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신선송과 나
우근 김 정 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시절 아마 1984년으로 생각한다.
학부는 경희대 철학과를 나왔다.
외대에 가서보니 서양지는 있는데 동양어대에는 학지가 없었다.
내가 강력하게 건의를 했다.
동방지 창간호 서시를 미당서정주선생님께 받자고 했다.
아무도 갈 사람이 없다.
그러면 내가 해야지.
미당선생님 댁으로 전화를 드렸다.
미당선생님께서 흔쾌하게 수락하셨는데 30분만 시간을 내 주실 수 있단다.
나는 말했다.
제가 선생님께 먼저 30분을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는데요.
그러면 사오십분을 내 주시겠단다.
새로 조성된 예술인 마을에 미당서정주선생님댁이 있었다.
전화상으로 시간이 없다고 하셔서 한시간만 이야기해야지 했다.
미당서정주선생님을 만나서 인사를 하고 전화로 말씀드린것처럼 저에게 먼저 시간을 주십시요했다.
시제는 동방신선송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독립하여 21세기에는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동방지 그것도 창간호입니다.
미당선생님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악수를 청했다.
신선에 대해 여러가지 말씀을 하셨고 나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역사에 남겨질 사람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느냐 물었다.
미당선생님께서는 정말로 마음이 뜨거우신 분으로 기억한다.
이야기 도중에 비서분께 시간약속을 다음날로 미루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긴 시간을 이야기했다.
결국 지금은 그 일로 미당 서정주선생님이 친일파라고 당하고 계신다.
미당 서정주선생님께서 나에게 부탁하셨다.
이 원본을 갖고 있다가 그 일이 일어나면 동방신선송을 보여주라고 말씀하셨다.
미당선생님께서 술을 좋아하시는 건 다 잘아실거라 생각한다.
오후에 갔는데 잡으시면서 술을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말했다.
저녁시간에 예약이 잡혀있어서 안된다고 미당선생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실 수 있지만
저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동방지 창간호때문에 여러 문학자선생님들의 원고를 받는데 많은 힘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당선생님께서 가장 먼저 시간을 내주셨고 4시간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웠다.
어딘가에 내 일기장이 있을텐데 미당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는 내가 쓰고 있는 "동방"에서 자세히
쓰기로 한다.
경제만 일등이 아닌 철학과 문학이 충만하여 사람이 살아가는데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철학을 전공하고 국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였으나 생명공학쪽으로 사업을하며
24년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개발한 아이템과 동방대학원대학교 산업협력단과 공동개발을 추진하려고 한다.
2011년은 동방대학원대학교 새로운 발전을 기원한다.
정상옥총장님께서 미당 서정주선생님 동방신성송을 동방신보에 실리게 해주셔서
깊이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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