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한마당

[스크랩] 한글의 과학성 해치는 `ㅚ`모음에 대한 고민

만년지기 우근 2007. 10. 9. 18:38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자신들의 문자가 없는 소수 언어 민족들에 대한 한글 수출 보급에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사실 한글처럼 거의 완벽한 ‘표음문자(表音文字)’도 드물다. 그런데 결점이 없어 보이는 소리글자인 한글에서도 오류 아닌 오류가 나타나는데, 바로 ‘ㅚ’ 모음의 발음이다. 이 오류가 한글 창제 과정에서부터 나타난 것 같지는 않고, 수백 년간 사용되면서 발음의 왜곡이 일어난 것 같다. 사실 ‘ㅚ’ 발음은 한글 모음 조합 원리에 따르면 ‘ㅟ’ 모음에 더 가깝게 읽혀져야 한다. 그런데도 ‘ㅙ’ 모음의 발음처럼 읽힌다. 예전부터 그렇게 쓰여 왔으니 별문제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한글의 표음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한 현재 우리나라 사람 중에 '외'를 고유의 발음으로 읽는 사람은 전혀 없다. 모두가 다들 '왜'나 '웨'나 '오ㅔ'로 읽는다. 고어에서는 어떻게 읽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고유의 발음이 존재하지 않거나 사용되지 않는다. 'ㅗ'와 'ㅣ'를 동시에 발음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ㅚ'가 표음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성씨(姓氏) ‘최(崔)’가 영어 알파벳에서는 'Choi'로 표기된다. 우리는 우리의 ‘음가(音價)’에 따라 ‘최’를 ‘Choi’라고 표기하지만, 외국인들 중 그 누구도 이를 ‘최’라고 읽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외국인들은 ‘Choi’ 표기를 ‘초이’라고 읽는다. 그렇다면 ‘Choae’라고 써야 옳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스스로가 ‘최’를 ‘�’라고 읽는 데서 문제가 비롯되었다는 생각으로 옮겨갔다. (영어 표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말이지, 영어와 비교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글에는 이중 모음(이중으로 발음되는 모음)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한글의 병모음들은 모두가 별개의 단모음을 빨리 읽을 때 나는 소리이다. ‘ㅢ’는 ‘ㅡ’와 ‘ㅣ’를 빨리 읽을 때 나는 소리이다. 'ㅘ'는 'ㅗ'와 'ㅏ'를 빨리 읽는 소리이다. 모든 병모음이 다 그러하다. 그러니 ‘ㅚ’ 역시 ‘ㅗ’와 ‘ㅣ’를 빨리 읽는 소리가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ㅗ'와 'ㅣ'를 빨리 읽어 하나의 모음으로 발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ㅚ' 모음을 단모음으로 억지로 끼워 넣는 고육지책이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ㅚ' 표기를 없애고 병모음 'ㅙ'나 'ㅞ'로 통일하거나, 'ㅚ'를 대체하여 'ㅗㅔ' 병모음을 새롭게 추가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발음상으로는 'ㅗ'와 'ㅔ'를 합치는 것이 가장 맞는 것 같습니다. ) 예전에는 한글에서 사용되던 많은 자음이 사라졌다. 시대가 변하면 언어도 변한다. 'ㅚ' 모음이 불필요하고 발음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없애거나 바로 잡는 것이 한글의 과학성 향상을 위해서는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고민을 해보았다.

 

  한글 학자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한글은 1 자(字) 1 음(音)이 기본인데 'ㅚ'모음은 그 원칙을 깨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에 음운학적으로 'ㅚ'를 한 번에 읽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글의 과학성과 표음성을 보존하려면 ‘ㅚ’ 발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한 번 쯤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터넷과 정보의 시대가 되다보니 한글의 우수성이 새삼 크게 부각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머지않아 세계에서 열 손 가락 안에 들게 된다고 한다. 남북한을 합쳐 8천만에 가까운 사용 인구 역시 적은 것은 아니고, 알파벳이 없는 민족에 대한 한글 보급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인 성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 자신이 우리말에 대한 이해를 높여 정확하고 아름답게 쓰는 질적인 노력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말을 파괴하고 학대하면서 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의 우수성을 설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한글을 자판기를 통해 옮기는 것이 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단어와 글은 자꾸만 짧아지고 있으며, 언어 사용 능력과 수준은 자꾸만 퇴보하고 있다.  

 

  한국어는 명사가 발달한 언어이다. 영어가 ‘동사’를 기초로 명사와 형용사 등이 파생되는 반면에, 한국어는 명사에 ‘~하다’를 붙여 동사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는 매우 정적인 언어가 되었다. 의태어나 의성어 등이 발달하여 감성 표현에는 적합하지만 솔직히 논리적인 언어는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언어를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언어의 논리성이 떨어지게 된 점도 없지 않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은 한국인의 사고 구조에서도 논리성을 떨어뜨렸고, 매사를 대충대충 해결하려는 습성을 낳게 되었다. 언어 표현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의도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지 고민하지 않으니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 넘쳐난다. 규정과 조리에 맞는 해법을 찾으려고 고민하지 않으니 모든 일을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마무리 짓고 만다.  

 

  요즘은 한글에서 일본어 잔재를 없애자는 주장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데 일본어를 없애자는 주장에는 공감이 가지만 일본식 한자어를 없애자는 주장에는 솔직히 공감이 가지 않는다. '다꾸앙'이니 '와루바시'니 하는 단어를 없애는 것은 필요하지만, '결혼'이나 '입장' 같은 일본식 한자를 없애자는 말은 지나친 피해의식이라는 말이다. 예전에 신문을 읽다가 어느 독자의 기고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독자의 주장에 따르면, 10대들이 사용하는 '짱'이라는 단어가 일본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 독자는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짱'이라는 말이 일본식 애칭인 '짱'에서 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승엽 선수를 일본인들이 '승짱'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오해이다. 조금만 사려깊게 생각해 본다면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짱'이라는 단어는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長)'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유독 장(長)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교장, 반장, 회장, 어머니 회장 처럼 장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는 학생들이 장(長)이라는 단어를 된소리인 '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것이다. 

 

  또 어떤 네티즌이 '~지다', '~하게 되다'가 일본식 표현법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도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글쓴이의 주장이 위의 사례처럼 일본어에 대한 지나친 피해 의식이나 강박 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장의 생명은 주어이다. 그래서 주어(主語)인 것이다. 주어가 무엇이 되느냐에 따라 강조하려는 의미가 확연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주어가 무엇이 되느냐에 따라 동사는 능동형이 되거나 수동형이 되는 것이다. 피동형(수동형)이 전통적인 우리 표현에 많지 않더라도 시대의 필요에 맞춰 우리의 문장 구조도 피동형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는 언제나 시대의 요구를 수용하게 된다. 한글이 훌륭하다고 해서 한국어도 완벽하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편견이다.  물론, 우리의 전통적인 문법과 훌륭한 낱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외래어를 도입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도 부족한 면이 있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에 한계를 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러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외래어와 외국어의 문법 양식을 차용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며 부끄러운 일도 아닌 것이다.

 

  지금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많은 한자어들이 사실은 일본인들에 의해서 조합된 신생 한자어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경제니 정치니 경쟁이니 하는 말들 모두가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자어들을 한자어의 원조국인 중국에서도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각 나라의 언어들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고, 자국 언어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우리의 언어를 잃어버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언어를 더 아름답고 체계적인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다른 언어에 대해 우리가 지닌 열등감을 지적하기 이전에 우리 언어의 우수성을 깨닫고 더 아름답게 가꾼다면,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사용 능력과 긍지도 저절로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영어를 통해 인류가 언어의 바벨탑을 쌓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일 년에도 수백 개의 소수 언어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지금의 세기가 끝나기 전에 대부분의 소수 언어는 사라지고, 열 개 안팎의 언어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그래서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우리의 말과 글이 언어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노력해야할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많은 외국의 학자들이 한국어의 우수성을 높게 평가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평가는 ‘한글’이라는 알파벳에 대한 평가일 뿐, ‘한말’이라는 언어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언어 자체에 대한 비교와 평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언어 자체가 자연 발생적이다 보니 언어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국력(國力)과 언어력(言語力)이 비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용 인구수가 중요한 잣대가 되고 체계적인 언어 연구가 중요한 힘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 스스로 힘을 기르는 일. 그것이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가장 큰 힘이다.

출처 : 블로그 오프라인
글쓴이 : 누구세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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