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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방문의 해 방짜 유기박물관 이봉주 선생님

만년지기 우근 2011. 5. 4. 00:09

 

 

 

 

 

 

대구방문의 해 방짜 유기박물관을 아시나요?

                                                               우근 김  정  희

 

방짜는 놋쇠를 말하는데 우리나라 그릇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SUS304로 스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지식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과학의 발전으로 모든것이 발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지 곰곰히 생각 해 보는 방짜 유기박물관 관람이었다.

진흙으로 빚어서 만들어졌다는 세계 베스트셀러가 있다.

 

방짜는 내가 어릴때 가장 많이 보았던 그릇이다.

지금은 쓰는데 불편이 없는 재질로 많이 변형이 되어서 나온다.

하지만 명품이란 언제나 불편하다.

어떤것이든지 소장을 하게되면 수명이 다할때까지 쓰는게 내 버릇이다.

그런데 시절이 달라져서 필름카메라는 이제 사향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시는 분들이 많다.

화소를 이야기하면 필름카메라의 화소가 가장 높다는 표현을 하시는 사진작가님들이 계신다.

 

나는 디카와 필름카메라를 방짜와 스텐으로 구별하고 싶다.

천만화소 카메라들이 있지만 이미 개발된 상태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만 존재할까?

상상의 세계들로 우리는 이미 살아가고 있다.

방짜는 다루기 힘든 그릇이다.

종을 만들고 그 은은한 소리에 우리는 감동한다.

모든 물건에는 소리가 있다.

새소리,바람소리,사람소리를 말하고 싶다.

사람에게는 그릇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

같은 혀로 말하는데 왜 같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아름다운 명품 말만 하고 살다가 가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살다가야지 아이들이 그걸 배운다.

좋은 소리가 나는 명품 인간을 찾아 명품선생님에게 귀를 청소하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프다.

  

 

 

사월 초파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자!

부처님은 이 등에 있다.

우리는 다 부처님이다.

 

 

4월의 마지막 날 새벽에 비가 내린다.

 

 

KTX를 타고 대구로 향하는데 ~~~.

이 비는 언제나 그치려나.

 

 

나는 장대비를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장대비가 내리지 않기를 기도했다.

 

 

2011년 대구 방문의 해 표지판이 보인다.

 

 

2011년 대구 방문 추진의 해 추진 기획 단장 류정현선생님 입니다.

 

 

해설사 선생님께서 방짜 유기박물관에 대해서 설명을 하십니다.

 

 

방짜 유기박물관에 세워진 솟대를 보면서 우리 문화가 더 이상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버리지 않고 이런 박물관에 기증하는 문화가 꽃피웠으면 합니다.

 

 

지금도 제기 그릇으로 방짜를 써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놋쇠로 만든 기물의 총칭.
유기제작 /유기를 제작하는 모습, 국립민속박물관
놋그릇이라고도 한다. 유기는 청동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의기(儀器)·무기·생활용기 등에 널리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8세기경에 유기제작을 전담하는 관서인 철유전(鐵鍮典)이 설치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각종 생활용기뿐 아니라 불교 공예품이 높은 수준의 기술로 제작되었다.

 

조선 초기부터 구리의 채굴을 국가에서 장려했고, 민간에서는 물론 관영수공업체인 경·외

 

공장에 유장(鍮匠)을 분속시켜 궁중과 관청의 수요에 대응했다.

 

특히 도자식기가 보편화된 조선시대에도 겨울철에는 도자기에 비해 보온력이 뛰어난

 

유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보수성이 강한 제기류는 전례를 충실히 따라 유기의 사용을 규범화했다.

 

유기는 구리에 아연을 합금한 주동(鑄銅)과 주석을 섞은 향동(響銅)으로 구분되는데,

 

이 합금은 제작기법과 기물의 용도를 동시에 구분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즉 주동은 거푸집을 쓴 주물기법으로 만들며, 합금 재료인 아연은 독성을 지녀 식기류를 제외한

 

향로·촛대·재떨이 등을 제작하는 데 사용했고, 향동은 불에 달구어가며 두드리는

 

단조기법으로 전통 타악기나 식기류를 만드는 데 쓰였다.

 

전자를 주물유기, 후자를 방짜유기라고 하며 제작기술도 서로 다르다.

 

주물유기는 제작공정이 비교적 단순한 데 비해 방짜는 11명의 잘 훈련된

 

유기장을 한조로 하는 치밀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각 공정을 마무리한다.

 

특히 방짜유기는 안성지방을 중심으로 납청과 함양 등지에서 크게 번성했던 대표적인 유기제작기법으로서,

 

불꽃의 온도를 감지하고 전통 타악기의 음률을 고르기 위해 소음이 적은 밤에 주로 작업했다.

 

그릇의 주둥이가 몸체보다 좁아 주물 제작이 어려운 주전자와 같은 것은 주물과 방짜기법을 절충한 반방짜기법으로 제작했다.

 

즉 몸체는 주물기법으로 만든 뒤 필요한 부분만을 단조로 처리했다.

 

주물이나 방짜기법 모두 기형이 잡힌 뒤에는 갈이틀에 걸어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어 완성한다.

 

유기장은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었으며 기·예능보유자로 윤재덕(尹在德 : 반방짜, 1994 해제)·

 

이봉주(李鳳周 : 방짜)·김근수(金根洙 : 주물)·한상춘(韓相椿 : 반방짜)이 있다.→ 방짜

 

출처: 브리테니커

 

 

 

 

이봉주하면 떠오르는 마라톤선수의 이름입니다.

유기장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이봉주선생님도 계십니다.

 

 

 

 

 

 

이 징을 몇번이나 쳐 보았습니다.

그 은은한 소리에 반했습니다.

 

 

 

컴맹인 제가 전자 방명록을 남기느라 여기에 시간을 다 보냈다고 해도 됩니다.

방짜 유기박물관의 과학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 잘 어울려서 살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