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정동여행]눈부신 봄날 다같이 돌아보는 정동한바퀴
우근 김 정 희
서울에 살면서 서울을 구석 구석 다같이 걸어보는 정동한바퀴는 봄날이 가기전에 눈이부시도록 아름다운
서울 정동을 2012년 4월14일 13:30분에 모이기로 했는데 문화해설사 두선생님께서 오늘 해설을 해주셨다.
친구가 도착하지 않아서 나는 두번째 문화 해설사선생님으로 택했다.
정동극장은 그 자리에서 올해 봄도 맞이하고 있었다.
대한문인 덕수궁에서 먼저 사진을 담았다.
덕수궁 돌담길은 차로는 참 많이도 다녔지만 걸어서 정동길은 아마 처음인거 같다.
근대문화유산1번지라고 말하고 싶다.
정동은 덕수궁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이조 역사가 무너지고 일제강점기로 들어서는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곳이며 곳곳에 외교공관들이 들어서고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서양인촌을 형성했다.
지금도 미국대사관저를 비롯하여 많은 외교관들이 정동에 있다.
원래 정동은 1396년 태조5년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도성안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에 의해 도성밖으로 나가는데 지금의 정릉동으로 옮겨지면서 정동은 정릉의 이름만을 남기는 역사만 있다.
정동을 2시간이 넘도록 걸어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역사라는 관점에서 바라다 보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이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공간도 언젠가 역사에 남을 것이다.
문화해설사선생님의 꼼꼼하신 해설과 더불어 느끼는 것은 다시는 나라를 잃어버리는 슬픈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명성황후시해와 아관파천으로 고종황제께서 세자 순종과 1년9일을 러시아공사관에서 머물게 된다.
정동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너머에 있는 우물터에서 유관순열사가 공부를 하면서 빨래를 했다는데
이제 우리나라 21세기에는 세계에서 최고의 나라로 발전하기를 기원했다.
정동길을 한발자욱 걸으면서 느끼는 애국이란 무엇인가.
나라가 있어야 우리가 자유롭고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덕수궁[경운궁]사적제124호로서 임진왜란1592년 이듬해 선조의 임시 거쳐로 쓰시다가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경운궁이라 했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하면서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012년 4월14일 13:30분 정동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봄날처럼 아름다운 정동극장은 그 모습 그대로 봄을 느끼게 한다.
30여명씩 나누워서 2조로 출발하는데 남자해설사선생님과 함께 동행했다.
역사문화해설사선생님들의 해설을 들으면서 느끼는 관광체험을 해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봄길을 걸어가는데 "눈부신 봄날엔"이라는 문구가 얼마나 마음을 설레이게 했는지 모른다.
인생도 눈부신 봄날이 오기를 바란다.
모두 모두에게 다 꿈이 이루워졌으면 한다.
신아신문사가 지금은 없어지고 건물만이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구러시아공사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53호로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이 세자 순종과 1년9일간 피신해 머물렀던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구 러시아 공사관을 걸어 올라가면서 고종황제의 쓰라리고 참혹한 그 현실을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3층 건물 하나만 덜렁 하나만 남아 있다.
구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으로 건물이 크게 파손되어 현재는 3층 망루만 남아 있다.
구러시아공관을 보면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선생님 시가 머리를 스친다.
지금은 봄이다.
구러시아공관을 내려와서 유관순열사가 빨래 하던 우물터를 보러 갔다.
유관순열사는 이화학당을 다니셨다.
소나무 아래로 보이는 우물터는 열쇠로 잠겨져 있다.
유관순열사 우물터 앞에 파여져 있는 돌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린다.
세수를 하던곳인가!
유관순열사가 빨래 하던 우물을 내려오면서 길을 담아 보았다.
인생에도 길이 있다.
걸어보는 길과 걸어보지 못한 길.
벽돌사이로 이화박물관을 담아 보았다.
혼자이기가 어려운데 유교수님께서 커피 한잔을 앞에 놓으시고 무언가를 담으려 하신다.
이화박물관은 참 단아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해설사선생님께서 고종황제 모습을 보여 주신다.
왼쪽은 그리신 작품이고 오른쪽은 사진이다.
두 모습이 현격하게 다르다.
역사를 반증한다.
정동길에서 정동교회를 지나가는데 나무를 바치는 나무가 쓰러져 있다.
위험하니 치우시기를 ~~~.
덕수궁 돌담길에서 봄 연인을 담아 본다.
정동교회 사적제256호로 정동제일교회이며 1885년 4월에 최초의 서양식 개신교이며 독립선언문이 동사 되었던 곳이다.
미국공사관들어가는 길은 덕수궁 바로 옆으로 가장 큰 건물이다.
주한미군 대사관저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2호,주한미군대사관저 영빈관이다.
문은 굳게 닫혀져 있다.
몇일전 카메라가 없는 관계로 한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덕수궁 돌담길과 미대사관저 돌담길을 담아 보면서 비교해 보았다.
느낌이 완연하게 다르게 다가온다.
미 대사관저 담인데 역사를 보여준다.
옛담과 현대 담이 만나서 담사이로 개나리 꽃이 만발했다.
노랑꿈이 실현이 되려는지 어여쁘게도 피어있다.
이길을 뚫으면 세실극장과 연결이 되려는가!
원래 미대사관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는데 우리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나무 한그루만 덩그마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구경기여고 자리다.
담쟁이 덩쿨이 모여있으니 하나의 작품으로 보인다.
봄인데 너는 언제 새생명이 되느냐고 물었다.
무엇으로 복원이 될것인가!
덕수초등학교는 1912년 세원진 학교로 너무나 유명하다.
덕수초등학교안에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전파가 여기에서 시작 했다.
첫방송터를 본다는것은 바로 해설사선생님때문이라 생각한다.
구세군 중앙회관은 한참 유리공사를 하고 있다.
덕수궁에서 고종황제가 계실때 전기가 들어 왔는데 전기시설이 있었던 문이다.
덕수궁 돌담이 두종류가 있다.
큰돌담이 있었는데 운교라는 다리가 있었던 흔적이다.
운교도 다시 복원되기를 바란다.
대법원이 있었던 자리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바뀌었다.
배제학당역사박물관이다.
해설사선생님께서 80회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한 배제학당을 설명해 주셨다.
오래된 책상앞에 앉아 보았다.
배제학당 가념관에 들어서면 처음 보이는 귀한명언이다.
배제학당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조형물이 두개가 있다.
그 하나이다.
뒤쪽에 하나가 더 있다.
꽃에 다같이 돌자 정동 한바퀴를 놓고 담아 보았다.
봄처럼 화사하고 이쁘다.
배제학당에서 525년된 향나무가 하늘을 바라다 보고 있다.
정동한바퀴의 마지막 중명전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장소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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