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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무엇인가

만년지기 우근 2007. 9. 2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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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학문)  [哲學, philosophy]의 사전적 의미 

                                                             

(philosophy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philosophia에서 유래)
근본적인 믿음의 근거에 관한 비판적 검토이자 그러한 믿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기본 개념들에 대한 분석.
 
개요
철학적 탐구는 문명의 지성사에서 핵심 요소이다.

 
철학의 발달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인 필로소페인(philosophein)이라는 단어는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 속에서 그리스의 현인 솔론을 언급할 때 처음 나온다.
솔론은 지혜를 찾아서 여러 나라를 순방했는데 신을 두려워하고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했다.
 
BC 6세기 후반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명리(名利)를 떠나 지혜를 간구하는 것이 애지(愛知)라고 말했다.
애지의 의미가 확정된 것은 BC 5세기 후반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행위가 애지라고 믿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그것은 곧 선(善)과 미(美)였으며, 이데아(idea) 혹은
에이도스(eidos 形相)로 표상되었다.
플라톤은 애지(철학)의 목표가, 생성·소멸·유전하는 다양한 존재로부터 이루어지는
감성적 세계를 뛰어넘어 불멸의 진실유(眞實有 ousia)인 이데아를 통해
인간의 혼을 선하고 아름답게 하고 나아가 세상을 선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한 것도 진실유인 에이도스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이같은 그리스의 철학은 기원 후의 로마 시대에 들어와
그리스도교가 그 교리를 형성하는 데 강력한 수단이 되었고 교리의 일부로 흡수되었다(→ 중세).
이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유대민족의 일분파 종교라는 한계를 초월하여 보편적·구체적 종교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의 애지(철학)는 그리스도교의 일신론(一神論)으로 다시 해석되어
유일 최고의 이 존재한다는 지혜에의 사랑이 되었으며 신학이 곧 철학이 되었다.
 
17세기에 들어와 새로운 철학으로서 자연학(自然學)이 생겼고
18세기에는 인간학(지금의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신의 존재가 학문에 대하여 갖는 절대적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수학은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는 신적(神的)인 순수지성의 작용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로 신 앞에서는 인격이 평등하다는 개념에 바탕을 둔 것이었으며
법적(法的) 정의도 원래 신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경제법칙의 배경에도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는 가정이 상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 이래 인간의 지혜(인지)에 기초하여
자연계와 인간계가 재편성되면서 인지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이어 19세기 초반 근대산업사회가 출현하면서 철학은 인간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학문적 지식의 탐구로서 그 의미가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이 단계에서 철학은 신학이나 종교로부터 독립하여 독자 학문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중세 서구의 신분제적 봉건주의시대에 지배사상이었던 '신중심주의 사상'이
근대서구의 민주주의적 '인간중심주의 사상'으로 사상의 조류가 바뀌어지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철학의 대상
 
소크라테스 이전의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의 연구대상이 자연이었다(→ 그리스 철학).
당시 자연은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현대인이 생각하는
자연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BC 5세기 후반 소크라테스 시대에는 관심의 대상이 자연에서 인간으로 옮겨져
인간의 혼이 얼마나 선량한가 하는 윤리적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이전의 철학을 부정하여 자연에 대한
지식이 인생을 잘 살아나가는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이후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고찰을
동시에 진행하여 거대한 철학체계를 정립했다.
중세에 들어와 철학의 대상은 자연도 인간도 아닌 신이었다.
중세에는 그리스도교가 지배적 사상이었기 때문에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게 되어
신에 대한 고찰이 중심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서는 다시 한번 철학의 관심이 인간으로 옮겨졌다.
인간은 전례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인간 위주의 입장에서 새롭게 모든 문제를 재검토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인간의 인식이라는 문제가 철학의 주된 연구대상이 되었다.
즉 인간이 여러 사물을 어떤 범위 내에서 인식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데카르트의 합리론과 로크의 경험론이 나와 대립하게 되었다.
합리론은 인간이 이성적 인식에 의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데카르트가 그 시조이며,
경험론은 인간이 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며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서 로크가 그 시조이다.
 
칸트의 철학은 이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하여 통일한 것으로서
그의 철학에서도 인식의 문제가 중심 테마이다.
19, 20세기에 철학의 과제는 여러 과학의 기초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믿은 신칸트 학파,
언어를 분석함으로써 언어의 문법적 형식에 제약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를 강조하는
분석철학 등도 인식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인식이 아닌 다른 분야를 중시하는 철학도 있다.
예를 들면 19세기의 헤겔과 마르크스는 철학의 중심적 대상이 역사(歷史)라고 보았다.
역사가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었다.
 
한편 19, 20세기의 니체·베르그송·딜타이 등이 주장한 생(生)의 철학은 비합리적인 생을 중시하여
그 생을 어떻게 파악하는가를 철학의 과제로 삼았다.
 
또한 키에르케고르·야스퍼스·하이데거·사르트르 등의 실존철학자들은
인간을 절대로 다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실존(實存)으로 파악하여
인간이 스스로의 자유를 발견하여 생의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을 철학의 중심과제라고 여겼다.
철학의 분야
 
철학은 대체로 인식·존재·가치의 세 기준에 의해 그 분야가 나누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 기준은 아니고 분류의 편의상 이렇게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다.
제1부문인 인식의 분야는 사고의 규칙과 인식에 대하여 탐구하는 것으로서,
논리학과 인식론이 포함된다.
 
헤겔같이 인식론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철학자도 있지만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한다고 할 때,
우선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 우리가 진리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등등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때문에 인식의 부문은 철학에서 중요한 분야가 된다.
 
제2부문은 존재하는 것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분야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형이상학 내지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개개 존재자가 갖고 있는 특수한 성질을 연구하고,
나아가 존재하는 것의 존재이유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같은 전통적 형이상학 이외에 역사·인간·사회 등의 근본적인 존재 양식을 탐구하는
역사철학, 철학적 인간학, 사회철학 등도 이 분야에 들어간다.
 
제3부문은 가치에 대한 탐구인데 윤리학·미학·종교철학·법철학 등이 여기에 들어간다.
가치에 대한 연구가 학문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철학자도 있으나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인생관·세계관이 반드시 필요하므로
이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중국철학의 주요체계에 대해서는 '공자','도가와 도교','불교','석가모니','유교','주희',
일본철학의 주요체계에 대해서는 '불교',
인도철학의 전통에 대해서는 '인도철학',
더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시크교','자이나교','힌두교',
서양철학의 전통에 대해서는 '서양철학사',
서양철학의 주요체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니체','데카르트','로크','마르크스','',
철학의 분야에 대해서는 '논리학','미학','심리철학','윤리학','이데올로기','인식론','철학적 인간학',
한국철학의 주요체계에 대해서는 '도가와 도교','불교','성리학','유교'항목 참조.
 
 

 


 
 

(동양 철학) 사전적의미 

사람의 몸에 깃들어 목숨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기운 또는 실체.
얼·혼(魂)·혼령(魂靈)·혼백(魂魄)·영혼(靈魂) 등과 같은 뜻으로 쓰이나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넋은 사람이 죽은 뒤에도 없어지지 않으며,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도 육신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드나들기도 하는 등 초월성을 가진다.
 
넋은 사람의 몸에 구애되지 않지만 사람은 넋이 빠져나가면 실성하거나 기절한 상태가 되고,
빠져나간 넋이 돌아오지 않으면 죽음에 이른다.
죽음과 넋의 이러한 관계로 인해 넋은 우리나라의 민간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즉 초혼(招魂)이나 반혼(返魂)의 관념과 행위는 죽음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초혼은 몸을 벗어난 넋을 불러들이는 것인데, 넋을 부름으로써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자 하는 바람으로 행하는 것이다.
때때로 이미 오래전에 몸을 떠난 넋을 불러들인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반혼이란 넋을 되돌아오게 하는 것으로, 저승으로 간 넋이 이승으로 다시 되돌아오면 사람이 살아난다고 믿었다.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저승을 다스리는 신이나 무당들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영혼의 환생이라는 개념과 결부된다. 반혼하는 넋은 다른 사람의 몸에 깃들 수도 있다.
무당에게 신이 들렸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산 사람의 넋은 생쥐와 같은 작은 동물의 모습을 지니기도 하며,
죽은 사람의 넋은 살았을 때의 모습이나 죽을 당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죽은 넋은 서로 모이는 일정한 장소가 있는데,
그곳이 저승이라는 관념과 연결된다.→ 혼백
 

 


 

 

                        

한국철학 사전적의미                                         

이기론 (성리학)  [理氣論]출처: 브리태니커

성리학(性理學)에서 이(理)와 기(氣)의 개념으로 자연·인간·사회의 존재와 운동을 설명하는 기본 이론체계.
이기론의 성립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기의 개념을 사용하여 사물의 존재와 운동을 설명했다.
기라는 포괄적 개념이나 음양(陰陽)·오행(五行)이라는 좀더 구체적인 개념으로 사물의 발생과 변화를 설명하고,
다양한 사물을 분류·체계화했다. 송대(宋代)에 성리학이 성립하면서 이 개념이 이러한 설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이와 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이기론이 확립되었다.
 
원래 중국철학에서 이의 개념은 불교적인 것이었는데, 특히 화엄(華嚴)사상의 사법계관(四法界觀)에서는
현상계를 가리키는 개념인 사(事)와 본체계를 가리키는 개념인 이의 상호관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리학의 이기론은 이 사법계관을 유교의 관점에서 흡수하여 재구성한 것이며,
그런 점에서 이기론의 성립에는 화엄사상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화엄사상에서의 이와 성리학에서의 이는 그 내용에 큰 차이가 있었다.
화엄사상에서의 이는 불교의 특징적인 세계관인 공관(空觀)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이의 내용은 공(空)·무(無)였다.
 
이에 반해 성리학에서의 이는 자연과 사회의 계층적인 질서를 근본적 실재로 파악함으로써 불교의 공관과는 대립하는 것이었다.
유교적인 관점에서 이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와 기를 결합한 이론체계를 세우기 시작한 인물로는 주돈이(周敦?)를 들 수 있다.
물론 그 자신은 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그의 〈태극도설 太極圖說〉에 보이는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는 개념과 우주생성론이
후대에 이기론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성리학에서 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기론을 체계화한 사람은 이정자(二程子)이다.
정호(程顥)는 '천리'(天理)라는 개념을 통해 한편에서는 이가 자연법칙을 가리키는 것이며,
또 한편에서는 정치적 질서 및 윤리도덕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정이(程?)는 '이일분수'(理一分數),'성즉리'(性卽理) 등의 명제를 통해 이기론적 세계관의 기본틀을 확립했다.
주희(朱熹)는 이러한 철학적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 장재(張載)의 기(氣)철학과 인성론(人性論)을 재해석하여
이기론에 바탕을 둔 성리학의 이론체계를 완성했다.
이기론의 구조
 
성리학은 자연·인간·사회의 존재와 운동을 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의해 우주 만물이 생성·소멸하며, 그런 점에서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그런데 기는 맑음과 흐림, 무거움과 가벼움 등에 따른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기로써 구성되는 우주 만물은 차별성과 등급성을 갖게 된다.
 
한편 이는 만물 생성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실재로서 기의 존재 근거이며, 동시에 만물에 내재하는 원리로서의 기의 운동법칙이 되기도 한다.
이일분수설에 따르면 모든 개개의 사물은 각각 개별의 이를 구비하고 있는 동시에 그 개별적 이는 보편적인 하나의 이와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기에 따른 현상적 차별에도 불구하고 이라는 보편적 원리·법칙에 따라 존재하고 운동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성리학에서 이와 기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명제로
'이와 기는 서로 떠날 수 없으나, 서로 섞이지도 않는다'(理氣不相離 理氣不相雜)는 말을 들 수 있다.
'이기불상리'는 이가 기에 의존하여 존재하고 운동하지만 동시에 기는 이가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고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기불상잡'은 현상적으로 이와 기를 분리할 수 없지만 논리적으로는 분명히 서로 다른 실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이와 기 가운데서 이가 기의 존재 근거이며 운동원리라는 점에서 논리적으로는 이가 기에 앞서며,
가치론적으로 이가 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명제가 '이선기후'(理先氣後)였다.
이러한 내용의 이기론은 '성즉리'라는 명제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성리학의 심성론(心性論)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나아가 그 심성론을 바탕으로 한 도덕정치론으로 직접 이어진다.
이기론에 바탕을 둔 인간 이해는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의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심성론으로 체계화되었다.
본연지성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천리(天理)로서, 도덕적 본성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기질지성은 인간 형성에 관여하는 기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육체와 감각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인간 본능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본연의 성에 따른 행위는 선(善)하며, 기질의 성에 따른 행위는 인욕(人慾)에 의해 악(惡)으로 흐르는 경향을 갖는다.
이때문에 인간은 끊임없는 수양을 통해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간직하여 잘 기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을 이러한 도덕적 실천으로 이끄는 것을 정치의 기본내용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곧 도덕정치론이었다.
그런데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이의 구체적 내용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비롯한 유교적 윤리도덕이었으며,
나아가 관료제나 신분제, 가부장제적·종법제적 가족제도 등의 명분론적(名分論的) 사회질서였다.
 
따라서 이기론은 유교적 윤리도덕과 명분론적 사회질서가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것임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면서,
그러한 명분론적 사회질서 속에서 유교적 윤리도덕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인간 본래의 모습을 실현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한국 성리학의 이기론
 
한국 철학사에서 이기론에 바탕을 둔 견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고려 말기인 14세기이다.
이때의 이기론은 주자성리학에서 확립된 이론에 따라 불교철학을 비판하는 정도였으나 점차 이기론에 대한 이해를 더해갔다.
그후 조선 초기인 15세기경에는 주자성리학이 관학교육의 기본내용으로 확립되면서
이기론은 지식인 계층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으로 자리를 잡았고,
15세기 후반 이후에는 이기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사회적 실천운동이 중요한 역사적 흐름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역사적 성과 위에서 16세기에는 서경덕(徐敬德)의 태허설(太虛說)이나
이언적(李彦迪)의 태극설(太極說)과 같이 이기론에 근거한 체계적인 이론이 제시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서경덕은 주자성리학과는 전혀 달리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입장에서 이기론을 체계화했다.
그후 16세기 후반에는 성리학에 대한 이론적 탐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그때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것은 오상(五常)과 사단칠정(四端七情)으로 포괄되는
인간의 성정(性情)을 이기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성리학은 심성론, 특히 사단칠정의 문제를 이기론적으로 해명하는 과정에서 이론적 깊이를 더하게 되었으며,
조선 성리학의 특징적인 이론체계를 확립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황(李滉)의 이기론과 이이(李珥)의 이기론인데,
전자를 가리켜 주리론(主理論)이라 하고 후자를 가리켜 주기론(主氣論)이라 한다.
주리론과 주기론은 이와 기를 사물의 본체로 인정하며, 이와 기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주리론은 이기에 관한 가치론적 설명에서 기보다 이를 중요시한다는 점과,
이기의 상호관계를 설명할 때 '이기불상잡'이라는 분개(分開)의 측면을 강조하는 데 반해,
주기론은 이기의 차별성을 인정하면서도 '이기불상리'라는 혼륜(混淪)의 측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주리론에서는 이가 명백히 객관적 실재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며 이와 기의 차별성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데 반해,
주기론에서는 이가 객관적 실재로서의 성격보다는 기의 법칙성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
또 주리론은 '이발설'(理發說)을 통해 이의 능동성을 주장함으로써 이를 형태는 없으나 운동능력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하고,
기와 함께 이에도 동정·운용·조작의 능력을 부여했다.
 
물론 주기론에서는 이의 운동능력을 부정하기 때문에 '이발'은 인정하지 않으며 오직 '기발'(氣發)만 인정한다.
심성론의 측면에서는 주리론과 주기론이 모두 '성즉리'를 주장하는 점에서는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주리론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별개의 존재로 파악하며 또 이의 운동능력을 인정함으로써
사단은 본연지성의 이가 발한 것으로, 칠정은 기질지성의 기가 발한 것으로 설명했다.
이에 반해 주기론에서는 기질지성 가운데 이의 측면을 가리켜 본연지성이라고 했고,
사단이나 칠정은 모두 기인 심(心)이 발한 것으로 그 가운데 선한 측면만을 가리켜 사단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주기론에서는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로서 이일분수설을 심화하고,
사물의 본체를 일기(一氣), 즉 태허로 파악하는 서경덕의 기일원론을 비판했다.
이러한 이황의 주리론과 이이의 주기론은 그후에 각각 주리파와 주기파로 불리는 학파에 의해 계승·발전되면서
한국 성리학의 커다란 두 흐름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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