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한마당

"성훈 따주기" 건강신서는 조상의 슬기를 모은 치료법

만년지기 우근 2011. 3. 13. 05:14

 

성훈 따주기 건강신서 조상의 슬기를 모은 치료법

                                                                                     우근 김  정  희  

 

성훈따주기 책을 몇번이나 읽었느냐고 서울부항기 이인재사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몇번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서울부항기 이인재사장님은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시는 분이다.

자신이 책을 성훈따주기 만큼 많이 읽어 본 책이 없는데

10번을 읽었다 그것도 정독으로만 나는 비웃으면서 말했다.

열번밖에 안읽고 무슨책을 읽었다 하느냐

나는 최소한 2~3백번은 읽어야 책을 읽었다 말한다.

성훈따주기 아마 천번은 읽었을 걸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 먹는다.

나는 별로 욕심을 챙기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책욕심은 아주 많이 부린다.

예를 들어 대학원시절 "동방"이라는 창간호를 내면서

나는 돈으로 받지 않고 출판사의 책으로 받았다.

 

동방은 지금도 계속 출판이 되어진다.

학교에서 발행하는 책이니까.

내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집안에 다 버려도 이 책은 가지고 있으라는 이야기를 한다.

성훈따주기 책은 다시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다.

한의원에서는 필독으로 다 가지고 있는데

병원에서도 가지고 있는 필독책으로 만들고 싶다.

 

돌아가신 고성훈스님의 뜻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살아 생전 나를 끔찍히도 아껴주시고 챙겨주셨던 성훈스님이다.

고성훈스님 살아 생전 말씀 "경자야,너는 사업은 절대로 하지 말아라.

너는 꼭 학교선생님을 해야 한다." 나하고 약속해야 한다시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런데 삶이 요지경인지라 2년을 생명공학쪽에서 일하고 있으니 운명을 훤히 내다보셨던 스님임을 내가 알고 있다.

고성훈 스님은 외가인 창평면 유천리에서 태어나셨고 나도 유천에서 태어났다.

한때 유천리에서 총각들이 15명이 다 스님이 되겠다고 해서 동네가 울음 바다가 되었다.

그 총각들을 설득시켜서 집안에 대를 이어가게 하시고 대표로 고성훈스님이 청화스님 큰상자가 되었다.

 

고성훈스님은 항상 공부하셨고 늘 글을 쓰셨다.

그래서 성훈따주기 말고도 책을 많이 남기셨다.

성훈따주기가 세계인의 필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출판사에서 나오는 성훈따주기는 수효사라는 절에서 출판사도 같이 하고 있다.

어제 점심때 무구스님께 전화를 했다.

글을 쓰고 있는데 서울부항기 이인재사장님께서 지금 연대앞인데

수효사 주지 무구스님을 뵙고

성훈따주기와 부항을 어린이들이 볼 수있게

만화로 만들자고 한다.

나는 30여개의 카페에 글을 올려주고 있는데

그중에 벌침카페에 따주기 부항 내 카테고리가 있다.

카페회원이 350명일때 들어가서 지금은 2000명이 넘는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줄을 칠정도로 "성훈 따주기"를 읽는다.

물론 이책을 누군가 필요 하다고 해서 주었다.

 

 

우리나라 100년전만 해도 병원이 몇군데나 있었을까.

한번 생각을 해보시라 말하고 싶다.

그 시절에도 아프고 병든 사람이 있었고

병을 치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의원 말고도 많았다.

외할머니만 해도 내가 아프면 우선 마음부터 치료를 해주셨다.

 

사람의 인생이란 바로 생生 로老 병病 사死 다. 

 

 

자신이 어에서 왔는지 생각 해 보라.

과학 의학의 발전으로 말하는 DNA를 누가 주는가

바로 우리 선조들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있을까?

예수님은 어떤 DNA일까?

동정녀 마리아 DNA만 가졌을까?

 

 

내가 말하는 건

뿌리를 이야기 한다.

한때 우리는 백의민족이고 혈통이 어떻고

지금은 다 문화시대이고

역사책을 읽어 보면 언제나 다 문화 민족이였다.

 

 

 

 

 

 

랫만에 들려본 수효사7층에 고성훈스님이 계신다.

스님 "나 어제 밤을 꼴딱 새서요. 다리가 말을 안들어서 인사 못들여요."

 

경자야 이제는 다 풀어라

꿈에 나타나시더니 정말로 수효사를 가게 된다

 

 

수효사는 빌딩절이다.

8층에 부처님이 계신다.

어제보니 음력으로 2월8일이다.

약사재일이다.

어! 오늘이 김종구선생님 생일이네!!!

무구스님께서 그래 하신다.

시간을 보니 병원 퇴근 시간이라 전화를 안했다.

월요일 날 전화 해서 맛있는 것 처음처럼이랑하고

뭘 먹지???

 

 

서울 부항기 이인재사장님 검은 비닐 봉다리에 책이 들어 있다.

우리는 스님들 이야기를 한다.

"나는 어느 큰스님이 가면 아들이라고 해."

"머리 깍으라고 해."

" 나는 삭발을 한번 했잖아."

"머리 삭발하면 뭐해. 머리야 기르면 되지만 마음을 삭발 해야지 삭발이지."

 

 

 

고성훈스님 불佛 자 3000자를 처음 쓰실 때

내가 낙관을 찍고 봉투에 숫자를 앉은 자리에서 다 썼다.

한번 해 보시라.

1에서 3000까지를 앉은 자리에서 쓰기가 얼마나 힘든지

혹 써보신 분이 계시다면 나는 그 분을 인정한다.

 

 

수효사를 들어가기전에 카페에서

맥주를 한병씩 먹었다.

술 친구 서울부항기 이인재사장님

치우천황 아들은 잘 크고 있느냐 묻는다.

 

"크기는 잘 크는데 먹일게 없네?"

 

우리 고성훈 스님은 살아 생전 정말  성질이 까탈스럽고 오신채를 지키신다고 식당에 가시지를 못해서 항상 광주에 오시면 우리집에서 공양을 하셨다.

성훈스님 오신다고 하면 평균50명씩 밥을 먹던 우리집은 300명도 넘는 신도들을 챙겨야 했다.

성훈스님 우리집 밥상을 보시고 절간 같으시다고 공양을 한그릇도 더 드실때도 있었다.

불佛자를 하루종일 쓰셔야 하기에 우리집에서 항상 점심공양을 하셨다.

 

 

나는 어제 저녁부터 거의 빈속이라 맛있는 걸 먹자고 들어가서 생태탕을 시켜서 막걸리 3병을 마시고 이차를 간다.

 

 

이집 주인이 특별히 주신 써비스 고기다.

누룽지가 정말 맛이 있었는데!!!

사진은 없다.

 

TV를 안보는 나는 음식점에서 일본 스나미를 찍으면서 권선생님은 무사한지 모르겠다.

메일을 보냈는데 연락이 없네.

오늘은 전화를 해야겠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이차잡은 그 유명한 오장동 냉면과 수육에 처음처럼을 맛있게 잘 먹었다.

 

 

마음이 그러는지 술이 아직 ~~~.

사진이 그렇다.

수효사는 워낙 유명하고 큰 절이니까.

다음지도에도 나올것이다.

수효사만 있는게 아니다.

남양주에 백천사도 있고 전국적으로 여러군데 절이 있는데 ~~~.

 

 

수효사는 복지법인이다.

내가 여기서 사회복지2급자격증과 요양보호사 따주기1급 자격증 등등 여러가지 자격증들이 있다.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 물어서 자원봉사용 자격증이지.

시흥에서 3년간 자원봉사했잖아.

목감동에서도 했지.

 

 

성훈스님 내가 가고 나면 책만 남을거라고 하시더니 정말 책만 남겠다.

 

네티즌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초록이 서명하러가기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donation/view?id=104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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