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의 아내
~ 정조를 지키고자 목숨을 걸었노라 ~
저는 이름 없는 계집이랍니다. 우리 시대에 평민은 이름도 성도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같이 보잘것없는 인민은 백성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요. 그저 도미(都彌)의 아내라고만 알아주세요. 저의 남편도 성은 없고 그저 이름만 도미랍니다. 도미란 이름은 생선장수로 벌어먹고 살았는데, 얼굴이 마치 도미처럼 넓적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나요. 그래서 도미가 이름이 되고 말았다는군요.
한문자로 그렇게 쓰는 건 나중에 유식한 사람들이 우리 부부의 애달픈 사연을 역사책에 쓰기 위해서 그 두 글자를 따서 붙였다네요. 아이, 그런 머리 아픈 얘기는 하지 말기로 해요. 전 사실 배운 게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하여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역사책에 들어갔느냐구요? 그래요. 이제부터 제가 여러분께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는 거예요.
지금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나라는 고구려랍니다. 전에는 백제에서 살았었죠. 그런데 어찌하여 고구려에서 살게 되었느냐구요? 그래요. 그 기막힌 사연을 지금부터 여러분께 들려드리려는 거예요.
제 남편 도미는 착한 사람이랍니다. 정말이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하고 온순하기 그지없는 사내랍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두 눈이 멀었느냐구요? 오오, 애달프고 원통한지고! 그래요. 그 기막힌 사연도 지금부터 여러분께 남김없이 들려드릴게요.
우리 부부가 이렇게 고구려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인정 많으신 고구려 대왕과 인민 여러분이 따스하게 보살펴주신 덕분이라고 여기고 늘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 부부가 백제 땅에서 벗어나 고구려로 넘어와 살게 된 기막힌 사연, 눈물겨운 사연을 처음부터 들려드리렵니다.
제가 어찌하여 미인으로 소문이 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제가 거울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미인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을 만큼 썩 예쁘게 생겼다는 생각은 들지 않거든요. 하지만 잘 모르겠네요. 아무렴 저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이 본 대로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사실 제가 어렸을 적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듣기는 했답니다. 부모님도 늘 이렇게 말씀하셨죠. 아이구, 우리 애기 참 예쁘게 생겼다! 꽃보다도 아리땁고 달님처럼 환하게 아름답구나! 이담에 크면 꼭 귀한 집으로 시집가서 아씨마님으로 호강할 게야!
그리고 시집간 다음에는 남편 도미도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저를 보고 우리 색시 참 예쁘네! 이 세상에서 으뜸으로 예쁘네! 어쩌구 하면서 추켜세우기도 했으니까요.
저의 친정은 백제의 도성인 한성 바깥 변두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가난한 집안이었어요.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고 집안일도 익히다가 나이 열여섯 살 과년한 처녀로 자라자 이웃 동네 나루터마을에 사는 노총각 도미에게 시집을 갔답니다. 제가 시집간 그 마을, 도미가 살던 그 마을이 나중에는 송파나루라고 하더군요.
도미는 저보다 열 살이나 많은 노총각이었답니다. 그런데 도미가 그때까지 장가를 가지 못한 까닭은 오로지 저 때문이었어요. 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도미가 이미 5년 전부터 저를 눈여겨보고서는 부모님께 이렇게 부탁을 했다지 뭐겠어요! 내가 비록 지금은 생선장수를 하면서 바닷가로 강가로, 또는 이 마을로 저 마을로 정신없이 떠돌아다니고는 있지만 많은 돈을 벌어 댁의 따님을 색시로 맞을 터이니 다른 곳으로는 절대로 시집을 보내지 마십사 했다는 거예요, 글쎄! 그리고 5년 안에는 반드시 저를 아내로 삼겠다고 맹세를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그 말을 듣고 저도 은근히 그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뭐. 아이, 이런 처녀 때 얘기까지 다 털어놓으려니 참 부끄럽네요!
결국 도미는 많은 돈을 벌어왔고, 아버지는 약속대로 저를 도미에게 시집을 보냈던 거예요. 저를 아내로 맞은 도미는 도성 변두리 아리수 강변에 새 집을 짓고는 하인과 하녀도 한 명씩 두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지요. 도미는 더 많은 돈을 벌 필요가 없다면서 생선장수는 걷어치우고 말았어요. 그저 아리수 강변에 나가 낚시를 즐기거나, 텃마당에 채소를 심고 가꾸면서 한가롭게 사는 걸 좋아했죠.
아, 그런데 호사다마란 말도 있지만 우리 부부의 행복한 날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말았답니다. 정말이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추악한 사건에 휘말려 들었던 거였어요. 오오, 그건 참말이지 기구한 운명의 저주였어요!
우리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본 이웃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제 미모도 발 없는 말을 타고 쏜살같이 도성 안팎으로 소문이 퍼졌던 것이었지요. 참 나, 내가 뭐 그리 예쁘다고…
심지어는 성내 저자거리의 건달들 사이에서 이런 해괴망측한 쑥덕공론도 벌어졌다고 하더군요.
"도미 그 친구는 참말로 장가를 잘 들었어야."
"맞구먼 맞어! 도미 그 자가 몸집이나 얼굴이 잘난 것도 아니고, 나이가 젊거나 힘이 장사도 아닌데 어쩌면 저토록 어여쁜 마누라를 얻게 됐을꼬?"
"혹시 그 친구 ‘물건’이 기막히게 크든지, 아니면 낚시를 좋아하니 ‘밤낚시 기술’이 대단히 좋은 게 아닐까?"
"예끼, 싱거운 사람 같으니라구!"
"참말이지 도미 저 눔은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격이 아니구 뭔가 말여!"
"어쨌거나 도미처럼 우리 백제국에서 재수 좋은 놈은 또 없을 거여!"
"아, 그뿐인가! 도미 마누라가 또 얼마나 얼굴값을 하는데!"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그만큼 제 몸을 빡세게 지킨다는 말일세! 성안에서 내로라하는 바람둥이들이 도미가 없을 때마다 어떻게 좀 해보려고 온갖 수작을 다 떨어도 눈썹 하나 까딱 않는다는 게여!"
"히야! 도미 그 친구야 말로 여복이 터진 친구구만 그려!"
하릴없는 자들은 그런 소리를 주고받으며 제 남편 도미의 행운을 부러워하고 시샘도 했다는 거였지요.
그때 우리 백제국의 임금은 개루왕(蓋婁王)이란 사람이었어요. 사실 저와 제 남편 도미가 역사책에 길이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까닭은 우리 부부의 사랑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이 굳세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온갖 추태와 악행을 다 부린 백제국의 제4대 임금 개루왕이란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어쨌든 제 말을 계속해서 들어보세요.
제가 나라 안에서 으뜸갈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며 정절도 매우 굳세다는 소문은 대궐까지 들어가 마침내 개루왕도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처음에 그런 소문을 들었을 때에 개루왕은 하찮은 백성 가운데 어찌 그런 여인이 있을 수 있겠느냐면서 코웃음을 쳤다더군요.
"흥! 별 웃기는 소리도 다 듣겠구나! 천한 백성 가운데 어찌 그런 대단한 계집이 있을 리가 있겠느냐. 다 나라가 태평하고 할 일이 없고 심심해서 한 번쯤 해보는 소리겠지. 공연히 쓸데없는 소문만 요란하게 난 것이 아니겠어?"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이상한 것이어서 같은 소리도 여러 차례 들으면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인가요.
"그렇지 않은 줄 아뢰오. 도미의 계집은 소문과 다름없이 얼굴도 예쁜데다가 절개도 굳세어서 다른 사내는 돌아보지도 않는다고 하옵니다."
"한 번 대왕께오서 불러보시고 정말로 소문과 같이 기특한 바가 있다면 상을 내리심이 마땅한 줄 아뢰오. 그리하면 무식하고 단순한 국인 모두가 대왕의 너그러우신 처사에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이옵니다요!"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도미의 아내가 매우 어여쁜데다가 저자의 숱한 바람둥이가 온갖 재간을 동원하여 끈질기게도 유혹하건만 눈길 한 번 주는 법이 없다고 하자 개루왕은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했던 모양이었어요.
"흥, 그래? 정 그렇다면 내 어디 한 번 그 계집을 시험해보기로 할까나!"
그처럼 미모 빼어나고 절개 굳은 대단한 계집이라면 내 한 번 꺾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대는 저 신하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리라. 그렇게 생각했었나봐요.
그러던 어느 날 개루왕이 보낸 신하가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내 남편 도미를 대궐로 데리고 갔어요. 바야흐로 사건이 본격적으로 벌어진 거죠.
남편 도미가 끌려와 어전에 꿇어 엎드리자 임금이 이렇게 묻고, 남편 도미는 저렇게 대답했다는군요.
"그래, 네가 바로 도미라는 자냐?"
"그렇사옵니다. 소인이 바로 보잘것없는 도미라고 하옵니다."
"과인이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불렀느니라. 네 계집이 그토록 어여쁘게 생겼다지? 그리고 너 도미 말고는 아무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게 틀림없는 사실인고?"
"황공무지로소이다! 변변치 못한 여편네의 소문으로 대왕님의 심기까지 어지럽혀드려 그저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하오나 저자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고, 또 소인도 그렇게 믿고 있사옵니다."
"흐음, 그래? 네 계집의 절개가 그렇게 굳세단 말이지? 그렇게 자신 있다면 과인과 재미있는 내기를 한 번 해볼까나?"
"내기라 하옵시면…?"
"너의 계집이 그처럼 정조가 굳다니까 정말로 권세와 재물로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는가, 내기를 한 번 해보자는 그런 말이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도 있고, 한 번 뚫어진 구멍은 언제든 또 뚫어지게 마련이라는 소리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내 이미 그렇게 하기로 작심했으니 너 도미는 찍 소리 말고 결과나 지켜보도록 하라!"
개루왕이 임금이라는 체신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늘어놓자 제 남편 도미는 금세라도 혼백이 달아나듯이 놀라고 말았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뭐 저런 것이 우리 백제국의 대왕이었나? 저런 인간이 정말로 임금 맞아?
"아이구, 자비로우신 대왕님! 제발 그 하명만은 거두어주시옵소서! 하늘같이 높으시고 거룩하옵신 대왕께오서 소인같이 미천한 자와 내기가 다 무엇이옵니까? 천부당만부당한 일인가 하옵니다!"
"어허, 내 이미 그렇게 하기로 작정했다니까! 너 도미는 쓸데없는 잔소리는 그만 닥치고 대궐 안에서 하회나 지켜보도록!"
그렇게 해서 제 남편 도미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 하고 그대로 대궐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던 겁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리고 나서 개루왕은 근신들을 불러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흉계를 꾸몄답니다.
한편, 저는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대궐로 불려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지요. 어느새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고 날이 캄캄하게 어두워졌는데 애타게 기다리는 남편 도미는 돌아오지 않고 느닷없이 임금님 행차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니겠어요?
제가 그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전후좌우에 시종들을 거느린 임금이 집안으로 들이닥쳐서는 다짜고짜 이렇게 묻는 것이었어요.
"너는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황공하오나 우리 백제국의 대왕님이 아니시옵니까?"
"그럼 내가 왜 찾아왔는지는 알겠느냐?"
"저같이 미천한 계집이 어찌 임금님의 깊으신 뜻을 알겠나이까?"
"오호! 듣던 바와 같이 참으로 미색이로구나! 내 오늘 너의 지아비 도미를 대궐로 불러서 내기를 하였는데 과인이 이겼노라. 네 지아비가 판돈 대신 너를 걸었다가 졌기 때문에 내 오늘 너를 보러 온 것이니 너는 오늘 밤 과인을 모시도록 하라. 알겠는고?"
나 원 참 세상에 이럴 수가! 그 말을 듣는 손간 저는 너무나 기가 막혀 눈앞이 캄캄해져 버렸어요. 그리고 제 귀를 의심했지요. 별로 가진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는 남편 도미가 대궐에서 임금과 내기를 했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하지만 그건 어쨌든 간에 눈앞에 닥친 이 재앙부터 피하는 것이 급선무였어요.
비록 배운 건 없지만 어려서부터 남달리 똑똑하여 사리에 밝은 저는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짧은 시간에 별별 궁리를 다했던 겁니다. 옛말에도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사는 수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결국 한 가지 꾀를 생각해낸 저는 우선 임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룩하신 대왕님! 누추하지만 먼저 방안으로 드시옵소서. 방안으로 들어가 계시면 쇤네가 저녁상을 차려 들여가고자 하나이다."
"오호, 참으로 좋은 생각이로다. 내 그럼 안방으로 들어가 기다리고 있겠노라. 너도 빨리 들어오도록 하여라."
그렇게 하여 임금에게 안방으로 들어가 기다리게 한 다음, 저는 마당 한쪽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계집종을 불러 이렇게 일렀답니다.
"얘야, 너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너를 친아우처럼 여기고 지내왔는데, 오늘 내가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 빠지고 말았구나! 그동안 한 식구로 지내온 정리를 생각해서 오늘 네가 제발 나를 도와다오. 할 수 있겠느냐?"
"아씨마님이 시키는 일인데 쇤네가 어찌 마다하겠어요.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셔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찌 마다하겠어요. 그동안 잘 보살펴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하겠어요.“
그러면서 하녀는 쉴 새 없이 훌쩍훌쩍 흐느껴 울었지요. 그 모습을 보는 제 가슴도 미어지듯 아팠지만 그 순간 제가 생각해낼 수 계책이라고 고작 그것밖에 없었느니 어쩌겠어요.
"참말로 고맙구나!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네가 이 일을 맡아준다면 너는 내 목숨도 살리고 바깥 나으리의 목숨도 살리는 셈이 되리라. 이 일이 성공만 하면 죽을 때까지 우리 부부가 너의 은혜를 잊지 않으마."
"그런데 제가 무슨 일을 하면 되는 거지요?"
하녀가 계속해서 훌쩍거리며 그렇게 물었기에 저는 이렇게 할일을 일러주었죠.
"너는 이제 내가 골라주는 내 옷을 입고 내 행세를 하면 되는 거야. 캄캄한 밤인데다 방안의 불까지 꺼지고 나면 잘 알아보지 못할 것이니 오늘 밤 저 안방으로 들어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임금님을 모시면 되느니라."
"아이구머니, 아씨마님! 모시는 거라면, 제가 오늘 밤 저 임금님과 함께 자야 한단 말씀이 아닌가요?"
그 말에 저는 한참 동안 대꾸를 못했답니다. 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죄 없는 하녀의 정조를 바치게 하는 것이 참으로 양심에 가책이 되었던 거지요. 하지만 그때 제게는 선택의 여지도 없었고, 다른 좋은 계책을 생각해낼 시간의 여유도 없었답니다. 지금도 그 아이에게는 참말로 미안하기 그지없게 생각하고 있지요.
결국 저는 모질게 마음먹고 이렇게 시킬 수밖에 없었답니다.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바로 그렇구나! 나대신 네가 임금님을 모시라는 말이다. 하지만 절대로 우리가 바꿔치기를 한 사실이 들통 나면 안 되느니라. 알겠느냐?"
"하이고 내 팔자야! 내가 비록 숫처녀는 아니지만 아직 시집도 가지 않았고, 이렇게 무식 한 년이 어떻게 감히 주인마님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그렇게 해서 저는 여종에게 저의 옷을 입혀 안방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결국 그날 밤 개루왕과 가짜 도미의 처가 동침을 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저의 여종이 또한 생각할수록 자신의 신세가 처량한지라 밤새 비명을 질러댔지만 짐승 같은 개루왕은 그저 도미의 아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구슬피 울부짖는 것으로 여겨 인정사정없이 야욕을 실컷 채우고 이튿날 아침 대궐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그 자가 가짜 개루왕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중에 남편 도미가 대궐에서 돌아오고 난 뒤의 일이었지요.
이튿날 아침 가짜 임금으로부터 '비상한' 임무를 무사히 수행했노라는 보고를 받은 개루왕은 자신이 몸소 천하의 절색이라는 저 도미의 아내를 품어보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기는 했지만 승리감에 들떠 도미를 불러낸 다음 이렇게 큰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거 봐라, 이 바보 같은 녀석아! 내가 뭐라고 했냐? 권력과 재물에 넘어가지 않는 계집은 없다고 했지? 그럼 가봐. 이젠 헌 계집이 됐지만 가서 네 마누라를 잘 위로해주도록. 으하하핫!"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남편 도미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가까스로 대궐 문을 나서서 성 밖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 이게 웬일입니까!
임금에게 정조를 빼앗겨 목이라도 매고 죽은 줄 알았던 제가 멀쩡하게 살아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에요. 우리 부부는 얼싸안고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서로가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지요. 서로가 당했던 기막힌 일들을 이야기하고 나서 도미가 이렇게 말했어요.
"사랑하는 여보. 어쨌든 당신 몸이 무사하다니 참으로 불행 중 다행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뭣이겠소?"
"사랑하는 낭군님, 세상에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요? 어찌 그토록 못된 사람이 임금 노릇을 한단 말이지요?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나라가 아니고 뭔가요 네?“
우리 부부는 마치 범에게 물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살아서 돌아온 듯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자꾸만 가슴을 쓸어내렸지 뭡니까.
그리고 구 날 밤 우리 부부는 전에 없이 서로의 몸을 뜨겁게 사랑했답니다. 아이 참, 뭐 이런 부끄러운 것까지 죄다 이야기해야 되나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 사건이 그렇게 끝나고 모든 것이 다시 전처럼 돌아가는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었어요. 악몽보다 더 무서운 기막힌 일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뭐겠어요.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어서 결국 개루왕은 자신이 저한테 속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금의 체면과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생각한 개루왕은 노발대발하여 도미를 당장 잡아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그렇게 해서 제 남편 도미는 아무 죄도 없이 다시 대궐로 끌려들어가고 말았지요.
꽁꽁 묶여 끌려온 남편을 보고 개루왕이 이렇게 악을 썼어요.
"야, 이 천하에 둘도 없이 흉악한 도둑놈아! 그래 속일 사람이 없어서 임금을 속인단 말이냐? 여봐라! 임금을 능멸한 저 간악한 도미 놈을 우선 늘씬하게 두둘겨 패 버려라!"
그렇게 해서 불쌍한 제 남편 도미는 죽도록 매를 맞고 산송장이 되어 축 늘어졌는데 개루왕의 화는 그래도 풀리지 않았어요. 부부가 짜고서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한 개루왕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이런 잔인무도한 형벌을 생각해냈답니다. 그것은 제 낭군 도미의 멀쩡한 두 눈알을 그대로 잡아 뽑아내 버리는 참으로 잔인하고 악독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습니다. 오오, 가여운 내 남편 도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뎠을까요?
"임금을 속이고 능멸한 네 놈 도미의 죄는 천만 번 죽여도 오히려 가볍지만 목숨이 가련하여 자비를 베풀고자 하노라. 여봐라! 저 간악한 놈의 두 눈알을 잡아 뽑아 새 먹이로 주도록 하여라! 그리고 아리수로 끌고 가서 빈 배에 태워 제멋대로 떠내려가도록 내버려두라우야!"
그렇게 끔찍하게 장님이 된 제 남편 도미는 아리수, 오늘의 한강변으로 끌려 나가 노도 없고 삿대도 없는 작은 배에 태워져 그대로 강물에 띄워 보내지고 말았던 것이랍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참극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이를 어찌하리오!
그토록 잔인무도한 악형을 가하고도 개루왕의 성은 다 풀리지 않았던 거예요.
개루왕은 그리고 나서 저를 대궐로 잡아들였습니다. 개루왕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개를 들고 나를 보거라!”
저는 마지못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악독한 개루왕의 얼굴을 차마 쳐다보고 싶지 않기에 눈길은 허공을 쳐다보았지요. 그러자 개루왕이 이렇게 찬탄하는 것이었어요.
“어허, 과연 소문이 헛되지 않구나! 가히 과연 천하의 절색이구나! 어허, 이런 미희를 그까짓 하찮은 도미란 놈이 여태까지 꿰어 차고 살았다니, 참으로 아까운지고! 얘야, 넌 이제부터 내 것이다!”
그리고 개루왕은 이렇게 음흉한 속셈을 제멋대로 털어놓았습니다.
"네 지아비는 감히 임금을 속인 죄를 지었기에 이미 사형에 처했노라. 이제 너는 홀가분한 과부가 되었으니 오늘부터는 후궁에서 과인을 모시도록 하라. 알겠느냐?"
이에 제가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 있다가 가까스로 반은 흐느껴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오, 이 일을 어이 할꼬! 지아비가 죽었으니 이제는 누구를 믿고 의지하여 살아갈꼬! 대왕님, 이제 제가 홀몸이 되었으니 천한 계집이 어찌 지엄하신 대왕님의 명령을 거역하오리까? 하오나 지금은 달거리를 하여 몸이 더럽기 때문에 모시지 못하겠사오니 며칠만 참으시고 말미를 주시옵소서."
저는 우선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우선은 이 마수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랍니다. 그래서 그런 꾀를 냈던 거랍니다. 그러자 임금이란 자가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꾸하더군요.
"으흠,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럼 월경이 끝나는 대로 몸을 깨끗이 씻고 다시 오도록 하여라!"
그렇게 하여 범의 아가리 같은 대궐 문을 빠져나온 저는 곧바로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아리수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저는 한시바삐 강을 건너 저 흉악한 폭군의 마수가 닿지 않는 머나먼 곳으로 달아나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의 수난 소식은 이미 발 없는 말을 타고 도성 안팎에 널리 퍼져서 모르는 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울고불며 강변을 실성한 여자처럼 마구 헤매어 다니자 이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와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낭군 도미는 아직 죽지 않았소이다."
"아니, 그게 정말이세요? 누가 저의 낭군을 보셨나요?"
"그렇다오! 왕의 군사들이 눈먼 도미를 강가로 끌고 와서 빈 배에 태워 강물에 흘려보냈다오. 임금이 불쌍한 도미의 두 눈을 잡아 뽑아버렸다는구려. 세상에 뭐 그런 게 다 임금이라구…“
"아이구,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앞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빈 배에 태워 보냈다면 어디로 흘러갔을꼬? 지금쯤 어디까지 흘러갔을꼬?"
저는 강가에 털썩 주저앉아 넋을 잃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울고 난 뒤에 가까스로 일어나 다시 강변을 아무리 헤매어 다니며 남편의 자취를 애타게 찾아보았으나 배는 보이지 않았지요.
저는 절망감에 못 이겨 하늘을 쳐다보며 대성통곡을 했어요. 아아, 그러자 하늘도 감동하여 저를 도우려 했는지 갑자기 저 멀리 송파나루 상류로부터 난데없는 빈 배 한 척이 내려와 물가에 닿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삼국사기> '열전' 도미 편을 보시면 마지막 대목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 …이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그 남편을 만났는데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으므로 풀뿌리를 캐어 먹었다. 드디어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의 산산(蒜山) 밑에 이르니, 고구려 사람들이 이들을 불쌍히 여겨 옷과 밥을 주었다. 마침내 겨우 살게 되어 객지에서 평생을 마쳤다. -
여기에서 말한 천성도가 어디에 있는 어떤 섬을 가리키는지, 또 고구려 땅이라는 산산도 지금의 지명이 무엇인지 우리 부부는 알지 못한답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개루왕의 마수를 피해 백제 땅을 벗어나 고구려로 망명한 우리 부부는 여생을 조용히 보내게 되었습니다. 다만 남편 도미가 죽을 때까지 불쌍한 장님으로 살아야 했던 것만이 한스러웠을 따름이었죠.
빼어난 미모를 타고난 죄 아닌 죄, 미모에 못지않게 머리도 영리하고 절개도 곧았던 죄 아닌 죄 때문에 개로왕에게 온갖 고초를 겪은 저와 남편 도미의 사연은 고구려에서도 세월이 갈수록 널리널리 퍼져나갔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고구려 대궐에서 내려온 고구려 대왕의 칙사를 따라 고구려의 도성인 국내성으로 불려 올라갔습니다. 그때 고구려의 대왕은 태조대왕(太祖大王)이란 매우 늙은 임금님이었습니다. 거의 100살이 되어 보이는 호호백발 할아버지 임금님이었어요.
태조대왕은 우리 부부의 애달픈 사연을 듣고 나서 인자하게 위로를 해주시고는 많은 재물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래요. 우리 부부는 그 재물로 고구려에서 여생을 헐벗고 굶주리지 않고 편안히 보낼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저 도미의 아내는 죽음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여인의 소중한 정절을 꿋꿋이 지킴으로써 아름다운 사연을 후세에 길이길이 전할 수 있었던 것이랍니다.
그런데 한 마디만 덧붙이고 싶네요. 죄다 그렇지는 않지만 요즈음 여인들은 정조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지요? 또 걸핏하면 이혼도 잘 해서 가정법원이 ‘이혼공장’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면서요? 여인 여러분, 그래도 정조를 소중히 여기셔야만 해요. 스스로 하찮게 여기는 정조를 남정네들이라고 해서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 주겠느냐구요?
오랫동안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갈 터이니 안녕히 계셔요.
저자의 말
도미 부부에게 악행을 저지른 개루왕은 어떤 인물인가. <삼국사기> ‘백제본기’ 개루왕 조에 따르면 그는 기루왕(己婁王)의 아들로서 부왕이 재위 52년 만인 서기 128년 11월에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이후 서기 166년까지 38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고 하였다.
이런 기록을 근거로 추산해보건대 어쩌면 개루왕은 기루왕의 친아들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친아들이라고 해도 적장자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부왕이 50년이 넘도록 재위한 뒤 왕위를 이어받아 40년 가까이나 임금 노릇을 했다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선왕인 기루왕 또한 다루왕(多婁王)의 맏아들로 태어나 다루왕 6년(서기 33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다루왕이 재위 50년 만인 서기 77년에 세상을 뜨자 왕위에 올랐다고 되어 있지 않은가.
이런 기록들이 맞는다면 백제 초기의 임금들은 매우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시조 온조왕(溫祚王)은 기원전 18년에 백제를 건국하여 46년간 나라를 다스렸으니 적어도 70세 정도는 산 셈이 되고, 온조왕의 맏아들인 다루왕도 온조왕 28년(서기 10년)에 태자로 책봉된 뒤 온조왕이 서기 28년에 죽자 그 뒤를 이어 50년간 재위했으니 적어도 60세까지는 살았으며, 기루왕은 무려 100세 가까이 장수한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부 사학자들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서의 연대가 상식을 좀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의 연대를 보다 위쪽으로 끌어올리지는 못할망정 아래쪽으로 끌어내려서 맞추려는 작태야말로 우리가 배격해야 마지않을 사대주의적이며 식민사관적 발상법이라 하겠다.
또한 어떤 사람은 도미 부부를 핍박한 당사자가 개루왕이 아니라 왕호가 비슷한 제21대 임금 개로왕(蓋鹵王)으로 보기도 하는데, 나의 판단으로는 이것도 잘못된 시각이다.
개로왕이 비록 고구려 첩자 도림(道琳)에게 놀아나서 바둑과 궁궐 건축과 같은 도락과 사치로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내 장수왕(長壽王)이 보낸 고구려군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했다고는 하지만, 개로왕 당시 백제는 내우외환으로 왕권은 약화되고 나라는 멸망의 문턱까지 이른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니 어찌 임금이 한가하게 민간의 보잘것없는 필부를 궁궐로 불러서 내기를 하고, 그 아내를 희롱할 만큼 한가한 겨를이 있었겠는가.
게다가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아무리 사대주의 유학자의 시각에서 편찬되었다고는 하지만, 개루왕과 개로왕을 혼동할 만큼 <구삼국사>든, 또는 당시까지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는 백제의 <서기(書記)>나 고구려의 <유기(遺記)><신집(新集)> 같은 사서를 왜곡하여 인용했다고 볼 증거가 없는 것이다.
좌우지간 개루왕은 성격이 모질다면 모진 점이 있는 임금이었던 듯하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개루왕 조는 그를 가리켜 '성품이 공순(恭順)하고 조행(操行)이 단정했다'고 썼지만, 이웃 나라 신라와 불화하고 도미 부부에게 가혹한 짓을 한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런 평가는 그저 의례적인 표현에 불과했을 것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개루왕 조를 보면 그가 38년간이나 재위한 것으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겨우 몇 줄에 불과하다. 그리고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치적이라는 것도 재위 5년(132년)에 북한산성을 쌓았고, 재위 28년(155년) 신라군이 침공했을 때 굳게 방어해 스스로 물러가게 했다는 것뿐이다.
어쨌거나, 도미의 이름이 <삼국사기>에 오른 것은 오로지 훌륭한 아내를 평생의 반려로 둔 덕분이었다. 도미의 아내는 그 성이 무엇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남편의 이름을 <삼국사기> '열전'에 올려놓을 만큼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웠고, 아름다운 자태에 못지않게 정절도 굳센 여인이었다.
<삼국사기> '열전' 도미 편을 보면 도미는 개루왕 때에 도성인 한성 변두리에서 살던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백성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못 의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처럼 도미는 별 볼일 없는 민간의 미천한 백성에 불과했지만 그의 아내는 빼어난 미인인 데다가 마음씨가 곱고 정절은 매서워 나라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가인박명(佳人薄命)이란 말도 있듯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도미의 아내 또한 끝까지 남편과 더불어 평범하고 평안한 한 삶을 보낼 수가 없었다.
비록 이름 없는 민간의 평범한 아낙네에 불과했지만 도미의 아내가 그 아름다운 존재를 2천년 가까운 오랜 세월을 두고 후세에 길이 전하게 된 것은 개루왕의 온갖 유혹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낭군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정조를 끝까지 지켰기 때문이다.
임금이 곧 나라요, 임금의 말이 곧 법이며, 임금의 명령 한 마디에 백성의 목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날아가 버리기 일쑤였던 절대왕권시대에 임금의 뜻을 거스른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도미의 아내는 그런 시대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정조를 지키고자 기꺼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감한 여인이었으니, 이 여인의 장한 모습을 보고 어찌 여왕의 명예와 권세가 부럽다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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