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ㆍ구기동/도심 속 산골마을…권력층들의 안식처 | |
[고제희의 풍수기행]-평창은 작가와 예술가, 구기엔 정치가
이처럼 산세가 유순하지 못한 채 수많은 바위와 암석으로 이뤄진 것 을 풍수는 '문필봉'이라 부르며 문장가를 배출할 터로 여긴다. 또 은 산이 사방을 에워싼 가운데 그 중심부로 계류가 급히 흐른다. 따라서 , 계류 가의 정자에 올라 음풍농월하거나 자연에 안긴 채 시ㆍ서ㆍ화에 빠져 세상의 번잡함을 잊기에 좋다. 그런 의미에서 평창동은 일찍부터 작가와 예술가의 터로 주목받던 곳이었다.
그렇지만, 평창동은 정치인과는 성격이 맞지 않아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을 여러 명 좌절시켰다. 정치인에게 대길할 터는 주산이 목성(木星)이 거나, 관운을 상징하는 사모사(紗帽砂ㆍ관리가 머리에 쓴 모양의 산)나 인암(印岩ㆍ도장 모양의 바위)이 주위에 있어야 하는데, 평창동에는 그 런 산이나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구 기동의 풍수적 형국은 옥녀가 베틀에 앉아 비단을 짜는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의 명당이다. 비단은 귀한 옷감이니 왕족이나 벼슬 높은 관 리만이 입을 수 있다. 따라서, 이 곳의 소응은 직위가 높은 관리를 배출 할 터로, 공직자나 정치인이 살면 대성할 명당이다. 땅은 살아 있는 생명체로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고,
그 성격에 맞게 땅을 이용할 때만 지덕(地德)이 발동하며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구기동은 공직자나 정치인이, 평창동에는 작가와 예술가들이 살아야 산천의 기를 상생으로 받아 대성할 것이라 생각한다.
평창동은 조선시대 선혜청(宣惠廳)의 평창(平倉)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 곡물을 저장하던 창고와 군대의 훈련소가 있었던 산촌이었다. 지세를 가만히 살펴보면, 세상과 담을 쌓은 도인들이 칩거하고 있을 법 하다. 자연을 노래하고 화폭에 담아내는 문화예술인, 세파에 찌든 정치 인이 자연을 벗삼아 휴식을 취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 같다.
구기동은 '구텃 골'을 한자로 옮긴 지명으로, 예전에 큰 마을이 있었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높은 산이 3면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남쪽만이 트인 형세의 구기동은 '택리지'에 사람이 살 만한 명당으로 묘사돼 있다.
사람이 살기에는 기가 너무나 세다 해서 일대 바위마다 토속 종교의 제 사에 쓰이는 촛불이 가득했던 평창동은 지난 1968년 '1ㆍ21 사태'로 불리는 무장간첩남파 사건으로 운명이 바뀌게 된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관계 기관'은 평창동 일대에 민 가를 건립키로 하고, 부랴부랴 74년부터 주택단지로 개발하게 됐다. 처음에는 싼 택지값에 몇몇 문화예술인들이 이주했고, 그 후 산수를 즐 기려는 재벌 총수 일가와 학자들이 이주했다.
동교동계의 맞형 권노갑 전 의원, 문재인 청와대 정무 수석도 평창동에 거주한다. 현재 평창동과 구기동에는 박준규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정몽준ㆍ현승 일ㆍ김기춘ㆍ김일윤 의원, 금진호ㆍ박재홍ㆍ최재욱 전 의원 등 전ㆍ현직 의원 20여명이 살고 있다. 최기문 경찰청장, 김덕중 교육부 장관, 김세 옥 경호실장,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 전ㆍ현직 관료들도 상당수 가 평창동 주민이다.
그러나, 평창동과 권력, 양자의 인연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김윤환 전 의원이 "평창동은 기가 세서 정치인에 좋지 않다"고 말하 고 다닐 정도로 평창동에 자리 잡은 정치인이나 권력가 상당수가 불운을 겪었다. 최형우 전 의원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서석재 전 의원은 설화 로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정치적으로 좌절을 겪었다. 오랜 평창동 주민 이던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도 옥고를 거치면서 이제는 동부이촌동으로 이사했다. 정몽준 의원이 지난해 대통령후보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문전박대했던 곳도 바로 평창동이다. 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거론되던 이광재 전 실장은 구기동에 산다.
또, 작가들의 보금자리로 불리는 영인문학관이 들어서 평창동이 명실 상부한 문화예술인의 명당터임을 자랑한다. 평창동에는 현재 유명한 문화예술인이 다수 살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를 비롯해 소설가 박범신ㆍ양귀자, 화가 김흥수 , 세계적인 지휘가 정명훈, 연예인 고두심ㆍ윤여정ㆍ이혜숙ㆍ이용식 등 이 평창동 주민이다.
미술가를 비롯해 작가와 음악인, 여기에 연예인까지 합하면 문화예술인 이 줄잡아 400여명을 웃돈다고 한다. 윤방부 서울대 교수, 김덕룡 단국대 총장, 이리형 한양대 부총장 등 6 0명 안팎의 유명 교수들도 평창동에 둥지를 틀었다. 일부 문화예술인과 교수들은 자체적으로 한 달에 한 번꼴로 '평창포럼'에서 만나 세상 돌 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하지만, 평창동에는 성북동이나 한남동처럼 내로라하는 재벌가는 그다 지 많지 않다. 평창동이 부촌 순위로는 항상 9위나 10위권에 있다. 조양 호 대한항공 회장 등 한진그룹 일가와 신준호 롯데햄 대표이사 부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 정도만이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다.
자유 분방한 문화예술인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보안컨설팅업체에 근무하는 김모 씨는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평창동 의 또 다른 삶을 들려줬다. 보안 상담을 위해 고급 빌라 내부를 자주 볼 수 있는 김씨를 가장 놀라게 했던 집은 거실 바닥이 수족관으로 만들어 졌던 빌라. 김씨는 발 밑에 팔뚝 크기의 금붕어들이 노니는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또 마당에 덩그라니 골프장 한 홀을 조성 한 집, 방 하나를 아예 금고로 개조한 주택에 대해서도 쓴웃음을 지으며 털어놨다.
평창동 일대는 부촌임에도 주택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거래 가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설립 연도나 평 수가 워낙 다양해 평균 매매가를 산정하기는 어렵지만, 평당 500만~600만원 정도에 건축비 를 따로 계산해야 한다. 평창동 협신공인 송해명 사장은 "주택 가격보다는 오히려 건축비가 평 당 1000만원 이상 하는 집들도 많은 데다, 워낙 증ㆍ개축이 심해 평균적 인 가격을 내는 것이 무리"라고 설명했다.
손수근 기자(zzazan@heraldm.com)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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