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 창작 한마당/사는 이야기

내가 그려놓은 지도

만년지기 우근 2008. 1. 15. 07:25

내가 그려놓은 지도를 옮기면서

                                                 우근 김  정  희

 

 

내가 20대 시절 써놓은 지도를 그대로 옮기는데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찢어져서 더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학교시절 소설공부를 할때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하셨을때는 그 마음이 어떤것인지 몰랐다.

글이 나오고 안 나오고만 있는줄 알았다.

어제는 내가 많이도 지쳤었다.

다른이에게 아픔을 드러내라고 해야했기에 그리고 듣기싫어도 들어야했기에 ---

그래서 나는 나를 모르는 분과 긴 통화를 했다.

나를 아는 사람과 통화를 했다면 처음부터 울먹이다가 마음만 아프게하고 말도 안하고 끊어버릴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1979년부터 2008년이 되어보니 30년이라는 긴긴 세월이 흘렀다.

인연이란 있는걸까? 만드는 걸까?

다시 만난것도 벌써 3년째인데 그냥 그런 이야기는 처음 만나던 날 주절 주절 떠들고

그리고 띠엄 띠엄 이지만 끊기지는  않았었다.

나는 작년을 어렵지만 행복했다고 말하고 자유하였다고 말하고 쓰고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상황은 말이 아니지만 나는 지금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어서 그리고 자유하여서 너무나 좋다.

부모가 되어서 나를 바라 본다.

누구도 바라보았다.

혹 누군가에의해서 자유를 빼앗겨 버리고 끌려간다고 생각하는 삶은 며칠은 살 수 있으리라.

지금 나도 나이가 몇인데 부모님은 내가 아직도 유치원쯤 다니는 아이로 보이는지 모른다.

30년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머리가 심하게 요동을 친다.

 

전주 비빕밥을 점심으로 먹으며 넘어가지 않지만 꾸역 꾸역 집어넣었다.

그리고 밖에나가 커피를 마시며 나는 내 이야기를 부모가 누구에게 말하는걸 옆에서 들었다.

유치원생이라서 나를 내가 이야기하지 못하고 엄마가 대신 비구상으로 들어야했다.

아니 듣지 않으려고 했다.

고속버스에 오르는 엄마 뒷모습을 나는 보기가 싫었다.

가슴을 많이도 아프게도 했지만 나는 더 많이 아프다.

먹먹하기에 일부러 떨어져서 보았다.

내가 이렇게도 살아가면서 숨을 쉬고 호흡을 한다는게 그래서 호주머니를 뒤졌더니 없다.

다른향으로 피우며 삭혀야해 사람들이 많으니까?

사진을 2개 찍었다. 그래 지금을 남기자.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이사진을 보면 그때의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겠지.

 

차가 내 시야에서 떠나고 전화를 하고 나는 기다리다 사진을 2컷 찍고 주차장으로 간다.

소월길을 지나 시청에서 내려주고 광화문을 거쳐서 아름다운길 걷고싶은 길 창경궁 돌담길을 지나서  

성대를 지나서 구비구비 달동네 나는 집으로 왔다.

누가 정해 놓았었을까?

아니면 이미 질기디 질긴 누군가에의해 운명지어져 버렸던 정해져버렸던 일이 였을까?

오면서 많이 고개를 넘어왔던 오음리의 이야기를 다시 상기해 본다.

다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눈내리던 오음리고개에서 살아남아 지금도 호흡을하고 있다.

 

세상에 태어아사 부모에게 아니 어머니에게 한번도 아니오를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나는 1981년의 이문동 사건이 갑자기 떠오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그 순간과 누구의 있을 수 없는 일도 그만한 사건이었으리라.

알기만한다. 아니 얼굴은 안다. 어쩌면 마음도 누구보다는 더 많이 알것이다.

그렇다.환경도 누구보다 더 많이 안다. 그 시절도 안다.

그리고 모른다. 무엇을 안다고 표현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냥 보기만 했지. 아니 보여준대로만 보았지.

그리고 어제 이야기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화장실로 바로 직행을 한다.

가슴에 묻고있으면 병나 그냥 있으면 안돼.

그리고 긴 전화를 했다.

아, 피곤에 지쳐서 잠이 들었다가 기력은 없지만 일어나서 지도를 다시 들었다.

남동생의 탄생이 나온다.

그때는 살아있었는데 지금 벌써 11년째라고 엄마는 울먹이며 눈물을 흘리며 또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럴때마다 짜증을 부렸다.

다 모두다 피해자들 뿐이고 상처투성이들이 되어버려서 조금만건드려도 눈물이 흐를것 같다.

긴 시간을 내내 흑흑흑하면서 울고 싶다.

아니 외할머니 품에서 엉엉하면서 때를 쓰고 싶다.

아니 그냥 이대로 접어버리고 싶다.

그래 그렇게 하고 싶다.

 

그 마음이 전해졌나. 대구에서 언제내려오느냐고 전화가 왔다.

이럴때 나를 찾아주는 분에게 나는 무어라 말해야 하는가.

나를 위하는건 무언가.

 

  

나는 이렇게 엄마를 보냈다.

그게 나적인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누군가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돌아가시면 후회할것이라고 그래도 천성인지 본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닌것을 아니라고 해야지 그게 부모이니까? 자식이니까? 나이니까? 그리고 누구이니까?

그래서 얼렁뚱땅 넘어가야 옳으냐고 지금 이시간 다시 2장의 사진을 다시 올리면서 자신에게 물어본다.

 

엄마를 보내고 나는 며칠을 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대단한 광풍과 위력으로 난도질 당한 나를 하나씩 하나씩 다시 모자이크 해야 한다.

결국 누가 무어라해도 나는 나의 길을 다시 걸어간다.

며칠동안 수습으로 되어질지 모르겠으나 주어지고 떨어져 나가고 흔들어놓은 나의 잔영들이

웃기도하고 진한 눈물도 보이고 비가내리고 눈이 쏟아져 내리는 것들이 사그라지고 또 나타난다.

 

사는게 그런거야 살아있다는 바로 그거야 그리고도 주어져버렸다면 또 다시 그 길로 들어서리라.

인생이라는 굴레로 다시 한번 뒤집어쓰기를 하고 내 얼굴을 나름대로 화장을 하고 그러고도 모자라면

원하는 나를 또 끄집어도 내어서 보여주어야 할것이다.

 

내가 그려놓은 지도에 그지도에서 나는 다시 길을 걸어 간다.

이제 다시 시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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