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마당

[스크랩] 한국의 부촌울 찾아서 (3) [고제희의 풍수기행]

만년지기 우근 2007. 8. 10. 08:58
평창ㆍ구기동/도심 속 산골마을…권력층들의 안식처


 

 

 

 

 

 

 

 

 

 

 

 

 

 

 

 

 

 

 

 

[고제희의 풍수기행]-평창은 작가와 예술가, 구기엔 정치가


   서울 평창동은 북동방의 문장암, 남쪽의 북악산 그리고 북쪽의 비봉에 의해 에워싸인 산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가려져 있 어 마치 함지박 속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굳이 풍수지리학적으로 이름 을 붙이자면 '함지박형'이라고 할 수 있다. 평창동은 북한산 보현봉 아래 산기슭으로 호화로운 저택이 밀집해 있는 동네를 말한다.주위를 에워싼 연봉들은 마치 불꽃이 피어오르는 형상의 화산(火山)이다.

 

이처럼 산세가 유순하지 못한 채 수많은 바위와 암석으로 이뤄진 것 을 풍수는 '문필봉'이라 부르며 문장가를 배출할 터로 여긴다. 또 은 산이 사방을 에워싼 가운데 그 중심부로 계류가 급히 흐른다. 따라서 , 계류 가의 정자에 올라 음풍농월하거나 자연에 안긴 채 시ㆍ서ㆍ화에 빠져 세상의 번잡함을 잊기에 좋다. 그런 의미에서 평창동은 일찍부터 작가와 예술가의 터로 주목받던 곳이었다.

 

그렇지만, 평창동은 정치인과는 성격이 맞지 않아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을 여러 명 좌절시켰다. 정치인에게 대길할 터는 주산이 목성(木星)이 거나, 관운을 상징하는 사모사(紗帽砂ㆍ관리가 머리에 쓴 모양의 산)나 인암(印岩ㆍ도장 모양의 바위)이 주위에 있어야 하는데, 평창동에는 그 런 산이나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구기동은 비봉에서 북한산성을 따라 남진한 두 용맥 사이에 펼쳐 진 편편한 지형 위에 자리 잡았다. 구기동은 굳게 닫힌 수구(水口) 안으 로 들어서면 갑자기 공간이 넓어 보이는데, 서쪽을 남북으로 가로막은 북한산성의 형세가 마치 누에 머리와 같은 잠두형(蠶頭形)이다. 누에는 고치를 짓고, 옥녀는 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을 짤 것이다.

 

따라서, 구 기동의 풍수적 형국은 옥녀가 베틀에 앉아 비단을 짜는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의 명당이다. 비단은 귀한 옷감이니 왕족이나 벼슬 높은 관 리만이 입을 수 있다. 따라서, 이 곳의 소응은 직위가 높은 관리를 배출 할 터로, 공직자나 정치인이 살면 대성할 명당이다. 땅은 살아 있는 생명체로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고,

 

그 성격에 맞게 땅을 이용할 때만 지덕(地德)이 발동하며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구기동은 공직자나 정치인이, 평창동에는 작가와 예술가들이 살아야 산천의 기를 상생으로 받아 대성할 것이라 생각한다.




[박인호의 현장 르포]- 68년 '1ㆍ21 사태'후 주택단지 개발…문화예술촌 변신중

    청와대 뒤편 북악스카이웨이 중간께에 있는 팔각정에 올랐다. 북쪽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창동(平倉洞)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한산 줄기의 비봉 보현봉 그리고 형제봉, 인왕산 문장암, 남쪽으로는 북악산 등이 첩첩이 잇대어 있다. 서울 도심 속에 이렇게 고립된 큰 부 촌이 있다니….

 

평창동은 조선시대 선혜청(宣惠廳)의 평창(平倉)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 곡물을 저장하던 창고와 군대의 훈련소가 있었던 산촌이었다. 지세를 가만히 살펴보면, 세상과 담을 쌓은 도인들이 칩거하고 있을 법 하다. 자연을 노래하고 화폭에 담아내는 문화예술인, 세파에 찌든 정치 인이 자연을 벗삼아 휴식을 취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 같다.

    평창동 부촌에는 정치권 고위 인사와 학술ㆍ예술인, 그리고 일부 재계 총수가 어울려 산다. 정치인들이 풍수지리를 믿고 사는 구기동(舊基洞) 과 함께 강북 최고의 권력촌이라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구기동 부촌은 정치인이 선호하지만, 규모는 훨씬 작은 편이다.

 

구기동은 '구텃 골'을 한자로 옮긴 지명으로, 예전에 큰 마을이 있었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높은 산이 3면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남쪽만이 트인 형세의 구기동은 '택리지'에 사람이 살 만한 명당으로 묘사돼 있다.

    평창동은 부촌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유명 문화예술인이 모여 산다 . 또 보현봉과 형제봉 비봉 등을 오르는 일반 등산객을 자주 접할 있어 서일까. 평창동은 여느 부촌과 달리,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도심 속 산촌에 불과했던 평창동이 부춘으로 바뀐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사람이 살기에는 기가 너무나 세다 해서 일대 바위마다 토속 종교의 제 사에 쓰이는 촛불이 가득했던 평창동은 지난 1968년 '1ㆍ21 사태'로 불리는 무장간첩남파 사건으로 운명이 바뀌게 된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관계 기관'은 평창동 일대에 민 가를 건립키로 하고, 부랴부랴 74년부터 주택단지로 개발하게 됐다. 처음에는 싼 택지값에 몇몇 문화예술인들이 이주했고, 그 후 산수를 즐 기려는 재벌 총수 일가와 학자들이 이주했다.

    평창동이 강북 최고 권력 촌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불과 10년 전인 김영삼정권 시절이다. 최형우 전 국회의원이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기 위해 평창동 일대에 터를 틀면서 자연스럽게 권력촌으로 자리 잡아 간다. 이후 서석재 전 의원과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평창동으로 이사했고, 마지막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가 인근 구기동으로 이사오면서 권력촌의 위상 을 갖추게 됐다.

 

동교동계의 맞형 권노갑 전 의원, 문재인 청와대 정무 수석도 평창동에 거주한다. 현재 평창동과 구기동에는 박준규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정몽준ㆍ현승 일ㆍ김기춘ㆍ김일윤 의원, 금진호ㆍ박재홍ㆍ최재욱 전 의원 등 전ㆍ현직 의원 20여명이 살고 있다. 최기문 경찰청장, 김덕중 교육부 장관, 김세 옥 경호실장,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 전ㆍ현직 관료들도 상당수 가 평창동 주민이다.

 

그러나, 평창동과 권력, 양자의 인연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김윤환 전 의원이 "평창동은 기가 세서 정치인에 좋지 않다"고 말하 고 다닐 정도로 평창동에 자리 잡은 정치인이나 권력가 상당수가 불운을 겪었다. 최형우 전 의원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서석재 전 의원은 설화 로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정치적으로 좌절을 겪었다. 오랜 평창동 주민 이던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도 옥고를 거치면서 이제는 동부이촌동으로 이사했다. 정몽준 의원이 지난해 대통령후보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문전박대했던 곳도 바로 평창동이다. 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거론되던 이광재 전 실장은 구기동에 산다.

     정치인의 불운과 달리, 평창동의 산세는 문화예술인'과는 궁합이 맞는 듯하다 . 예술 창작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일까. 보현봉을 오르다 보면 역사소 설가로 유명한 월탄 박종화 선생이 문학작품을 구상했던 작수루가 있다 .

 

또, 작가들의 보금자리로 불리는 영인문학관이 들어서 평창동이 명실 상부한 문화예술인의 명당터임을 자랑한다. 평창동에는 현재 유명한 문화예술인이 다수 살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를 비롯해 소설가 박범신ㆍ양귀자, 화가 김흥수 , 세계적인 지휘가 정명훈, 연예인 고두심ㆍ윤여정ㆍ이혜숙ㆍ이용식 등 이 평창동 주민이다.

 

미술가를 비롯해 작가와 음악인, 여기에 연예인까지 합하면 문화예술인 이 줄잡아 400여명을 웃돈다고 한다. 윤방부 서울대 교수, 김덕룡 단국대 총장, 이리형 한양대 부총장 등 6 0명 안팎의 유명 교수들도 평창동에 둥지를 틀었다. 일부 문화예술인과 교수들은 자체적으로 한 달에 한 번꼴로 '평창포럼'에서 만나 세상 돌 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하지만, 평창동에는 성북동이나 한남동처럼 내로라하는 재벌가는 그다 지 많지 않다. 평창동이 부촌 순위로는 항상 9위나 10위권에 있다. 조양 호 대한항공 회장 등 한진그룹 일가와 신준호 롯데햄 대표이사 부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 정도만이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다.

     정치인 보좌관이나 사설보안업체 직원들은 빌라의 화려한 외관에 놀라 고 소박한 실내에 다시 한 번 놀란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인이나 학자들의 경우 검소한 성품 탓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집 내부를 화려하게 꾸밀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일까. 부자 동네인 만큼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배짱형 부자도 있다.

 

자유 분방한 문화예술인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보안컨설팅업체에 근무하는 김모 씨는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평창동 의 또 다른 삶을 들려줬다. 보안 상담을 위해 고급 빌라 내부를 자주 볼 수 있는 김씨를 가장 놀라게 했던 집은 거실 바닥이 수족관으로 만들어 졌던 빌라. 김씨는 발 밑에 팔뚝 크기의 금붕어들이 노니는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또 마당에 덩그라니 골프장 한 홀을 조성 한 집, 방 하나를 아예 금고로 개조한 주택에 대해서도 쓴웃음을 지으며 털어놨다.

    평창동은 곳곳에서 빌라를 신축하거나 증ㆍ개축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다른 부촌에 비해 주택거래가 자주 이뤄지기 때문이다. 남이 살던 집에서 그냥 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주인이 바뀐 빌라는 전혀 다른 집으로 변한다.

 

평창동 일대는 부촌임에도 주택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거래 가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설립 연도나 평 수가 워낙 다양해 평균 매매가를 산정하기는 어렵지만, 평당 500만~600만원 정도에 건축비 를 따로 계산해야 한다. 평창동 협신공인 송해명 사장은 "주택 가격보다는 오히려 건축비가 평 당 1000만원 이상 하는 집들도 많은 데다, 워낙 증ㆍ개축이 심해 평균적 인 가격을 내는 것이 무리"라고 설명했다.

 

손수근 기자(zzazan@heraldm.com)




[대표적 문화시설]-신흥 예술촌…

    서울 평창동은 부촌 가운데서도 가장 '쿨(cool)'한 부자 동네다. '격조'와 '운치'에 있어서 여타 부촌이 따라오기 힘든 곳이 평창동이다. 북한산 자락에 푹 파묻혀 있어 산내음이 그득한 데다, 10여개가 넘는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문화의 향기'를 마구(?) 뿜어내기 때문이다. 소비지향적 업소가 주변에 즐비한 여타 부촌과는 그 격이 다르다. 평창동에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미술관과 화랑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인사동이나 청담동에 비해 땅값이 현저히 쌌기 때문. 도심에서차로 10분여거리인 데다, 자연 경관을 음미할 수 있는 것도 한몫했다. 단순한 주택가였던 평창동을 문화 타운으로 변모시킨 주역은 올림피아호텔 맞은편에 위치한 가나아트센터. 92년 문을 연 토탈미술관이 '진짜원조'지만, 국내 최대의 화랑이었던 가나화랑이 98년 평창동에 850평 규모의 복합 문화공간을 건립한 후로 애호가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이곳의 '빌'레스토랑'은 평창동 유명 인사들도 커피나 와인을 마시기위해 즐겨 찾는 곳이다. 게다가,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을 필두로, 그로리치화랑 갤러리세줄등이 잇따라 자리 잡으면서 한적했던 평창동은 본격'문화벨트'로 변모중이다. 미술가들도 몰려왔다. 평창동에는 '물방울 그림'으로 이름난김창렬 씨 등 100여명이 살고 있다. 또, 문인 음악인까지 합치면 문화예술인 거주자는 400명이 넘는다. 그러나, 평창동 주민 중에는 화랑 등의 입성을 마땅찮게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수선함이 싫다는 것. 이에 대해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대표는 "문화 유적과 명소가 많은 평창동의 특성을 살린 지역밀착형 문화 이벤트로 평창동만의 색깔을 가꿔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출처 : 머천다이징과 부동산개발의 미래
글쓴이 : MDKIM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