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작품을 아세요?
우근 김 정 희
골목벽화작품을 그리시던 한명 김반석선생님께서 당하신 일이다.
통영에 내려가면서 한글그림에 대해서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나는 내려갔다.
왜냐하면 한글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신다는게 한국에서는 처음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도 처음이기 때문에 그동안 블로그에서만 작품을 감상했었고,
전화로 통화만 했을뿐 프로필에서 본 사진으로는 날카로움이 있었지만,자원봉사를
원하시기에 그리고 선생님께서 직접 그림을 그리시는 모습을 담아오고 싶어서
천리길을 마다하고 내려간 통영이었다.
한명 김반석선생님께서는 그림을 위해서 어느날 다니시던 은행을 그만두시고
그림으로 "나는 오늘부터 화가다"라고 선언을 하신뒤에 지금까지 9번의 전시회를
열었었지만 단 하나의 작품도 돈으로 바꾸지 않으신 분이다.
이런 사실도 통영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세상의 사람들 눈때문에 나를 모르는 곳에서 손님처럼 없는 사람으로 있다가 와야지.
내려가는 차속에 운전을 하면서 그렇게 마음을 다듬고 내려갔다.
살아가다보면 어찌 즐거운 일만 있겠는가!
내내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처음에 김반석선생님께서 말씀하실때에는 여러 사람들을 데려와도 좋다고 하셨다.
팬션을 빌려놓았기 때문에 많이 내려와도 된다고 했으나 내가 주최를 하는것도 아니였고
그래서 그림을 그리시는 화가언니에게 같이 내려가자고 해서 둘만 내려가서 얼마나
다행이 었는지 모른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시장통에 충무식당에서 나오는 숭늉으로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옛날 군청으로 차를 가져가서 보니 선생님께서는 천연물감으로 빛깔을 내고 계셨다.
서울에서 은행근무를 하시는데 통영이 좋다고 하셔서 통영으로 내려오셔서 그림을 그리셨다 한다.
그때 당시에 통영에 물이 귀한것이라면서 물을 아껴야 한다고 하셨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미 몇년전에 물부족 국가가 되어있다.
30일 아침을 먹고 언니를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 실어다주고 동피랑언덕에 주차를 시켰는데
김반석선생님께서 아침을 먼저드시고 올라가셨는데 그림 그리시는데 있으시지 않으시고
최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표정이 심각하시다.
두분다 표정이 너무나 심각해서 접근을 하기가 무서울 정도로 그래서 벤치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께서 오라는 손짓을 하시며 같이 담배 친구를 하자고 하신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오시더니 오늘 그냥 가셔야 되겠다고 하신다.
"선생님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
"아니 왜 그러시는데요?"
어제 그려놓은 작품을 지워 달라고 주인이 그런다고 하시면서 작품 그리던 곳으로 가보라고 하셨다.
김춘수선생님 꽃을 물감으로 지워 놓으셨고 옆에 벽에다가 이 그림 다 지워주시요 주인
이렇게 써져 있었다.
나는 그걸 보는 순간 털썩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화가 언니가 보았다면 눈물을 흘렸을게 분명하니까.
꿈에도 다른 색으로 칠을 해놓았고,생각에도 역시 그렇게 해놓았다.
내가 그러할진데 선생님께서는 어떠하셨을까?
나는 내가 주최가 아니라는것이 우습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다른때 같았으면 동피랑을 뒤집어 버렸을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은 화만 내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인이 없는 옆에 벽에다가 황소 한글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이순신 장군도 백의 종군을 하셨는데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달아 주어서 그렇습니다"
꽃은 통영 시인 김춘수선생님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으니 아래에다가 다시 작품을 만드셔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서 동피랑2길로 올라가는 담벼락에 김춘수선생님 꽃을 다시 그리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낙서와 그림을 어떻게 구분하십니까?
본인에 눈에 들면 작품이고 안들면 낙서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림을 그릴줄은 모르지만 대학시절 동숭동,인사동,경복궁가는길에서 그리고 다른데에서
작품을 많이 보았습니다.
통영시장님께서 동피랑 언덕에 몇번이나 오셨는지 아시나요?
제가 본것만 6번을 다녀가셨습니다.
저는 화가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쓸 소설에 주인공을 화가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시회에 가면 화가선생님들께서 항상 약속이나 한듯이 기다려 주었던 사람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어느날 화랑에도 그런 말이 나왔습니다.
들어서자 마자 "이게 그림이야 낙서야 이런걸 그림이라고 전시까지해?"
낙서와 그림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한명 김반석선생님께 낙서를 한 분도 "다 이그림 지어 주세요 주인"하고 써놓으신걸 보면 그림을 그리시는게
화가선생님이라고 생각은 했나 봅니다.
통영에서 올라와서 저는 이글 먼저 올리려고 위 글을 쓰다가 시장님얼굴,위원장님얼굴,윤국장님,최팀장님,
통영 = 충무, 이순신장군을 떠올리며 참아야지 참아야해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내어야해.
그렇게 꾹꾹 참으며 임시 저장해놓고 오늘에서야 들어 왔습니다.
제가 김형진 위원장님께 약속을 했습니다.
10개의 기사를 내어드리겠다구요.
그런데 지금 기사가 9번째가 되는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통영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편파적이고 억울하게 당해야하는 가슴아픈 사연들이
줄을 서서 해달라고 합니다.
이 글을 올리는것은 사실은 한명 김반석선생님만 이런 일을 당하신게 아닙니다.
동피랑 골목그림을 그리는데 사진기사가 된 제가 가장 쓴 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제 성질도 아시지요?
제가 그렇게 쓴소리를 하는데는 이유가 있어서 입니다.
동피랑에는 아직도 그려야할 공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탑블로거가 아닌 관계로 제블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적어서 원래는 탑블로거이신
어느 선생님을 모시려고 했습니다.
골목그림은 밖에다 그려놓은 것이라서 비가오고 해가 비치면 바람에게 하늘로 보내야 하기에
제가 감히 신이 내린 손이라고 생각하는 선생님께서 그림을 담아 주시길 지금도 바라고 그렇게 할 겁니다.
없어지는 작품을 보관하는 방법으로 사진이라는 대체 방법이 있어서 저는 너무 좋습니다.
그현장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어느날 제 시가되고,소설속에 등장 할 겁니다.
낙서와 그림을 구분 못하시는 분들이 또 나오시면 안되기에 이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식적인 공모전 인줄 알았다면 아마 저도 그렸을 겁니다.
상이 문제가 아니라 없어지는 그림이기에 작품이 아닌 낙서보다는 정성을 쏟아서 나도 골목에 색칠을 하고 왔을겁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 더 동피랑 이야기가 빛이나는 그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한산신문에 김상현 기자님께 부탁을 드려서 보내주셨기에 제가 이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셔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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