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경상도 여행

통영시의 유래와 동피랑 찾아가는 길

만년지기 우근 2007. 11. 4. 22:18

 

 
통영시의 유래와 동피랑 찾아가는 길
                                                         우근 김  정  희 
 
저를 생각해보니 저도 1979년도에 서울로 대학을 다니면서 제 고향에 대해서 써놓아도 모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들러보았자 산소 찾아가는 길과 시장이나 보러가면 운전해 주는일 빼놓고 자세한것을 잘 알 수 없으리라
저도 사진으로 글로 밖에 설명이 안됨을 이해 하시구요.
오랫만에 보시는 통영이시라면 많이도 변했구나 하실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여기는 통영항 여객선 터미널은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통영에서 사시는 분들도 동피랑을 잘 모르신다고 해서 제가 사진으로 자세히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오늘은 제 컴이

3번이나 다운이 되면서 써놓은 글들이 되살아 나지를 않아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

  

 

주차장 위로 언덕처럼 보이는 곳이 바로 동피랑 이랍니다.예전에는 길이 없었다가 지금은 중간에 차도로가 있는데요.

도로 전체를 까만색으로 칠을해 놓았습니다.저는 그게 인상적이었구요. 할머니 한분께서 74살이 드셨는데요.

중간에 차길이 자신에 집이였었는데요. 철거를 당하시고 더 꼭대기로 이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1981년에 충무에 여행을 와서 충무김밥 할머니께서 훈훈하게 얼마나 말씀도 잘해주시고 김밥도 많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따님이 하시고 계신다고 하는데요. 이집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통영여객선 터미널에서 오다보면 길 건너편 입니다.충무김밥집을 지나가면 중앙시장이 나옵니다.
 

 
중앙시장을 지나서 나포리호텔을 지나서 강원수산쪽으로 좌회전을 하시면 통새미길이 나옵니다.통새미가 무슨뜻이냐고
제가 통새미 한정식 사장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통새미라하는 샘물의 이름이라고 가르쳐주셔서 찾아보니
바로 옆이였습니다.어릴적에 외가에서 보았던 우물물이 있었고 반가웠습니다.
우물물 안에를 들여다보니 풀들이 자라고 있어서 옛날 어릴적에 수박,참외,오이를 담갔다가 시원하게 먹었던
기억이 새록 새록 나서 두레박으로 물을 떠보려 하다가 지금 사진의 주인공아저씨께 안떠진다고 했다가
많이 많이 혼을 내시더라구요.
이것도 동피랑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로 내내 남을것 같습니다.
 

 
지금 아저씨께서 물이 담아졌으니 저보고 올리라고 하시는 모습입니다.허리를 다치셔서 무거운것을 드시면 안된다고
하셔서 사진을 얼른 찍고서 두레박을 잡아 올려보았습니다.
동피랑에 여행을 가시면 두레박에 물을 한번 떠보시는 것도 추억거리가 되실 겁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고서 떠올린 두레박 물 입니다. 물은 굉장히 맑았습니다.

 

 

아저씨께서는 쓰레기 봉투를 사시러 가게에 들렀다가 제가 두레박으로 낑낑거리며 하고 있으니 쓰레기 봉투를

놔두시고 두레박에 물을 채워주시면서 두레박질은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시면서 경상도 말로 무어라 하시는데

반은 알아듣고 나머지는 무슨뜻인지 모르겠고 같은 땅에 살면서도 말이 이렇게 다르고 많습니다.

   

 

통새미 한정식에서 저희가 밥을 먹었습니다. 통영에서는 한정식이라고 써져있는 식당에 가시면 기본으로 회가

나옵니다. 점심상을 미리 차려놓으신것을 제가 찍어보았는데요. 사람들이 와서 앉으면 회와 탕이 나왔습니다.

제가 콩잎파리 이야기를 하자 단풍이든 콩잎파리가 나왔는데요. 처음에는 콩잎파리 때문에

밥을 한그릇 더 먹었습니다.젓국에 절여진 콩잎파리를 쓰고있는 지금 입에서 침이 꿀꺽하고 넘어가는 군요.

통새미한정식 윤정남 사장님 감사합니다.

 

통새미 한정식 전화 : 055 - 645 - 4025  휴대폰 : 010 - 3575 - 3613

  

 

통새미한정식을 나와서 동피랑1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이시지요. 여기가 동피랑 언덕의 초입니다. 

지금 서서 그리고 있는 학생은 생선에 알러지가 있어서 생선을 못먹어서 김치찌게,된장찌게로 대신했던

학생입니다.사진으로 보셔도 언덕길이라는걸 느끼시겠지요?

 

 

 

여기는 처음에는 계획에 없었다가 저 학생팀이 3명이였는데요. 정말 열심히 해주었습니다. 여기에도

한명 김반석 선생님께서 황소와 한글그림 두점을 남기셨습니다.

김반석선생님께서도 자원봉사자 2명까지 합하면 3명이나 되었으니까요.

 

 

 

 

위에서 찍은 동피랑 올라오는 언덕길 입니다. 통새미 한정식에서 밥을 먹고 올라와서 커브를 돌아서 각자의

작품을 그리러 가던 그 길인데요. 벌써 그리워 지는 군요.

 

 

여기는 동피랑 1길위에서 동피랑2길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주차되어있는 차앞으로 보이는게 나무상자입니다.

통영이 바다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던 곳이기도 했구요.나무상자 앞부터 시작해서 동피랑2길 입구를

한명 김반석선생님께서 작품을 그리신 곳 입니다.

 

   

동피랑길은 이렇게 까만색깔로 되어 있었습니다.아스팔트가 아니라서 까만색깔 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던 동피랑 처음 모습입니다.시월에 마지막날에 동네 잔치를 여기에서 했습니다. 돌담옆에

시멘트로 2계단을 누가 그리셨는지 아시나요? 키가 크신 통영시장님께서 둘러보러 오셨다가 저기 2군데가

너무 횡하다고 했더니 시장님께서 직접 4번씩이나 오셔서 앞치마를 두르시고,청바지도 입으시고 그리셨습니다.

예향의 도시답게 시장님께서도 화가이시라고 하더군요.

 

 

옛모습과 비교를 해보십시요.여러분은 어떻다고 느끼시는지요. 멋이있어졌나요? 예술이란 이렇게 달라짐을

보여드리는 거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지금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계시는 분은 유용문 과장님이 신데요.

동피랑의 기획안을 내셨던 분이랍니다.

 

 

통영분들은 아실까요. 통영시장님이십니다. 이렇게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오셔서 앞치마를 두르시고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열심히 작업을 하시더군요.4번씩이나 오셔서 그리셨습니다.
 

 

 

 

양양에서온 고대연 학생입니다. 마스크를 쓰고하라고 했지만 그걸 무시하고 혼자서 가장 많은곳을 환하게

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를 하는데도 너무나 열심히 해주어서 제가 계속 주시를 했구요.

끝까지 마무리까지 철저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21세기 한국의 미래가 보였습니다. 

 

 

제게 사진이 이제서야 도착을해서 통영바다가 보이는 동피랑 언덕위에 한양대 학생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입니다.이틀 저랑같이 파도소리 팬션에서 동침을 했습니다.

 

 

 

이번에 저를 자원봉사자로 만드신 한명 김반석선생님과 양양에서 통영까지 먼길을 달려서 온 관동대를 다니는

고대연 학생입니다. 지금 이사진도 제게 메일로 보내주어서 제가 쓰고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그림이 이것밖에

없기도 하구요. 저는 무슨 처리도 못하니 그냥 모델이 되시는 겁니다. 뒤에 나포리 호텔이 보이는 군요.

 

 

이길은 위에 표지판이 보이시나요.동피랑2 길과 아래로 중앙시장 3길이 되는 곳입니다.통영 동피랑을

이렇게 설명해 드려서 이제는 찾아 가실줄 아시겠지요?

한명 김반석 선생님께서 꼼꼼하게 마무리를 하시고 점심을 드시고 저도 모르게

어느 사이에 울산으로 떠나셨습니다.

저는 시월의 마지막밤에 동피랑 마을잔치가 열리고 마지막 마무리 짖는것도 보고 싶었구요.

통영에 와서 여행기분도 내고 싶어서 몇 군데를 들러서 보기도 하고 사진도 가져 갔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몇군데를 다녀왔습니다.

  

 

통영시의 유래 
 
경상남도 남부, 남해안에 있던 시.
1995년 통영군과 통합하여 통영시가 되었다.
지금의 통영시 무전(霧田)·도천(道泉)·서호(西湖)·명정(明井)·항남(港南)·중앙(中央)·문화(文化)·
태평(太平)·동호(東湖)·정량(貞梁)·북신(北新)·평림(坪林)·인평(仁平)·당(堂)·미수(美修)·봉평(鳳坪)·
도남(道南) 등 17개동이 이 지역에 해당한다.

 
이 지역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설치된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
즉 충청도·전라도·경상도 3도의 수군을 총괄하는 통영(統營)지역이 중심이 되어 발전한 곳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593년에 이순신을 통제사로 하여 전라좌수영이던
여수에 통영을 처음 설치했다가 1601년에 거제(巨濟) 오아포로 옮겨갔다.
통영은 1604년에 다시 고성(固城)의 두룡포(頭龍浦)로 이전하여
1895년까지 존속하면서 삼남지방 해안방어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870년 고성현이 부로 승격함에 따라 이 지역은 고성도호부 관할이 되었다.
1895년까지 통영이 폐지되고 고성은 군이 되어 진주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도제 실시로 경상남도에 소속되었다. 1900년에는 고성군에서
옛 통제영 지역에 분리해 진남군(鎭南郡)을 설치했다.
 
관할 구역은 통영 소속 여러 섬과 고성군 도선면·광이면·광삼면과 거제군의 가좌도·한산도로 이루어졌다.
1909년 진남군을 용남군(龍南郡)으로 개칭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용남군과 거제군을 합해 통영군으로 개편했다.
이때 용남군 가좌면·동면(일부)·서면(일부)이 통합된 통영면이 1931년 읍으로 승격하면서
산양면의 북부를 편입했다.
 
1955년 통영읍을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딴 이름인 충무시로 승격했다.
1995년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통영군과 통합하여 도농통합시 형태의 통영시가 되었다.
金基赫 글
 
통영군의 명칭은 고성현에 있었던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등 3도의 수군을 통괄하는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을 줄여 부르던 이름인 통제영 또는 통영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통영은 1955년에 이순신장군의 시호를딴 충무에서 1995년에 통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충무김밥은 1955년 이후에 생긴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일반 사람들은 충무와 통영이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통영은 통영 충무김밥은 충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실지

몰라서 제가 다시 한번 더 강조를 합니다.

 

그리고 제게 사진을 메일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분들께 다시 한번 더 부탁을 드립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때문에 기사를 쓰는데 불편하지 않게 해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우토로마을을살리자 상단 우측

 
   
물망초님 배너2물망초님 배너2물망초님 배너2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