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기동에 내리는 안개
김 정 희
문밖 저편엔 누구인가
보이다 사라지고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 하나 자리잡고 있다
땅으로 숨을쉬고 하늘가에 열려버린 피바다
아픔은 진한 가슴보다 더 차갑게 뛰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어
사랑은 안개저편에 자리잡고앉아 눈물만 흘린다
흐르는건 시간만이 아니다
새벽에도 잠깨어 뒤척이던 눈
밤에도 켜져있는 형광등의 불빛 나의 눈빛
파리한 얼굴에 내려 앉은 지평선의 나래가
천천히 천천히
나는 간다 나는 숨쉬러 간다
나는 간다 나는 숨지러 간다
안개는 저녁에도 아침에도 자욱해서 좋은 나의 벗
안개는 보이지않음을 감추지 않아서 좋은 나의 사랑
편파적으로 퇴색해버린 인간들 앞에
가식으로 물들어버린 인간들 뒤로
회기동에 내리는 안개는 자욱하게 자리잡아
긴긴잠옷을 갈아 입는다
87.2.17
나의 생일에 부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