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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역사학자와 하서 김인후와의 가상대담>

만년지기 우근 2007. 8. 7. 00:58
2003년 07월 31일 (목요일) 14 : 53  연합뉴스
<역사학자와 하서 김인후와의 가상대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강대 사학과 백승종 교수에게 어느 날 정체불
명의 이메일 한 통이 날아든다. 발신자는 이미 450년 전쯤에 사망한 하서(河西) 김
인후(金麟厚.1510-1560).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돌베개)는 이와 같은 만남으로 시작된 하서와
백 교수간 가상대담이라는 파격형식을 빌려 조선선비의 일상사를 들여다 본다.
전라도 장성 출신인 하서는 31살 때인 1540년(중종 35)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갔으나 5년만인 인종 원년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과 시창작에 몰두했다.
그의 학문이 조선시대 당대에 어떻게 평가되었는지는 문묘(文廟)에 배향된 소위
동국십팔현(東國十八賢)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하서를 고리로 16세기 조선 선비사회사상을 구축하기 위해 뜻밖에도 백
교수는 그 자신이 직접 하서를 만나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을 들고나왔다.
새로운 시도이니만큼 이에 대한 비판 또한 적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파격
적 형식에 따르는 위험부담도 크다는 뜻이다.
독일 유학에서 본격적으로 접한 미시사 혹은 일상사라는 새로운 역사연구방법론
을 한국사에 도입하고자 한 저자의 시도에 대해 그간 국내 학계가 보인 반응은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하서와 가상대담을 나누는 가운데서 저자는 이러한 학계에 대한 독기어린 비판
을 하서의 입을 통해 뱉기도 한다. 예컨대 소위 민중사관에 대해 하서는 "역사는 결
코 민중만의 것일 수 없소"라고 하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저자의 생각이다.
어떻든 백 교수는 하서 문집인 「하서」와 「왕조실록」 등의 사료를 토대로 다
섯 '마당'으로 나눠 하서와 그를 둘러싼 조선선비의 일상사를 재구성하려 한다.
이 가상대담에서 하서는 16세기 조선선비가 현재의 우리 상식에 자리잡은 모습
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았음을 증언한다. 예컨대 하서는 골수 성리학자로 알려져 있
으나 도교와 불교를 넘나든 인물이었다. 그만큼 사상적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또 이제는 상식이 되다시피하고 있으나, 결혼한 남자는 처가에서 한동안 생활하
기도 했으니, 하서의 사위 또한 그러했다.
하서로 대표되는 당시 선비들은 계를 비롯한 다양한 모임으로 단단히 결속돼 있
었다. 이런 연줄을 발판으로 초야에 묻힌 선비들은 현실정치에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하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를 백 교수는 '일상적 정치력'이라 부르
고 있다. 488쪽. 1만8천원
taeshik@yna.co.kr
출처 : 가평군향토문화연구회
글쓴이 : 길 위의 인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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