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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창평]아시아 최초 슬로우시티 우산각 복원되어야 한다

만년지기 우근 2011. 1. 29. 15:07

 

 

 

우산각은 이렇게 폐허가 되어 있다.

바로 옆으로 개울물이 흐르고 있다.

여름 철 소나무 숲 아래에서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여름 땀을 식히던 우산각은 복원되어야 한다.

 

 

 

 

 

 

 

창평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딩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친환경 패러글라이딩 학교를 창평에 유치해서 아이들부터 어른들의 레포츠로 각광받는 여행지로 추천할 수 있게 만들기바란다.

 

 

 

슬로우시티 창평면 유천리에는 이렇게 아이들이 눈싸움 놀이를 하고 있어서 내가 물어 보았다.

어디에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여기가 집이라고 대답한다.

진정한 슬로우시티는 이렇게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마을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

내가 사진을 찍을 거니 너희는 마음대로 놀아보라고 했다.

자연스러움이란.

슬로우시티로 지정되어도 될만한 가치를 나는 아이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는 유천리를 최고로 꼽는다.

 

 

창평국민학교 바로 옆에 있는 구멍가게다.

턱이진 세멘으로 덮여져 있는 곳에 개울물이 흐른다.

 

 

창평의숙이 창평국민학교로 지금은 창평초등학교이다.

 

 

창평 슬로우시티 우산각복원되어야 한다

                                                                     우근 김  정  희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있는 우산각을 보니 가슴이 아파온다.

우산각은 어릴적 추억으로 항상 나를 이끌어 간다.

광주할아버지 논에 겨울에 자라나는 자운영과 우리집 작은밭에 피어나는 도라지꽃은

우산각에서 가까이에 있다.

지금 생각해도 우산각은 여름이 되면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었다.

우산각 아래에는 두개의 물줄기가 합쳐져서 내려가는 곳이다.

2011년 새해를 고향 친구들과 같이해 보자고 서울에서 내려 가는데 내내 눈이 내린다.

서창아짐집에서 새해를 맞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함박꽃이되어 웃는다.

저녁에 재청이집에서 친구들이 모이기로 했다.

지천명이 되어보니 친구들 얼굴이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향이 주는 마음의 평화가 고즈넉하게 다가온다.

서창아짐집 대나무밭을 지나고 다음에 나오는 그림이 우산각이다.

우산각 아래에 있는 재청이집은 어릴적에는 밭이였을거라고 생각한다.

우산각의 유래는 언제부터일까.

나는 궁금해서 외할머니께 물어 보았다.

우산각은 사람들이 논 일을 하거나 밭일을 하다가 우산처럼 땀을 씻어주는 곳.

논 밭일을 하다가 비가 오면 비를 가릴 수 있는 우산 역할을 한다고 했다.

우산각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작은 개울과 개울물 두곳이 만나는 곳.

그때만 해도 다 산이였으니 우산각을 지나면 우리집 작은밭 두개가 있었다.

개울 건너편에 있는 도라지밭과 건너편에 길가옆에 있었다.

들딸기가 여름이면 빠알간 색으로 항상 먹을거리로 밭두둑길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고

삐비도 하얀색 머리를 내밀었다.

 

슬로우시티로 지정된 창평은 지금 삼지네 돌담길은 어느정도 복원이 되어 있었다.

창평국민학교 앞을 흐르는 개울 물도 복원했으면 한다.

어릴때 기억이여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개울물이 제법 많이 흐른다.

창평 슬로우시티에는 독립투사이신 녹천고광순할아버지가 모셔진 제각도 알려야 한다.

창평슬로우시티의 세계적인 광광지를 나는 꿈꾸고 있다. 

학봉 할아버지 묘소와 천년소나무도 알려져야 한다.

거기에 차영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딩은 또 하나의 관광명소로 친환경 슬로우시티에서

적극적으로 키워주어야 한다.

패러글라이딩 축제와 마을 길을 무궁화꽃으로 가꾸어서 세계적인 무궁화꽃 축제를 해야 한다.

무궁화꽃은 100일동안 꽃이 피고지고 한다.

우산각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 하나가 이렇게 없어져 가야 하는가.  

 

 

 

우산각은 폐허가  되어 있다

슬로우시티에서 복원되어야 한다 


 

 

 

 

 

 

 

 

 

 

 

 

멀리서바라 본 우산각 

우산각이 복원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