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인의 자랑 한국 최고의 화백 전혁림 선생님과 악수를 ---
우근 김 정 희
통영인의 자랑중에서 전혁림선생님은 어디에 가든지 들을 수 있었다.
파도소리 팬션 사장님께서 입이 달도록 통영에 인물로 넣어 달라하시던 전혁림 선생님을 뵙고자 차를 돌려서
미술관을 보니 와 - 아 함성소리가 절로 나왔다.
통영대교 앞에서 본 작품이 전혁림선생님 작품이 맞았던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해보니 서울 갤러리에서 전시회에서 전혁림선생님 작품을 감상한것같다.
20대였지만 성함이 특이하시기에 기억을 해냈다.
찾아가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보니 미술관관장님이 되시는지 모르겠지만 미술관이 폐관을 했으니 돌아가라고 한다.
고대연 학생에게 미술관을 못들어가더라도 밖이라도 찍어가야지 안된다고 미술관 밖을 여기저기 찍는데
나는 할일이 없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못들어가 본다는게 억울해서 여기저기 꼼꼼하게
찍어보라고 미대생이니 사진 실력은 나보다 나을거니까 하는데 미술관안에서 전혁림선생님의 모습이 보이신다.
담배를 얼른끄고서 고대연 학생이 그림을 그렸던 작업복을 보시더니 선생님께서 직접 문을 열어 주신다.
이런 황송할데가 옆집에 계시던 따님도 오셨다.
전혁림선생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면서 느끼는 도인이 한분 계시는 듯 전혁림선생님께서는 그림을 그리시던
중이시다.
묵묵히 다시 앉으셔서 그림만 그리시는데 올해에 연세가 93세인게 미끼지 않을 만큼 미려하셨다.
그렇게 유명하신 분이시라면 생각을 해보니 이왕에 왔으니 악수나 해야지? 하면서 제가 "선생님 악수나
한번 하시지요?"하면서 "학생 악수하는 모습 좀 찍어주세요? "했더니 그림을 그리시던 붓을 놓고서 악수를 하면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같이 빙그레하고 미소를 지으시고는 고개를 돌리시며 손이 다시 붓을 잡으신다.
내가 "선생님 연세가 많으신데도 제 손보다도 더 따뜻해요?"그랬더니 한번더 웃으시면서 붓을 다시 잡으시고는 그림을
그리신다. 그래서 "선생님? 작품 그리시는 모습도 사진으로 담아갈께요? "했더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신다.
따님께 다른 작품도 사진에 넣어가면 안되느냐고 했더니 완성된 작품은 사진에 담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2층을 구경하라고 하신다.
2층계단이 온통 푸른색이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 파랑색깔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래서 기억을 하는지 모른다. 파랑색을 좋아해서 파랑색 옷을 사입어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 파카와 같은 색깔에
작품감상에 빠져있던 고대연 학생이 2층으로 올라온다.
2층은 아담한 카페가 차려져 있고 선생님께서 만드신 실용적인 작품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스카프와 넥타이도 있었다.
블로그에 제 모습이 처음 공개가 되는군요.알마님께서 맛대로 촌닭집에서 보면서 생각했던거랑 똑 같다고 했는데요.
전혁림선생님께서는 93세 이신데도 훤칠하신 키에 신선이 내려오셔서 그림을 그리시는것 같았습니다.
전혁림 미술관 전경입니다.어떠세요. 감탄사가 나올만 하지요? 그런데 제가 상상했던것 보다는 미술관이
작고 아담했습니다.소박하시기 까지 하신 선생님께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 나오더군요.
이래서 통영분들이랑 모이기만 하면 전혁림선생님 선생님 하시나 보다 했습니다.
파란색 문이 빛깔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안에서 선생님께서 기다리라면서 이문을 손수 열어주셨습니다.
정원이 없었구요.이렇게 두채가 있는데요.저기는 살림을 하시는곳 같았습니다. 따님께서 창문을 여시고
미술관 문을 열어 주시겠다고 오시는 동안 저희는 이미 전혁림선생님께서 열어 주셔서 미술관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파랑색을 좋아하는 나와 전혁림 선생님 작품을 한점 달라고 했으면 주실것 같이 평범하시고 소박하신 선생님
그림그리시는 모습도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다는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93세에도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화가라는 직업이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고대연 학생에게 그랬습니다."죽을때까지 작품을 할 수있는 화가와 작가도 좋은 직업이군요."
하면서 웃음으로 화답하는 고대연 학생이었습니다.
전혁림 선생님 약력이 나와있는 곳을 찍어도 된다고해서 찍었는데요. 그옆에 작품도 보이네요.
죄송하지만 저는 처리를 못하기에 그냥 내보냅니다.
예향의 고장 통영에 인물이 많아서 1945년도에 찍은 사진인데요.보이시지요.김춘수선생님.윤이상선생님.
청마 유치환선생님.그리고 주인공이신 전혁림선생님.등등 선생님 모두 모두 역사에 남으실 분들이시지요.
1945년이면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네요.그것도 한참 전인데요?
2층 올라가는 계단에 1976년 국제신문입니다.이 작품이 전혁림 선생님 작품입니다.
2층을 내려와서 보니 있기에 이것도 찍어보라고 했습니다.그리고 팜플랫을 챙겼습니다.나오는데 따님께서
다시 한번 더 들리시면 그때는 2층에서 꼭 차를 대접 하겠노라고 하셨습니다.
차 얻어 먹으러 통영으로 갑시다.
밖으로 나왔더니 타일이 정말로 멋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보면 얼마나 귀족같은 품위가 있는지 모릅니다.
이 사진을 실비단안개 선생님께서 찍어야 하는데 그래야 제대로 나오는데 그랬답니다.
멋진 화랑이었고 그보다 더멋지신 전혁림 화백님과 악수를 한 사진도 제 평생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되겟지요?
통영분들께 전혁림선생님과 악수를 했다고 했더니 다들 영광스럽다고 하시더라구요.
통영분들이 말슴하시기를 전혁림선생님께서 그리시는 작품이 한국에서 제일 비싼 그림이시랍니다.
그래서 전혁림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으니 자료를 남겨야겠기에
통영시청자료실에 들어가 보았더니 전혁림선생님 자료가 있어서 복사를 해 왔습니다.
푸른통영 김형진위원장님께서 오늘도 긴댓글을 달아주셨네요.
댓글을 보니 통영은 인구당 예술인이 가장 많은 곳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통영은 예향의 고장입니다.
전혁림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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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고향의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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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에 이르는 그의 작품 전체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작품의주제가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초창기 도기작업에서 보여주는 전통적인 기형, 문양, 정물에 등장하는 각종 기물들, 나아가 단청에서 영향을 받은 선명한 색감 같은 요소들은 그의 관심의 근저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것들이다. 또한 그의 정물작업은 조선시대 민화의 책거리 그림, 혹은 민화의 화조도를 보는듯한 사물의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주제의식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작업에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조형적 방법을 탐구하는 노력이 밑받침되어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또 다른 주제는 바로 “고향”이다. 전혁림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통영, 부산, 마산이라는 지역에서 마치 바닷가를 지키는 등대 마냥 터주대감처럼 꿋꿋이 살아왔다. 그리하여 그가 나타내는 풍경은 바다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가 늘상 보아왔던 바다를 나타내는데 있어 필요한 요소는 넘실대는 파도로 대변되는 표피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바다의 파란색, 바다와 관계있는 것들을 통해 바다의 풍경을 엮어 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바다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에 그만의 은유적인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자연이 그에게 전해준 인상이 작가가 표현해야할 과제였으므로 그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그것을 표현할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점에서 비록 그의 작품이 추상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그는 자신을 “추상화가“로 또는 그와는 반대로 구상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구상화가“로 불리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고향의 바다에서 받은 인상을 토대로 거기에서 추출한 순수조형에 대한 탐구가 그의 작품의 경향을 결정짓는 주된 요인이었다. 이는 나아가 후기 추상적인 화면을 말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후기 작품의 경우는 서양미술에서의 구상과 추상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실험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는 형상이나 자연으로부터 받은 느낌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대상을 변형, 해체, 조립함으로써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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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색채의 마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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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전혁림의 작품을 논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색채이다. 그는 남도의 찬란한 태양빛 아래 사물의 색을 인지하였다. 그리고 그 느낌을 나타내는데 있어 우리는 전혁림이 인도하는 색을 통하여 대상에 대해서 혹은 자연에 대해서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로써 그는 우리에게 어떤 환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현실을 초월한 꿈을 꾸게 해준다. 그는 분명 자신이 구축한 색을 통한 상상력의 환기작용을 알고 있을 것이며, 최근 작품에서는 더욱더 그러한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최근 작품 중 한국의 풍물, 한국의 환상(코리아 환타지)과 같은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전혁림은 그를 둘러싼 세계와 그의 사고가 만나는 접점으로서 색을 사용하고 있다. 선명한 색채(파랑, 빨강, 노랑, 흰색, 녹색)로 말해지는 그의 작품은 자연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색의 구성이 문제다. 그림의 각 부분에서 독특한 색 처리가 발견되고 그것이 실마리가 되어 다른 부분을 지배한다. 색의 즐거운 조화는 화면을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배합의 원리를 이끌어 낸다. 초기 작품은 미묘한 색채변화를 유도하는 잔 붓질과 어우러져 화려한 화면을 보여주는데 후기 작품으로 가면서 선명한 색채만이 걸러지게 된다.이러한 색상 구사는 사실 우리 전통문화에서 영향을 받은바 적지 않다. 그는 곧잘 민화, 단청 등에서 볼 수 있는 색감에 매료되었다고 얘기한다. 우리의 기억 속에 선명히 자각되어 있는 선명한 색감이 화면에 표출되면서 그의 조형세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채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닌 너무나 친숙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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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 전혁림 全赫林 선생님 약력 1916 - 통영
1929 - 1933년 통영보통학교 및 통영수산학교 졸업
1952 - 2006년 개인전 및 초대전 40여회 (국립현대미술관.뉴욕스페이스 화랑.호암갤러리.조선일보.동아일보.
이영미술관.샘터화랑.경남도립미술관등)
1949 - 196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문교부장관상 수상 및 특선.입선
1937 - 1994년 부산미술전.경남미술연구회전.대한미술전.현대미술초대전.동학혁명 100주년기념전.
백두산실경전.한국근대화가 100선전등 한국미술사의 주요전시에 참여
1952 - 1979년 이중섭.유강열.장윤성.김영교.이윤제.송혜수.성백주.오지호.유영국.윤중식.권옥연.문학진.
박고석.배동신.손동진.이대원.이종무.임직순등과 교류하며 다수의 전시회 참여
[국제전]
2002 - 5 한국 국제아트페어
2000년 한국빛깔의 신비전(프랑스 유네스코 미로미술관)
1995년 일본 동경 국제자유미술전
1994년 서울국제현대미술제(국립현대미술관)
1993년 한일교류전(동경미술관)
1990년 동경 아트페어
1985년 한국현대미술전(북경 중국미술관)
[경력]
통영문화협회 창립 (유치진.유치환.김춘수.김상옥.윤이상등 1948)
경남미술대전 심사위원 (1983)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1984)
경상남도미술대전 대회장(1992.1993)
경남국제조각심포지움 공동대회장(2000)등
[출판]
전혁림(예문사1987)
전혁림작품집(동아일보사 1994)
전혁림(우리미술연구소 1992)
전혁림(이영미술관 2005)등
[수상]
1962년 제5회 부산시문화상 미술창작상
1984년 제1회 충무시문화상
1996년 대한민국문화훈장
2000년 일맥문화상(부사닐맥문화재단)
2004년 월간미술세계 창간20주년문화상등
[주요작품 소장처]
청와대.대법원.국립현대미술관.부산시청.경남도청.통영시청.부산고등법원.창원지방법원.인천지방검찰청.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전혁림 미술관 �아가는 길
자료가 영문 표지판만 있어서 이걸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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