <사상계>를 수거해 온 당국은 이날 새벽 1시 50분 서울 종로구 관훈동 신민당 중앙당사 출판국에서 남아있던 당보와 인쇄용 판 등을 압수했다.
김지하씨가 삽화와 함께 발표한 당시 <오적>은 5.16군사혁명 10주년을 맞아 사상계가 특집을 제작하면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군장성, 장차관 등 당시 사회 지도층을 한일합방 때의 <을사오적>에 비유해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이다. 김씨가 처음 시도한 담시는 일반 서정시보다 길고 단편보다 짧은 독특한 형태로 판소리의 운율을 갖고 있다.
<오적>은 200자 원고지 40여매 분량으로 <사상계> 18페이지에 걸쳐 게재됐다. 사상계 폐간과 관련하여 중앙정보부가 부완혁 사장에게 3천만원을 주고 소유권을 가져 가는 것으로 타협이 되었으나 9월에 출소하니 사상계가 모신문사에 팔려가게 되어 있었다. 부 사장은 “사형 당하는 것보다 안락사 시키는 게 낫겠다.”며 3천만원을 받지 않았고, 계속 휴간하다 이날 등록이 취소되어 완전 폐간됐다.
오적(五賊) - 김지하
1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머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2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해 쓰고 돈으로 구두해 신고 돈으로 장갑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 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니,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봐라 저 재벌놈 재조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치고 계자치고 고추장치고 미원까지 톡톡쳐서 실고추과 마늘 곁들여
나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까기 여념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쥔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뜀에 정보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샀다가 길뚫리면 한 몫잡고
천(千)원 공사(工事) 오원에 쓱싹, 노동자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술수 빰치겄다.
또 한놈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양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건설이닷, 모든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鄭仁淑)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 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 공약(公約卽空約)이니
우매(遇昧)국민 그리알고 저리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3
셋째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놈 뒤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혜끗혜끗, 피두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간같이 높은 책상 마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도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위엔 서류뭉치, 책상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 없다더냐.
넷째놈이 나온다 장성(長猩)놈이 나온다
키크기 팔대장성, 제밑에 졸개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이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탑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공단 울긋불긋, 천근만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차고 저기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장성(長猩)놈 재조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한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먹고
엄동설한 막사없어 얼어죽는 쫄병들을
일만하면 땀이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지을 재목갖다 제집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놈 군기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놓고
열중쉬엇 열중열중열중쉬엇 열중
빵빵들 데려다가 제마누라 화냥끼 노리개로 묶어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운우서수 공방전(雲雨魚水攻防戰)에 병법(兵法)이 신출귀몰(神出鬼沒)
마지막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끼어 삐적삐적 술지게미 가득고여 삐져나와
추접무화(無化) 눈꼽낀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국사(國事)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상이닷, 아사(餓死)한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먹고 입찰에서 왕창먹고 행여나 냄새날라 질근질근 껌씹으며
켄트를 피워물고 외래품 철저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나서 어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추문듣고 뒤쫓아온 말잘하는 반벙어리 신문기자 앞에 놓고
일국(一國)의 재상더러 부정(不正)이 웬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자네 핸디 몇이더라?
4
오적(五賊)의 이 절륜한 솜씨를 구경하던 귀신들이
깜짝 놀라서 어마 뜨거라 저놈들한테 붙잡히면 뼉다귀도 못추리것다
똥줄빠지게 내빼 버렸으니 요즘엔 제사지내는 사람마저 드물어졌겄다.
이라한참 시합이 구시월 똥호박 무르익듯이 몰씬몰씬 무르익어가는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나라망신시키는 오적(五賊)을 잡아들여라
추상같은 어명이 쾅,
청천하늘에 날벼락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어져내려 쏟아져 퍼붓어싸니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포도대장 물러선다 포도대장 거동봐라
울뚝불뚝 돼지코에 술찌꺼기 허어옇게 묻은 메기 주둥이,
침은 질질질
장비사돈네팔촌 같은 텁석부리 수염, 사람여럿 잡아먹어 피가 벌건 왕방울 눈깔
마빡에 주먹혹이 뛸 때마다 털렁털렁
열십자 팔벌이고 멧돌같이 좌충우돌, 사자같이 으르르르릉
이놈 내리훑고 저놈 굴비엮어
종삼 명동 양동 무교동 청계천 쉬파리 답십리 왕파리 왕십리 똥파리 모두 쓸어모아다 꿀리고 치고 패고 차고 밟고
꼬집어뜯고 물어뜯고 업어메치고 뒤집어던지고 꼰아
추스리고 걷어팽개치고
때리고 부수고 개키고 까집고 비틀고 조이고
꺾고 깎고 벳기고 쑤셔대고 몽구라뜨리고
직신작신 조지고지지고 노들강변 버들같이 휘휘낭창 꾸부러뜨리고
육모방망이, 세모쇳장, 갈쿠리, 긴 칼, 짧은 칼, 큰칼, 작은칼
오라 수갑 곤장 난장 곤봉 호각
개다리 소다리 장총 기관총 수류탄 최루탄 발연탄 구토탄 똥탄 오줌탄 뜸물탄
석탄 백탄
모조리 갖다 늘어놓고 어흥 -
호랑이 방귓소리 같은 으름장에 깜짝, 도매금으로 끌려와 쪼그린 되민증들이 발발
전라도 갯땅쇠 꾀수놈이 발발 오뉴월 동장군(冬將軍) 만난 듯이 발발발 떨어댄다.
네놈이 오적(五賊)이지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날치기요
날치기면 더욱 좋다. 날치기, 들치기, 밀치기, 소매치기, 네다바이 다 합쳐서
오적(五賊)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날치기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펨프요
펨프면 더욱 좋다. 펨프, 창녀, 포주, 깡패, 쪽쟁이 다합쳐서
풍속사범 오적(五賊)이 바로 그것 아니더냐
아이구 난 펨프이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껌팔이요
껌팔이면 더욱 좋다. 껌팔이, 담배팔이, 양말팔이, 도롭프스팔이, 쪼코렛팔이 다
합쳐서
외래품 팔아먹는 오적(五賊)이 그아니냐
아이구 난 껌팔이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더욱 좋다. 거지, 문둥이, 시라이, 양아치, 비렁뱅이 다합쳐서
우범오적(五賊)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놈 큰집으로 바삐가자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농사로는
배고파서 돈벌라고 서울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네다.
이리바짝 저리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태워 공중잡이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건
아니랑께롱
한마디뿐이겄다
포도대장 할 수 없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봐라
오적(五賊)은 무엇이며 어디있나 말 만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꾀수놈 이말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오.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옳다됐다 내새끼야 그말을 진작하지
포도대장 하도좋아 제무릎을 탁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처 버렸던지 무릎뼈가 파싹 깨져 버렸겄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사(死)는 사(私)요, 공(功)은 공(公)이라
네놈 꾀수 앞장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겄다.
꾀수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범눈깔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에 헷드라이트 왕눈깔을 미친듯이 부릅뜨고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소리소리 내지르며 질풍같이 내닫는다
비켜라 비켜라
안비키면 오적(五賊)이다
간다 간다 내가 간다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당탕 쿵쾅
오적(五賊)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훌렁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우레같은 저 함성 범같은 늠름기상 이완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일성,
이놈들 오적(五賊)은 듣거라
너희 한같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렸다.
5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들러보니 눈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제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서슬푸른 용트림이 기둥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仙女) 가득
몇십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원짜리 정원수(庭園樹)에 백만원짜리 외국(外國)개
천만원짜리 수석비석(瘦石肥石), 천만원짜리 석등석불(石燈石佛), 일억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원짜리 참새 메추리
문(門)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女大生) 식모두고 경제학박사 회계두고 임학(林學)박사 원정(園丁)두고 경제학박사 집사두고
가정교사는 철학박사 비서는 정치학박사 미용사는 미학(美學)박사 박사박사박사박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속에 에어턴넣고
새들 행여 죽을세라 새장속에 히터넣고,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집속에 냉장고넣고
대리석 양옥(洋屋)위에 조선기와 살쩍얹어 기둥은 코린트식(式) 대들보는 이오니아식(式)
선자추녀 쇠로치고 굽도리 삿슈박고 내외분합 그라스룸 석조(石造)벽에 갈포발라
앞뒷퇴 널찍터서 복판에 메인홀 두고 알매달아 부연얹고
기와위에 이층올려 이층위에 옥상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풍(風), 본따놓고 목욕탕은 토이기풍(風), 돼지우리 왜풍(倭風)당당
집밑에다 연못파고 연못속에 석가산(石假山), 대대층층 모아놓고
열어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언 듯보니
자개 케비넷, 무광택 강철함롱, 봉그린 용장, 용그린 봉장, 삼천삼백삼십삼층장
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삘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촉대,
전자시계, 전자밥그릇, 전자주전자, 전자젓가락, 전자꽃병, 전자거울, 전자책,
전자가방, 쇠유리병, 흙나무그릇, 이조청자, 고려백자, 거꾸로 걸린 삐까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액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 鳥蝴蝶人物)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점 걸어두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 鳥蝴蝶人物)
팔천팔백팔십팔점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토기, 당화기, 왜화기, 미국화기, 불란서화기, 애태리화기, 호피담뇨 씨운테레비, 화류문갑 속의 쏘니녹음기, 대모책상 위의 밋첼카메라, 산호책장 곁의 알씨에이 영사기, 호박필통에 꽂힌 파카만년필, 촛불켠 샨들리에, 피마주기름 스탠드라이트, 간접직접 직사곡사 천장바닥 벽조명이 휘황칸칸 호화율율.
여편제들 치장보니 청옥머리핀, 백옥구두장식,
황금부로취, 백금이빨, 밀화귓구멍가게, 호박밑구멍마게, 산호똥구멍마게,
루비배꼽마게, 금파단추, 진주귀걸이, 야광주코걸이, 자수정목걸이, 싸파이어팔지 에어랄드팔지, 다이야몬드허리띠, 터키석안경대,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삼원짜리 납반지가 번쩍번쩍 칠흑암야에 횃불처럼
도도무쌍(無雙)이라!
왼갖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콧구멍볶음, 염소수염튀김, 노루뿔삶음, 닭네발산적, 꿩지느라미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바톱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짤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쇠고기 돈까스, 돼지고기 비후까스, 피안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원서 금딱지로 싸놓은 것, 바나나식혜,
파인애플화채, 무화과 꽃닢설탕 버무림,
롱가리트유과, 메사돈약과, 사카린잡과, 개구리알구란탕, 청포우무, 한천묵,
괭장망장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펭, 송엽주, 드라이찐,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 짐빔, 선약주, 나폴레옹 꼬냑, 약주, 탁주, 소주, 정종, 화주, 째주, 보드카, 람주(酒)라!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않고 포도대장 침을 질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놀랠 놀짜로다
저게모두 도둑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이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일찍암치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심(良心)이란 두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6
이리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한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잔두잔 헐레벌떡 석잔넉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연설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많이 쳐먹었는지 이빨이 확 닳아없어져 버린 아가리로
이빨을 딱딱 소리내 부딪쳐가면서 씹어뱉는 그 목소리 엄숙하고 그 조리 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니
부디 소신껏 그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이 말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때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채어 오라묶어 세운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때는 가을이라
서산낙일에 객수(客愁)가 추연하네
외기러기 짝을찾고 쪼각달 희게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흐르는데
어쩔꺼나 두견이는 설리설리 울어쌌는데 어쩔꺼나
콩알같은 꾀수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꺼나 어쩔꺼나 우리꾀수 어쩔꺼나
전라도서 굶고살다 서울와 돈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에 온갖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꺼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사정 누가있어 바로잡나
잘가
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가거라.
7
꾀수는 그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집 솟을대문,
바로 그곁에 있는 개집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하매,
포도대장 이말 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속에서 내내
잘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같은 거지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
이 시는 1970년 5월 <사상계>를 통해 '담시(譚詩)'라는 독창적인 이름으로 발표, 파문과 물의를 일으키며 김지하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오적(五賊)>은 일제 통치의 암흑기 속에서 쇠잔하고 소실되어 버린 민족의 가락을 되찾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뚜렷한 목적 의식 아래 씌어졌다. 그러한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 문학의 새로운 진로에 큰 빛을 던져 주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 시를 대할 때에는 그 안에 담긴 내용 못지 않게 양식과 가락에 대해서도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담시란, '단형 서정시보다 길고 단편 소설보다는 짧은' 길이 속에 당대의 정치적 문제를 기습적으로 전달하는 '이야기 시'의 독특한 장르이다. 이러한 새로운 장르의 출현은 역사적 현실의 가장 첨예한 내용의 요청에 부응하려는 시도에서 그 정당성을 지닌다.
여기서 '오적(五賊)'이라고 못박은 사람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은 한마디로 말해서 일제 통치의 수혜 특권층이라 할 수 있다. 이 '오적'을 통해서 의도한 바는,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근대화된 질서를 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일제 잔재의 완전한 청산을 하고, 그런 후 새로운 인간에 의한 새로운 통치 이념의 구현을 해야 한다는 방향 제시였다고 하겠다.
김지하에 대하여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시 대안동에서 전기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영일"이고 글을 쓰면서 "지하"라는 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목포에서 중학교 2학년때 원주중학으로 전학하면서, 성당에 나가게 되어, 원주교구의 지학순 신부를 만나게 되며, 둘은 70년대 반독재 투쟁의 동료로써의 인연을 맺습니다. 서울 중동고에 진학, 백일장에서 입상, 시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서울대 미대 미학과에 입학한 김지하는 4.19 시민혁명 직후인 1960년 5월 판문점 남북학생회담 대표 3인의 한명으로 뽑히기도 했죠.. 그러나, 5.16 쿠테타 이후 학생 통일 촉진운동은 꺽이고, 김지하는 주동자로 �기게 됩니다..
서울대학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학생연합회의 소속으로 선언문을 발표한 김지하는 체포, 구금되었다가 넉달만에 풀려납니다. 이런 수난 끝에 1966년 8월 입학 7년반 만에 대학졸업장을 받게 되죠.. 그러나 다시 지명수배자가 되자 탄광으로 들어가 피신, 일을 하다가 폐결핵을 얻어 서대문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러한 끝없는 저항과 도피의 시간속에서도 김지하는 피를 토하듯 시를 썼고, 이 시들을 읽은 문학 평론가 "김현"은 월간지<시인>의 편집을 하던 "조태일"에게 넘겨, 김지하의 시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됩니다..
월간지 <사상계>의 편집장 "김승균"은 1970년 5월호를 기획하며, 세간에 나돌던 오적촌을 주제로 김지하에게 시를 청탁합니다. 오적촌은 정치를 잘해보겠다고 나선 박정희 이하 군인들이 권력을 잡은 뒤에 초호화 저택을 짓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었죠.. 사상계 편집장 김승균은 대학시절부터 학생운동을 함께한 김지하의 필력을 믿었고, 김지하는 불과 사흘만에 3백행이 넘는 장시를 담시의 형식으로 완성합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오적> 이죠..
담시 <오적>이 발표되고, 1970년 6월 3일 김지하는 북괴의 선전활동에 동조했다는 반공법 위반으로 긴급 체포 됩니다.. 박정희 정권과의 반체제, 민주화운동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된거죠...
[김지하 , 金芝河]
한국의 시인·생명운동가.
본명 : 영일
별칭 : 필명 형(灐), 반체제 저항시인
국적 : 한국
활동분야 : 문학(시)
출생지 : 전남 목포
주요수상 : 로터스상(1975), 세계시인대회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주요저서 : 시집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별밭을 우러르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반체제 저항시인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본명은 영일(英一)이며, 지하(芝河)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을 안고 있다.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원주중학교 재학 중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池學淳) 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나 광부 등으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하였다.
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저녁 이야기〉가 처음으로 활자화되었고, 같은 달 2년 동안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복학해 이듬해부터 전투적인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64년 6월 '서울대학교 6·3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4개월의 수감 끝에 풀려난 뒤, 1966년 8월 7년 6개월 만에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번역과 학생 연극에 참여하는 한편, 1969년 11월 시 전문지 《시인》에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저항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사상계》 5월호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낸 담시 〈오적〉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박정희 군사 독재 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 〈오적〉으로 인해 《사상계》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의 발행인·편집인이 연행되었고, 《사상계》는 정간되었다.
김지하는 이때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으나 국내외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석방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희곡 《나폴레옹 꼬냑》, 김수영(金洙暎) 추도시론 《풍자냐 자살이냐》를 발표하였고, 1970년 12월 첫시집 《황토》를 발간하였다. 1971년 이후에는 천주교 원주교구를 중심으로 계속 저항시 발표 및 저항운동에 전념하면서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1974년 4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주일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84년 사면 복권되고 저작들도 해금되면서 1970년대 저작들이 다시 간행되었고, 이 무렵을 전후해 최제우(崔濟愚)·최시형(崔時亨)·강일순(姜一淳) 등의 민중사상에 독자적 해석을 더해 '생명사상'이라 이름하고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이때 변혁운동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 당시의 시집으로 《애린》 《검은 산 하얀 방》과 최제우의 삶과 죽음을 담은 장시집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서정시집 《별밭을 우러르며》 등이 있다.
1990년대에는 1970년대의 활기에 찬 저항시와는 달리 고요하면서도 축약과 절제, 관조의 분위기가 배어나는 내면의 시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일산 시첩》이 대표적인 예이다. 1992년 그 동안 써낸 시들을 묶어 《결정본 김지하 시 전집》을 출간하였고, 1994년 《대설, 남》과 시집 《중심의 괴로움》을 간행한 뒤, 1998년에는 율려학회를 발족해 율려사상과 신인간운동을 주창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민족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70년대 내내 민족문학의 상징이자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으로서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사면과 석방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로, 복역 중이던 1975년에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상을 받았고, 1981년에 세계시인대회로부터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위의 저서 외에 시집으로 《꽃과 그늘》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예감에 찬 숲 그늘》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 등이 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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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오적(五賊)」 필화 사건 - 김남석
풍자시에 담아 낸 저항의식 ―김지하의 「오적(五賊)」 필화 사건
김남석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9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김지하는 1970년 5월 『사상계』에 담시(譚詩) 「오적」을 발표한다. 당시는 압제와 저항의 세월로 정의된다. 3선개헌 반대파동의 정신적 상처가 미처 아물기 전이며, 이듬해로 다가온 양대 선거를 맞는 시점으로, 독재와 대항하는 세력간에 첨예한 마찰이 고조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3선개헌으로 장기 집권의 걸림돌을 제거한 박정희 정권은 비판세력에 대한 탄압과 금제에 치중한다. 특히 저항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언론에 대한 감시의 눈길은 삼엄해진다. 이런 시점에서 장준하가 주재하는 종합잡지 『사상계』는 김지하의 저항적 풍자시 「오적」을 실은 것이 화근이 되어 권력의 희생물로 선택된다.
분단 이후 오랫동안 지성인의 양식을 대변해 온 공로도 무시된 채, 존폐의 위기에까지 몰린다. 원래 김지하의 「오적」이 『사상계』에 발표되었을 때만하더라도 시판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원만하게 마무리가 되었었다. 그런데 이 시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 6월 1일자에 실리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 6월 2일 새벽 1시 50분쯤 중앙정보부와 종로경찰서 요원들에 의해 『민주전선』 10만부가 압수되고, 김지하를 비롯하여 『사상계』의 대표 부완혁, 편집장 김승균, 『민주전선』 출판국장 김용성이 구속된다. 게다가 『사상계』는 판매금지를 당한다. 담시 「오적」이 <북괴의 선전활동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반공법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김지하는 법정에서 「오적」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동빙고동에 일부 몰지각한 부정 축재자들이 고급저택을 지어 놓고 호화생활을 한다는 보도를 보고 현지를 답사, 착상하게 됐으며 계급의식을 고취시키거나 계급간의 알력을 조장하기 위하여 쓴 것은 결코 아니다.1)
또한 김지하는 1970년 8월 18일 서울지법 대법정에서 열린 제3회 공판에서도 “다섯가지 도적―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옥편을 찾아야 겨우 알 수 있는 어려운 한자로 표기한 것은 교묘히 법을 피해 저지르는 부정부패가 보통 사람의 눈으로 투시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없는 어려운 한자로 썼으며, 다섯가지 도적을 짐승 이름을 뜻하는 한자로 표기한 것은 범죄행위 자체를 추상적으로 지칭하기 위한 것이며 어떤 계층이나 사람을 지적한 것은 아니었다”2)고 진술하며 반공법 위반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부인이 저항 정신의 퇴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정권이 1964년 <6.3 사태>를 빌미로 서울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진압할 당시, 이미 4개월간의 감옥생활을 경험한 그에게 또 한번의 체포는 그리 두렵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오적」의 서두에 개략적으로 나타난다.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뚝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몰오몰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것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오적」의 서두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것은 그의 과거 행적이 평탄치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도 사회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그에게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 없’게 한다. ‘볼기를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말이다.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당시의 민중들에게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의 풍자시 「오적」은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다. 정식으로 등단한 지3) 1년밖에 안 되는 김지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는 그의 이름이 지배층을 향한 불만과 비판과 야유의 대명사가 되는 결정적인 신호탄이 된다. 김지하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미움이 깊어지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사건은 김지하가 수감된 지 3개월 후 폐결핵 증세가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석방됨으로써, 떠들썩하던 시작과는 대조적으로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김지하가 1967년에도 폐결핵의 악화로 서울시립 서대문병원에 입원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다른 관련자들도 판사 직권으로 풀려 나와 필화 사건의 의미가 퇴색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당시 민중들의 마음에 풍자라는 새로운 저항의 개념을 선보인 파격적인 실례를 남긴다. 젊은 청년의 사심 없는 비판의 시선은 폭압적인 정치 질서에 숨죽이고 있던 민중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제시된다.
한편 『사상계』는 야당의원의 자금 지원이 밝혀지자, 9월 26일 문공부에 의해 잡지 등록이 말소된다. 혐의는 ‘신문통신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 위반이었다. 그후 『사상계』는 1972년 4월 대법원의 등록취소 청구소송 확정판결에서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운영상의 어려움이 심했고 정치적인 타격을 받은 후였기 때문에 복간에 성공하지 못한다.4) 김재홍5)은 김지하의 담시 「오적」이 “1970년대 벽두에 폭발적으로 발표된 단형서사시”라고 정의한다.
이 “폭발적”이라는 표현은 문학 내적인 측면과 문학 외적인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다. 가난한 서민의 분신 격으로 꾀수를 내세워 당대의 부패한 권력층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서슬 푸른 당시의 억압적 상황에 대한 격렬한 항변으로 간주된다. 이는 작가 의식의 측면에서, 당시의 잘못된 시대상을 바로잡으려는 굳은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비판적 전언에 해당한다. 그래서 민중의 항의 섞인 반항의 포즈를 한편으로 형상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유도하는 긍정적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한다. 전통의 판소리 사설을 응용한 새로운 시적 형식의 창조는, 풍자를 가하는 주체를 외부에 위치시킴으로써 서사적 자아의 객관성을 발현시킨다. 이는 현실에 대한 응전의 방식으로서의 시적 전략을 독특하게 일구어내는 효과를 거둔다.
문학 외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창조적 형상화의 작업이 검열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강압적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현실을 새롭게 인지하도록 하는 부수적 결과까지 초래한다. 따라서 김지하의 「오적」은 문학이 나아가야 할 하나의 지표를 제시하는 작업이었던 동시에, 문학이 저항해야 할 외부적 실체를 분명하게 인식시키는 담론상의 충격이었음에 틀림없다.
이후 김지하는 다시 풍자시 「비어(蜚語)」를 1972년 『창조』 4월호에 게재한다. 그 결과로 4월 12일 서울 시내 하숙집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해 연행된다. 오적사건으로 인해 기소중인 신분으로, 동일한 형태의 비판적 풍자시를 발표함으로써, 당국의 탄압을 집중적으로 받게 된 것이다. 당국은 『창조』 4월호를 압수하는 한편, 5월 31일에 김지하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다. 이 또한 7월 15일 병원 연금상태에서 비공식적으로 석방됨으로써 일단락되지만, 표현의 자유를 성취하기 위한 열망과 압제에 대한 반항 정신을 앞세운 그의 저항 노력은 당대의 일그러진 현실을 비추는 상징적 거울로 자리매겨진다. 「비어」는 「오적」의 연장선상에서, 김지하를 70년대 저항 문학의 대변인으로 각인시키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 작품이다.
90년대에도 몇 건의 필화사건이 있었다는 점에서, 검열과 이를 둘러싼 공방전은 낯선 것이 아니다. 따라서 김지하 「오적」 사건의 궤적을 추적하는 작업은 현재의 전범을 마련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90년대의 대표적 검열 사례인 마광수와 장정일 사건을 감안했을 때, 이 전범의 역활은, 90년대적 상황에 긍정적 동의로 작용하기보다는 반성의 쓴웃음을 유발하는 쪽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두 사건이 그 나름대로 문학적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유효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해도, 당대적 삶에 대한 진솔한 고민에서 출발한 진정한 자문의 결과물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세간의 웃음거리와 가십거리로는 크게 회자되었지만,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한 통찰력을 선사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의 본질적 속성 중에 하나인 저항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건으로, 우리에게 더욱 유효하다. 그러므로 「오적」 사건으로 비추어 본 90년대의 검열 사건은, 대사회적인 작가의 발언이 부재하는 현실의 서글픈 명패에 지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는 분명 중요하고, 원론적으로 논했을 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인 것은 부인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표현의 자유이고 어떠한 방식으로 제기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다지 자신만만하게 대답할 수 없다. 이러한 궁색한 답변 앞에서, 문학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현실과 사회와 개인의 삶을 일깨우고 검토하는 정심한 시각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는, 반성적 교훈만을 되뇌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검열의 정당성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공방전이, 현재 문학적 상황에 대한 씁쓸한, 그래서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문제 제기만을 계속 상기시킨다.◑
1)『한국문학필화작품집』, 황토, 1989, 7면에서 재인용.
2)『한국문학필화작품집』, 황토, 1989, 7~8면에서 재인용.
3)1969년 11월에 김현의 소개로 시인 조태일이 주재하는 잡지 『시인(詩人)』지에 「서울길」외 4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공식 등단한다.
4)김지하 「오적」,「비어」 사건의 개요는, 홍정선이 정리한 문학적 연대기 「어둠의 산맥을 넘어 횃불을 들고」(『작가세계』89년 가을호, 세계사)와 미야다의 「김지하 약전」(『김지하―그의 문학과 사상』, 세계, 1985) 그리고 「<오적> <비어> 필화사건에 대하여」(『한국문학필화작품집』, 황토, 1989)를 참고했다.
5)김재홍, 「반역의 정신과 인간해방의 사상」, 『작가세계』 89년 가을호, 111면.
주 : 위 자료 소스 - 포엠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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