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지어 볼려고요
허주 김 정 희
제목을 쓰고나서 참 부끄럽다는 생각에 얼굴이 빨개진다.
뭐~~~ 어!!! 농사가 장난이냐?
그래도 이런 제목으로 써보고 싶다.
그러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걸 알것인지.
아니면 지렁이만 나오면 끼악하고 놀라서 도망가는 일에서 헤어날지 모른다.
지금 열심히 읽고있는 "목민심서"에 군자는 점잖아야 한다고 적혀져 있는데
목민심서 65쪽에"군자가 점잖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백성의 윗 사람이 된 자는 반드시 점잖아야 한다."
거기에도 지렁이는 등장인물이 아닌데 나는 왜 지렁이만 보면
이렇게 놀란 토끼가 되는지 모른다.
어제는 동료중 유일하게 여직원으로 근무를하고 있는 채수례님께서 중대용산병원에 입원중이다.
7월14일 수술을 해서 그날 오후5시30분경 전화를 했더니 받는다.
말을 하지 못해서 조카를 바꾸라고 해서 수술상황을 들었다.
4시간 수술을 했다고 한다.
이빈후과에서 2곳을 수술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수술 시간이 너무 많이 길다.
17일 오전에 오늘 병원을 가겠노라고 말했다.
퇴근 후에 가보겠다고 신소장님께 말씀드렸다.
소장님께서는 병원 가기전에 꼭 먼저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씀 하셨다.
나이를 먹은 탓 일까?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아침 전화중에 오지 말라고 말했지만 왠지 궁금도 하고 4시간 수술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수술집도 하신 의사선생님께 여쭈어 보고 싶었다.
병원을 가보니 환자 채수례님은 성경책을 앞에 놓고 입에는 얼음을 먹고 있다.
오전에 열이 올라서 응급사태까지 같었다고 한다.
수술이 왜 4시간이나 되었느냐고 물었다.
2곳인 줄 알았는데 열어보니 3곳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4시간이나 걸렸었구나.
성경책을 들여다보니 요한복음 3장을 읽고 있었다.
그래, 나도 한때 성경책을 아니 성경책만 탐독할 때가 있었지.
신약 성경 중에서 요한복음을 나도 좋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예수님하고 잠시 마음속으로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마음은 오늘 하늘처럼 찹찹했다.
용기있는 채수례님이 빨리 완쾌 되어서 문묘에서 같이 근무 할 수 있기 바란다.
얼음 물을 입에 넣고서도 말하지 말라고 하니 글로 쓴다.
다음에 한번 더 올께?
창밖에는 장마비가 여름을 말하면서 추적 추적 내린다.
남자 동료 김호철님과 같이 병원 입원실에 같이 갔다.
서재에서 감자를 수확하고 난 빈터를 보신 할머니께서 깻잎을 심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병원에서 나온 나는 광장시장 앞에서 내렸다.
종로5가를 길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길가 꽃집에는 아무곳에도 깻잎모종이 없다.
쪽파씨를 파시는 할머니께 여쭈어 보았더니 너무 늦었다고 한다.
쪽파 한되를 사고 그래 그럼 깻잎씨를 사야겠다.
여름상추씨도 사야지.
산청에서 가져온 고구마가 서재에서 잘 자라고 있다.
고구마가 열려서 한사람에게 하나씩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씨앗을 사러 종묘상에 들어갔다.
내 차림새를 보시더니
"이런데는 왜 오세요?"
"씨앗을 사려구요."
"농사를 지어 보실려구요?"
"예."
"깻잎모종을 사러 왔는데요.없어서요."
"땅은 있으세요? "
"예."
"얼마나 넓은데요."
"그래도 많이 넓다면 넓어요."
속으로 여기저기 생각해 보니 많이 넓다.
"서울에 많이 넓은 땅이 있어요?"
"예."
"어디에 있는데요?"
"가까이에 있어요."
"누가 깻잎을 심으라고 하셨나요?"
"할머니요."
그제서야 씨앗을 보여준다.
여름 상추씨앗도 주세요.
상추씨앗의 종류가 많다는 건 춘천에서 풍농원을 하고 있는 오수훈사장이 있어서 잘 안다.
담배 상추와 여름적상추씨앗도 주시면서 다른 종류도 보여 주신다.
그건 지금 심어져 있어요.
"농사 일 안 해 보셨지요?"
"처음인데요."
"하실 수 있을까요?"
종묘상 사장님께서 별 걸 다 물어 보신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셔야 해요."
"수업료가 비싸요.그냥 가르쳐 드릴 수 없어요."
"그래도 가르쳐 주세요."
"상추는 스츠로풀에다 씨를 심어서 싹이 나오면 모종을 하세요.
깻잎은 발로 심어도 나와요. 지금 비가 올때 감자 수확한곳에 그냥 뿌려 놓으면
2-3일이면 싹이 나와요. 이거면 꽤 넓은 밭에 심을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농사를 지어 볼려고 하는데 지렁이 때문에 무서워요."
"지렁이가 있다면 좋은 땅이네요."
"알지요.아는데도 무서워요."
"지렁이가 얼마나 많은지 도망다닐 정도예요."
"그런 땅이 서울에 있다니 축복이네요."
옆을보니 메밀이 컵에서 잘 자라고 있다.
"저거 두개니까 한개 만 주세요."
메밀씨가 싹이 잘 나오는지 실험 중이시란다.
구황식물인 메밀 싹을 먹어본 나는 외할머니가 해주신 메밀싹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장대비가 내리는 저녁이 오고 있는 데 내 고집으로 서재에 사온 쪽파를 심고
깻잎씨를 뿌려 주셨다.
나는 메밀도 컵에서 꺼내어 나누워서 심었다.
지렁이가 나올까 봐 호미로 땅을 팔때 눈을 감았다.
그래도 보이는 지렁이는 무섭다.
어릴적에 얼마나 놀랬으면 지렁이가 이렇게도 무서울까?
누군가 어린 나에게 지렁이로 장난을 쳤는지 모른다.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아도 떠오르지는 않지만 어린시절 예쁘게 피어있는 도라지꽃밭에 가서 놀다가도
나는 항상 지렁이만 보면 기겁을 하고 밭에서 뛰어나와 집으로 와 버렸었다.
지금도 도라지꽃을 좋아한다.
어느날은 도라지 꽃을 멀리서 쪼그리고 보고 있으면 외할머니께서 다가와서 말씀하셨다.
"왜 도라지 밭에가서 도라지 꽃 향기도 맡아야지?"
"할머니, 지렁이 나올까봐. 무서워?"
"나오더라도 꽃 냄새를 맡거라."
"나랑 같이 가서 맡아보자."
외할머니께서는 항상 꽃이 피면 꽃 냄새를 맡아 보라고 하셨다.
할머니랑 같이 가면 보라색꽃과 하얀색꽃이 피는 걸 설명해 주셨다.
하얀색 꽃이 훨씬 더 약효가 좋다는 말씀도 하셨다.
모든 하얗게 피어있는 꽃은 다른색 보다는 좋다고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외할머니의 지혜를 나도 아들에게 전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린시절 아이들에게 기겁하게 만들면 안된다고 생각 해 본다.
22살 나는 또 한번 기겁을 하게 놀라는 일을 당했다.
그 정도 일도 아닐진데 지렁이는 감자를 같이 캤던 할머니 말마따나 "지렁이가 무냐?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글쎄 말이예요. 아닌 걸 아는데도 왜 이리 무서운지 몰라요."
"할머니, 나는 농사를 짓고 싶은데 지렁이 때문에 클린벤치앞에서 짓는 농사나 지어야 되나봐요."
신소장님 지렁이와 친해지려면 지렁이를 몇일 가지고 다녀 보라고 하신다.
사실 봄에 집에 흙을 가져온다고 거름을 삽으로 푸는데 지렁이가 얼마나 많은지
삽을 팽개쳐 버리고 도망을 하면서 생각했다.
시골에서 마지막을 보낼려면 이러면 안돼! 안돼.
그러면서도 거름을 한삽밖에 못가져 왔다.
다음에 내려갔을때 안 사돈어른께서 "거름은 안가져 갔네?"
"가져 갔어요."
"가져간 표시가 없는데?"
"조금밖에 못가져 갔지만요. 가져 갔어요."
나는 안 사돈에게 "지렁이가 무서워요."
라고 말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못 들으셨다.
직접 기른 상추를 먹어 본 아들도 상추가 사먹는 상추보다 더 맛있다고 한다.
올해 초 야채를 집에서 길러 보겠다고 해서 진해식물원,산청,외가 창평에서 여러가지를 가져 왔다.
그러나 식물을 기른다는 게 잘 길러야지 못 기르니 마음만 상하고 많이 많이 아팠다.
화분에 지금도 여러가지들이 자라고 있지만 미안한 마음 뿐이다.
야채든 화초든지 잘 보살펴 주어야지 방치해 둔다면 기르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어떨까?
내가 다니고 있는 곳에도 모두 다 환자들 뿐이다.
나는 어쩌다 여기에 와서 근무하게 되었을까.
살고있는 동네를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기에 여기에 있으면서 사람들과 다른 세계를 바라보라는 건가?
자연으로 돌아가서 생활해 보고 싶다고 하니 이곳을 먼저 보여주는가 보다.
아직은 며칠되지 않아서 사람들을 잘 모른다.
그들도 역시 나를 잘 모를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그곳과는 너무나 많이 다른 세계이지만 자연이 그대로 숨쉬고 있어서 좋다.
또 사색하기에는 너무나 좋다.
서울 시내에 살아가는 나에게 이런 자연이랑 같이 놀아보게 해준 시간에게 감사하고 싶다.
어린시절로도 돌아가보고 꿈을 꾸게하는 게 무엇일까?
바로 자연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농사를 서울에서 나는 배우고 있다.
상추는 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절대로 안된단다.
"왜요?"
오늘처럼 장대비가 내리면 나무잎에서 내리는 빗물 때문에 상추가 될 수 없다 했다.
그렇다.
낑낑거리면서 나는 상추를 옮겨 심었는데 장대비가 내리고 난 뒤에 상추밭을 가보니
상추는 잎이 뿌리쪽으로 곤두박질 해 있었다.
그렇구나.
장대비가 나뭇잎에 머물다가 왕방울이 되어서 얇디 얇은 상추를 공격하면
상추잎은 찢어지고 호흡을 못하니 될 수 가 없구나.
그 현장을 내가 목격했으니 ---.
농사도 배워야 한다.
월요일 오후 감자를 같이 캐신 할머니께서 묻는다.
"깻잎은 사왔어?"
"예. 그런데 모종이 없어서 씨로 사왔구요.파씨도 사와서 많이 심고요.
깻잎씨와 파씨가 조금 남아 있어요.
그리고 여름 상추씨도 사왔어요.
그래서 할머니는 저랑 같이 남은 것 심으셔야 해요."
"상추는 안돼?"
"여름 상추라니까요."
"참 상추는 모판에 심어서 모종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면 될지 몰라도 서재는 상추는 절대 안돼."
"왜요."
"나무가 있으면 바스라져서 못먹어."
"그건 저도 이야기 들어서 이제 알겠어요."
할머니 호미 1개만 챙기시며 나에게 따라오라고 하신다.
"할머니,저도 호미 가져가야지요."
"지렁이 무섭다며, 그냥 따라 만 와."
"예."
할머니께서 잡풀을 뜯으시고 나도 뜯는데
어~~~휴.
여지없이 보이는 지렁이 그래도 오늘은 소리는 지르지 말아야지.
그러면서 굳게 마음을 다진다.
발걸음을 두번째 펄쩍 뛰기만 했다.
"할머니 호미질만 하세요.쪽파씨는 제가 집어 넣을께요."
할머니 고랑을 파시며 "파씨는 내가 할테니 깻잎씨나 뿌려보아."
"가르쳐 주세요."
"이렇게 뿌리는 거야?"
"예. 제가 해 볼께요."
농사를 짓고 계시는 할머니는 땅이 놀고 있는게 싫으신가 보다.
"예전에는 여기에 다 가꾸어 먹었어."
"예.그랬군요.할머니 땅이 놀고 있어서 싫지요."
"그럼. 그렇지."
"참,할머니 메밀도 심어 놓았어요."
'그래? 어디."
"저기요. 쬐끔 얻어와서 심어 놓았구요. 씨도 몇개 심었어요."
밖으로 나가시면서 "그래도 여기에 여러가지가 심어져 있구나."
"좋으세요."
"그럼, 좋지."
그렇다.
할머니들께서는 농사를 평생지으시면서 살아오신 분들 눈으로 보면
농약에 찌들린 야채를 먹는 것보다 길러서 먹는게 얼마나 많은 가치로운 일인지
잘 아신다.
나도 지천명이 되어서 보니 늙어 간다는 게 꼭 싫은 것 만은 아니다.
할머니,할아버지들께 늘 지혜로운 인생을 배우며 깨우친다.
얼마나 잘 살겠다고 무엇이 진정 잘사는 것인데 ---.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다가 가면 그 뿐인 걸.
욕심 챙기면서 살려고 했던 삶도 아니라면 부대끼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농사를 지으실려구요?"
"예,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