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한마당

[스크랩] 바이러스에 대해서

만년지기 우근 2007. 7. 27. 23:56
» 바이러스 삶과 죽음 사이
이재열 지음. 지호 펴냄. 1만3000원
바이러스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의 물음을 던지게 하는 존재다. 먹고 싸며 자라는 생물이 아니니까 바이러스는 무생물이다. 그렇지만 자기복제를 하며 자손을 남기니까 생물이다. 그러니까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체’인 바이러스는 1930년대 처음 발견된 이후 생물학 교과서에서 생물과 무생물의 새로운 정의를 만들게 한 존재이기도 하다.

경북대 이재열 미생물학 교수가 쓴 <바이러스 삶과 죽음 사이>(지호 펴냄)는 원시생물 탄생의 목격자이면서 인간에 의해 정복되지 않은,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바이러스의 광대한 세계를 다루고 있다. 최근 조류독감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처럼 공포의 대상이 된 그들의 정체를 자세히 이해하는 길을 열어준다.

적절하게 비유하기, 쉽게 풀어쓰기를 통해 생물학의 기본원리부터 난해한 생물철학에 이르기까지 바이러스에 얽힌 다양한 담론을 풀어나가기에, 일반인을 위한 바이러스 생물학 도서다.

지은이는 바이러스의 세계를 하나의 이미지로 그리지 않는다. 또 그 정체가 여전히 다 밝혀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자연계의 생물 숙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의 생존 방식들, 바이러스 세계의 다종다양한 습성들, 최근 인간을 위협하는 사스·독감·에이즈 등 공포의 바이러스는 물론이고 유전자 재조합과 백신·세균 연구 등에 유용하게 쓰이는 바이러스까지 여러 모습을 포착했다.

바이러스를 끔찍한 병원체로만 믿고 있는 독자라면 다소 당혹스러워할 만한 물음을 지은이는 던진다. “바이러스는 친구인가 적인가?” 갈수록 악명이 높아지는 바이러스한테서 친구 되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바이러스는 모두 완전박멸해야 할 적인가?

바이러스 연구자인 지은이는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일 뿐”이라는 지극히 모범적인 답을 준다. “내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바이러스의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해보자.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바이러스는 친구일까 적일까? …분명한 사실은 바이러스는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니라는 것이다.”(221쪽) 그저 그들대로 자연의 법칙에 맞춰 존재해왔을 뿐 그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건 순전히 인간중심의 사고이고 ‘내편 네편’을 가르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습성이라고 강변하는 지은이의 해석이 흥미롭다.

지은이는 수십억 년 동안 가장 능숙하게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바이러스의 놀라운 능력을 환기시키면서, 유전자와 바이러스를 정복하고자 하는 현대 생명과학의 자신감을 다시 생각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돼지 장기 이식의 문제다. 돼지한테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돼지 안에서 기생하는 50여가지 내재 바이러스(레트로바이러스)는 돼지 장기가 사람몸에 이식됐을 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기 힘들다고 그는 경고한다.

또하나, 유전자재조합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담배 식물이 바이러스에 저항성을 지니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내병성 담배를 개발했으나, 일부 담배는 훨씬 강력해진 바이러스로 인해 여전히 병충해 피해를 입었다는 1992년 미국 연구자들의 실험결과를 소개하면서, 지은이는 유전자재조합 생물체와 바이러스의 끝나지 않는 방어와 공격의 공진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190쪽)


이 책을 통해 바이러스를 자연의 존재로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하는 지은이는 이런 태도를 지닐 때에야 비로소 바이러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통제하며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바이러스는 46억년의 나이를 지닌 우리 지구에서 30억~35억년 전 출현했던 원시생물체의 흔적을 지금까지 간직하며 살아남은 ‘살아 있는 화석’으로도 통한다. 그래서 지은이한테 단백질과 유전정보로 이뤄진 바이러스는 단백질과 유전정보·탄수화물·지질 성분으로 이뤄진 생물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존재로 비쳐진다.

이 책은 다른 생물의 유전 시스템에 무임승차해 살아가는 바이러스와 다른 숙주 생물들이 벌이는 공생과 기생, 공격과 방어, 투쟁과 타협의 오래되고 흥미진진한 상호관계를 보여준다.

 

출처 : ♣Be Given To DayDreaming...Again...♣
글쓴이 : 반 더 빌 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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