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한마당

나에게도 통풍이 왔었나?

만년지기 우근 2009. 1. 5. 23:43

 

 

정길생선생님과 기념사진을 활인촌 배정원사장님께 부탁을 했다.

국민건강증진썬터의 첫 회의를 마치면서 어! 보고도 못 알아봤네?하시면서 회장님 방으로 오시는데

내가 선생님을 가볍게 안아드렸다. 가볍지만 거기에는 뜻이 많이 담겨져 있다.

건강증진쎈터의 회장님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증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실것을 나는 잘알고 있다. 

아니 정말 동동주 한잔에 얼굴빛이 빨개지셨네???

냉면 사발에 원샀은 어느적 이야기가 되어버렸나 ---

올해로 정길생선생님을 뵌지 23년째이다.

노무현정부에서 장관을 추천하라고해서 나는 정길생선생님을 교육부장관으로 추천서를 보냈던 기억이난다.

그때는 건국대학교 총장님으로 계셨을때이다.  

왼쪽 활인촌 배정원사장님과 심종근원장님이시다. 

배정원사장님은 현재 총각 사장님이시다.

오른쪽 정안식선생님께서 보이신다. 

배대진선생님께서는 계속 전화를 받으시는 모습만보이셨는데 한가한 모습을 담아보았다. 

쌀에 무언가를 코팅해서 이날 식당에 특별히 부탁을해서 지어내오신 쌀이다.

이쌀에 대해서 아시는분께서는 아래 댓글 부탁드린다. 

 

나에게도 통풍이 왔었나?

                                             허주 김  정  희

 

나는 건강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이 건강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떨때는 많이 부럽다.

어릴적부터 나는 항상 허약하게 자랐고 40대를 지난 지금이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수효사에서 사회복지대학을 다니면서 따주기를 공부했고 자원봉사를 군부대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부항에 대해서 사혈을 받아보게 되었는데 따주기를 받던지 사혈을 받아보면 처음에는

몇일씩 몸살로 아파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지만 몸은 훨씬 더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벌침을 맞아본지도 벌써 3년째이다.

민중의술이 합법화되기를 바란다.

나는 직업으로 생명공학쪽에서 23년째 일하고 있다.

작년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다보니 중풍과 통풍이 오고있는 여자환자 한분이 눈에 들어온다.

직업상 하루종일 서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사혈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더니 좋다고 말씀하셔서 3개월정도 사혈과 벌침을 해드렸다.

잘사는 사람이야 돈으로 해결을 하면 되지만 어려운 사람이기에 시작을 했다.

 

나는 어떤 환자를 치료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왜? 같은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주면 받는 사람도 안다.

그런데 2008년 12월 11일 저녁 아산으로 내려가서 배대진선생님께 치료를 받았는데 정확히 이야기하면

치료에 샘플이 되었는데 몸이 약한 내가 새벽에 서울까지 올라와서 집으로 들어온 시간이 이른

아침이었으니 10시 30분까지 수운회관으로 가야 하는데 일어날 수 가 없었다.

11시 30분이 되어서 수운회관에 도착을 했으나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아파서 걷는게 힘이 들었다.

어제 저녁 배대진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몸이 많이 안좋아.

왼발에 입은 화상자욱에 한침동안 손으로 염력을 하셔서 풀어졌는데 일어나 보니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아파도 너무 심각하게 아프다.

통상적으로 통풍은 발가락 이전이 발갛게 되어 뼈가 튀어나오고 난뒤에 통풍이 온다는 생각을 했기에

나는 그날 아픈데도 내가 통풍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점심을 전 건국대 총장님이신 정길생선생님을 몇년만에 뵈어서 옆에 앉아서 먹었고 그 앞에는

배대진선생님께서 앉아 계셨다.

건대 번식학 실험실에서 만난 인연으로 정길생선생님과 그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건강증진쎈타의

회장님으로 정길생선생님께서 2009년 우리나라에 새로운 건강과 사회복지시대를 열어 갈것을

나는 믿고 있고 어쩌면 같이 협력을 해서 같이 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점심때도 막걸리를 마셨다.

정길생선생님께서 건대 총장 이임식때 오찬을 하고 난뒤 처음 만남이었기에 12월은 너무 바쁘니

2009년에 다시 만나기로하고 명함만 주고 받았다.

 

아니 그런데 점심을 먹고나서 걸을려고 하는데 발이 내 발이 아니다.

14층 사무실까지 걷는다는게 꿈같아서 나는 그냥 가야겠다고 했더니 정길생회장님께서 꼭 사무실까지

올라오라고 하셨다고 가야 한단다.

나는 에레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그때 통풍이면 이렇게 아플까요? 했다.

길동 한의원으로 움직이는데 모두 내차에 오르시고 한의원에 도착을해서 아시혈에 사혈을 해보았지만

어혈은 잘 나오지 않았다.

내 사혈기가 한의원에 있었다.

배대진선생님께서 사혈이 나오지 않자.

발가락에 손으로 치료를 해주시고 나서 다시 사혈을 했다.

조금 더 어혈이 나왔다.

어혈이 나온 만큼 발가락은 가벼웠다.

집에가서 태삼열매분말을 물에 개서 발가락에 붙여보라고 하셨다.

어제 치료를 왼발만 하시고 오른쪽으로 혈을 풀어주어야 했는데 그걸 못해서 그렇다는 말씀을 하신다.

배대진선생님을 다시 수은회관으로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왔는데 꼼짝도 하기 싫었다.

집에 프로폴리스크림에 프로폴리스원액을 섞어서 몇번 바르고 아침에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니 조금더 나았다.

부항기가 없으니 따주기라도 해야지 하고 엄지발가락을 보았더니 둘째발가락쪽으로 보이는 곳에

검정으로 물이 들어 있다.

따주기를 했는데 그 통증이란? 말을 할 수 가 없다.

따주기를 할때마다 번개불이 눈에서 번쩍였지만 그래도 10여군데를 따주고 상처부위를 손으로 눌렀다.

아파! 아파! 그러기를 30여분 검은피와 요산이 섞여져서 나온다.

차에 가서 태삼가루를 가져와서 붙이고 나니 시원함과 태삼의 진정효과로 발가락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태삼가루를 물에 타보니 젤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태삼가루와 프로폴리스를 섞어서 먹었다.

엄지발가락을 반나절이 지나서 보니 검었던 부분이 없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통풍이 왔었는지 몰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후로 벌침도 맞았고 사혈도 했다.

이렇게 병증이 시작되자마자 빨리 대처를 해야한다는 생각이든다.

그렇게 3-4일 엄지발가락의 통증과 싸우면서 통풍으로 아픈 사람의 통증은

어쩌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아플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다.

2009년 새해에는 한사람이라도 아픔에서 빨리 해방되어지기 바란다.

나는 엄지발가락이 심한 통증이 왔어도 진통제를 먹지 않았다.

22년을 함께해온 발바닥 티눈을 벌침 3방 직침과 뜸으로 떴는데 티눈을 아산에서 터트려보니

검은 물이 천정까지 치솟아 올랐다.

그래서 그 검은물이 발가락으로 내려갔다는 생각이 처음에는 많이 컸다.

벌침으로 오래된 뿌리가 깊은 티눈도 없어졌다.

그동안 티눈고도 바르고 아무리해보아도 뿌리만 깊어질뿐 없어지지 않았었다.

벌침 3방과 그위를 쑥뜸으로 떠서 없어진 티눈을보니 2009년 새해에는 좋은일만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티눈과의 전쟁을 22년동안 치루면서 엄지발가락 바로 아래에 있었던 티눈이 5cm는 아래로 내려갔는데

김병태선생님 티눈의 위치를 보시더니 어 - 휴 티눈이 여기에 있었으니 위가 좋을 턱이 있나?

그랬다. 티눈과 싸움을 벌일때마다 티눈은 아래로 이동을 했는데 요즈음엔 아무것도 먹고 싶은게 없었다.

 

한의원 족욕기에 담궈진 내 발사진이다.

통풍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한 발이지만 나에게도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심한 통증으로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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