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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동해 - 논골담길 묵호등대 미워도 다시한번 촬영장소

만년지기 우근 2014. 4. 26. 10:35

 

 

꿈꾸는 안묵호 - 논골담길 묵호등대에서 본 안묵호 수평선 추억

                                                                                                                   우근 김  정  희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 호를 보니 주소록에 없는 번호다.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잘 있었어요?

몇년만에 온 전화인지 모르겠다.

2월에 부산을 1박2일 내려가면서 전화를 할까? 말까?

많이도 망설였고 일정상 전화를 하지 못했는데 내내 마음에 부담이 많았다.

홍순씨는 대학시절 만나서 지금까지 연락이 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세월을 한번에 이야기로 끝낸다.

"영주 결혼한거 알아요?"

"아니요?"

" 진경이가 소식을 전해 주어서 알고 있는데 결혼을 했데요."

"그래요."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묵호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안묵호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어떻게 되었든지 대학교3학년 겨울방학 45일 정도를 안묵호에서 살았다.

묵호를 지도에서 보니 강릉보다는 더 직선 거리로 더 가까워서 가보니

강릉을 지나서 버스를 타고 한참동안 멀미나는 길을 돌아 돌아갔던 묵호다.

묵호에서 내려서 바다가 보이는 수산시장쪽으로 걸어갔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 가득했고 묵호시장에서 맛있는 걸 찾으니

산오징어를 잘게 썰어서 밥위에 올려준다.

오징어가 국수처럼 느껴졌고 쫄깃한게 너무나 맛있었다.

회로 먹는 줄만 알았는데 밥까지 해결이 된다.

이름을 물어보니 물회라고 했다.

물회는 지금도 그때보다 더 맛있게 먹은 물회가 없다.

왜 물회냐고 물었다.

회에 물을 타서 물회라고 했다.

무뚝뚝하고 경상도 말과 이북말이 같이 섞인 묵호말씨는

나중에 보니 강원도 말씨였다.

소주를 시켰다.

소주 안주로도 산오징어 회는 최고였다.

동해바다 수평선을 바라다 볼 수 있는 집이 어디가면 있겠느냐고 물었다.

안묵호를 이야기 한다.

안묵호에 가면 가게집이 있는데 그 집이 비어 있다는 거다.

큰바위가 하나 나오고 더 들어가면 산위로 집이 몇집 있다.

가게에 들어가서 물었더니 방이 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이 빈 으로 왔다고 말했다.

주인집에서 아이들이 있는데 바다가 보이는 방을 보여준다.

부엌은 같이 쓰면 된다고 한다.

안묵호는 그렇게 인연이 되어서 45일 가량을 살아 보았다.

그때 갈때도 묵호는 "미워도 다시한번" 촬영지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버스에 올랐다.

어디를 가든지 사람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미워도 다시한번을 볼때도 문희는 아이와 헤어져 혼자서 묵호로 왔다.

안묵호에서 살면서 덕장도 보고 큰가마솥에 끓여내는 문어도 보았다.

겨울 김장김치에 생태가 들어가서 먹어보니 얼마나 시원한지

김치항아리를 많이 비우고 올라왔다.

겨울 추위를 많이 타는데 안묵호 겨울바다에서는 많은 시간을

바위에 있는 많은 해초들과 성게를 따면서 추운줄 몰랐다.

그 겨울은 나에게 많은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했고

다른 인생길을 걸어가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후로 안묵호는 내내 그리운 마음의 노래였다.

긴 여행을 그렇게 하고 싶다.

몇년 만에 가본 안묵호는 다시 나를 생각하게 한다.

미워도 다시한번 영화를 생각해 본다.

지금 시대에는 맞는지 맞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가보니 묵호등대가 보인다.

안묵호를 차로 먼저 가보니 안묵호 내가 바다를 다녔던 곳에는

2개나 큰 건물이 서있고 옛날은 추억으로 남겨야 했다.

큰바위는 지금은 까막바위라고 불리우고 있다.

까막바위에는 갈매기들이 쉼터라고 말하고 싶다.

까막바위 위에는 갈매기들이 오늘도 자리를 차지하고 수평선을 바라다 보고 있다.

묵호등대 앞에서 논골담길 해설사님 이야기를 듣고

먼저 묵호등대로 올라갔다.

묵호등대는 따로 포스팅하기로 한다.

 

 

 

안묵호 빨간등대가 먼저 반겨준다.

문어등대같아 보인다.

 

 

 

 

당겨보니 문어가 아닐거 같다.

묵호하면 명태와 오징어 문어가 생각난다.

 

 

 

 

등대를 지나고 있는 갈매기 한마리가 자유를 이야기하는거 같다.

수평선과 함께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슴은 마구 요동을 친다.

동해바다 수평선은 바로 꿈을 키워준다.

 

 

 

 

바닷가에 세워져 있는 건물이 하나로 보이는데

가보니 2개의 건물이다.

그곳에서 한 겨울을 바다가 친구되어 함께 놀았다.

 

 

 

 

어달리활어센타가 보인다.

 

 

 

 

언젠가 다시 한번 가보아야 겠지만

여기쯤에서 찾으면 나올거 같다.

필림 카메라로 담았던 사진들도 있다.

블로그를 하면서 옛날 사진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기억에는 없지만 사진은 그 시절을 이야기 해준다.

또 사진을 보면 그때 시간으로 돌아간다.

 

 

 

 

갈매기 한마리를 담아 본다.

어쩌면 자유를 향하여 하늘을 날고 있는지 모르겠다.

 

 

 

 

묵호등대 담화마을 논골담길 스토리텔러 김승수님을 담아 본다.

나중에 김승수님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동해문화원은 남같지 않다.

 

 

 

논골담길 해양문화공간을 담아 본다.

 

 

 

 

1981년 겨울방학때 갔던 안묵호는 45일간을 살았다.

그때 묵호는 배에서 많은 고기들을 잡았다.

특히 문어가 많이 잡혔던 걸로 기억한다.

문어를 많이 잡은 날은 잔치가 벌어졌다.

지금도 문어가 비쌌지만 그때는 더 비싸지 않았을까?

 

 

 

 

바다는 생각보다는 많은 걸 가져다 주는 걸 보았다.

내내 일만 해야 했다.

농촌도 일만 한다고 하지만 바다도 그랬다.

 

 

 

 

어민들의 꿈은 만선이라고 생각한다.

 

 

 

 

묵호등대는 바다에 있는 등대가 아니다.

1963년 등대불을 밝혔다.

 

 

 

 

동트는 강원 동해시 관광안내도와 주요 관광지를 담아 본다.

 

 

 

묵호등대는 해발 고도 67미터라고 하는데 더 높아 보인다.

백두대간 두타산과 청옥산 동해시를 조망 할 수 있다.

 

 

 

 

묵호등대공원 안내를 담아 본다.

 

 

 

 

동해바다 수평선을 담아 본다.

전선줄이 아니라 바다를 가르는 선이라고 생각해 본다.

묵호에도 바다를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도 좋다.

 

 

 

 

묵호등대광장에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시가 적혀져 있다.

보는 걸로도 시원하다.

 

 

 

묵호등대에서 본 묵호 집들과 함께 철썩이는 바다가

24시간 파도소리를 처얼썩하고 노래하고 있다.

 

 

 

동해바다 수평선을 바라다 본다.

가슴이 뛰고 있다.

누구에게 소식이 올거 같다.

남다른 자유를 가진 사람은 어디에서 꿈을 꾸고 있을까?

동해바다 수평선이 주는 기운을 닮아 큰 사람이 나오기를 바란다.

 

 

 

묵호등대를 담아 본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누군가의 꿈은 언젠가 이루어진다.

 

 

사진제공: 팰콘 김대영님

 

안묵호 까막바위에 대한 설화를 소개 한다.

세월호 참사로 마음이 먹먹하여 오랫만에 정독으로 동해문화원에서 발행한

"이야기가 있는 묵호"를 밤을 새우며 읽었다.

수없이 많은 약속을 까먹고 살아가는 누군가가 읽었으면 한다.

진도 앞바다도 까막바위 같이 약속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자신에게 다짐해 본다. 

 

 

묵호에서 까막바위와 문어상에는 동해시 초대문화 회징을 역임하신

김시래 ( 1923 -2008)님의 설화발굴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 중엽 왜구들이 수시로 동해안 일대에 출몰해서 식량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농락하고 반항하면 칼로 살상했다.

주민들은 이들에 대적할 힘도 무기도 없고 관청은 왜구들이 언제 출몰할지 몰라 병력도 주둔 시킬 수 없었다.

그 당시 각 마을은 어른들 중에 한분을 촌장으로 천거했다.

촌장은 마을 대소사를 정당하게 처리하곤 했으나 왜구 문제만은 어쩔도리가 없다.

어느날 어달 마을에 왜구가 침략하여 노략질하고 한 부녀자를 농락하고 죽이려하자 촌장이 그들 앞에 섰다.

"이놈들! 선량하고 힘없는 주민들을 더는 괴롭히지 마라.

정 너희가 저 부녀자를 죽이려 한다면 이 마을 촌장인 내가 대신 죽어주마.

단, 너희의 더러운 칼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맞겠다."

이말을 마친 촌장은 까막바위 앞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때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졌다.

겁먹은 왜구들은 배를 타고 도망가는데 까막바위 앞을 지나가려하자

커다란 삼각파도에 밀려 배가 난파되었다.

왜구들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큰 문어가 나타나 먹물을  쏘아대고 어디선가 나타난 까마귀 떼가 머리를 쪼아댔다.

왜구들 모두가 까막바위 앞에서 물귀신이 되었다.

이사건 이후 왜구들이 출몰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매년 촌장 제사날이 되면 까막바위 앞에 십시일반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제사는 흐지부지 되었다.

어느날 한 어부가 까막바위 아래서 문어를 잡으려하자 까마귀 떼가 몰려와 위협을 했다.

촌장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다.

촌장은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왜구가 출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냐? 약속을 까먹게!" 라는 속담이 이때부터 생겼다.

출처 : 이야기가 있는 묵호

 

 

 

묵호등대와 묵호역 표지판이 보인다.

 

 

 

등대100주년 기념 공모작품전을 담아 본다.

 

 

 

 

안묵호에 살면서 가장 무서운게 바로 파랑주의보 였다.

파도가 울어대는데 한잠도 못잤던 겨울밤이 다시 생각난다.

 

 

 

 

장동건 고소영주연 영화  지금은 부부가 되어서 살고 있는데

혹시 이영화를 하면서 동기가 되었을까?

궁금하다.

연풍연가 제목도 좋다.

 

 

 

마리 이야기까지 여러 영화를 촬영했던 소재가 된

아름다운 묵호등대다.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

주소 : 강원도 동해시 묵호진동 2 - 215

전화 : 033 - 531 - 3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