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마당

용정산성

만년지기 우근 2008. 7. 17. 23:09

용장산성 - 역사적 배경

 

 본문

용정산성은 은 1270년 고려가 몽고군에게 항복하고, 강화도에서 개경으로의 환도를 결정하자 이에 반발한 무신정권하의 삼별초 지휘관들이 진도로 남하하여 몽고에 항전하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당시 세계는 몽고의 정복시대였고, 고려 또한 1231년부터 1258년까지 7차례에 걸쳐 침략을 당하였다. 고려는 몽고의 침입을 받은 다음해인 1232년(고종 19) 조정이 바다로 에워싸인 강화도로 피신하였으나 최씨 무신정권의 무능과 방탕ㆍ사치, 그리고 대몽 항전의지의 약화와 왕실 그리고 여타의 무신들간의 권력다툼이 계속된다. 그리고 10여년 간 세 번씩이나 정권이 바뀌는 등 혼란을 거듭하다가 결국 1270년(원종 11) 몽고와 화평이라는 형태로 굴복하고 만다.
이를 계기로 개경으로 환도한 조정은 더 이상의 항전을 중지하고 고려의 핵심 군사세력인 삼별초를 해산시키려 하였으며, 대몽항전의 실질적 주체였던 농민과 천민들의 활동도 소극적이 된다.
그러나 강화도에 남아있던 삼별초는 배중손(裵仲孫)을 중심으로 조정에 반기를 들고 대몽 항전을 계속하게 된다.

삼별초는 1270년 6월 1일에 배중손과 노영희 등이 주도하여 고려 11대 문종의 동생인 평양공 기의 직계 후손인 승화후 왕온(承化候 王溫)을 왕으로 받들어 새로운 관부를 구성하고 관리를 임명하는 등 새로운 정권을 세운다. 그리고 삼별초는 해전에 약한 몽고군과 끝까지 항전하기 위하여 배 1천여 척에 군사ㆍ가족 및 상당량의 무기들을 싣고 70여 일에 걸쳐 새로운 근거지 진도로 남하하게 된다. 그리고 벽파진에 도착하여 지금의 용장산에 산성을 구축하고, 용장산성 안의 용장사를 궁궐로 삼아 황제를 칭하면서 오랑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왜에 국서를 보내 자신들이 유일한 정통 고려 정권임을 표명하기도 한다.
이와 동시에 고려 조정과 몽고군은 수차례에 걸쳐 진도를 공략하여 실패하였으나, 1271년(원종 12) 5월 15일에 김방경(金方慶)ㆍ홍다구(洪茶丘)가 이끄는 고려ㆍ몽고 연합군의 10여일 간에 걸친 공격으로 왕온과 배중손 등 핵심세력이 죽음을 당하고 성은 함락되고 만다. 이후 삼별초의 잔여세력은 제주도로 건너가 3년간에 걸쳐 항쟁하지만, 1272년 진압되고 만다.
이렇듯 역사적 과정으로 볼 때 용장산성은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진도에 들어와 항전하다가 함락되고 김통정을 중심으로 하는 삼별초의 잔여세력이 제주도로 옮겨가기까지 1년 남짓의 기간동안 대몽 항전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역사적 의미가 깊은 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다음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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