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1]외할머니의 추억
우근 김 정 희
"할머니! 할머니!"
요단강 건너면 어디야?
강은 아주 아주 길어?
방안에서는 겨울의 고구마가 부젖가락 위에서 이글거리고
화로안에서는 밤이 펑펑 소리를 내며 소롯히 익어갈 무렵의 저녁은 사라져버린
할머니의 아스라한 향수가 외손녀인 수화에 의해 생생하게 피어나는 꽃으로,
혹은 증오로, 오열로 뒤 범벅이 되었다.
"할머니! 할머니!" 하고 외할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조르는 것이다.
좀체로 말이 없으신 외할머니는 그 이야기만 나오면 펄쩍 화를 내시다가도
금방 한숨을 땅이 꺼지도록 쉬시면서 손녀의 끈질긴 물음에 대한 궁여지책의 답변도
모른채 멍하니 천정을 응시하시다가 말씀을 하신다.
"왜? 그것이 너한테 그렇게도 궁금 하더냐?"
"응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땅에 묻히실때 눈물을 흘리시면서 울었잖아?
그때 할머니 눈물방울을 내가 다 봤는데 뭐"
할아버지를 태우고 덜덜거리던 군용차에 엄마, 아빠와 수화 셋이서 부르던
아니 엄마와 아빠가 부르시던 장송곡이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는지
방학때가 되어 올때마다 추운 겨울이 되어 흰눈이 세상을 온통 하얗게 하얗게
물들일 무렵이면 되새김질하는 동물에 회로를 빌었는지 수화는 호롱불 아래서
외할머니의 한숨을 즐기는 버릇이 생겼다.
한스런 큰숨을 들이키신다. 아니 내쉬고 계신다.
호롱불이 깜박거리며 필름처럼 스쳐서 지나가고 냄새는 그으름이 되어서 하늘로 하늘로 올라간다.
외할머니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수화는 할머니의 고통과는 무관하게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교회당의 노래를 읊조린다.
"몇일후 몇일후 요단강 건너서 만나리 ---"
더 이상은 모른다. 가사의 내용이 올바른 것인지는 더더욱 알길이 없다.
화로속의 장작 불빛이 활활 타오를때면 태양은 뒷모습의 마지막을 안개처럼 뿌옇게 흐린채
밤이라는 별에 그만 그만 손을 들고 만다.
마치 소싸움에서 패배한 소가 뒤꽁무늬를 빼고 달아나듯이, 외할머니의 굳게 닫힌 입술이 움직이시기 시작하자
수화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귀를 외할머니의 입에 가까이 가져가 할머니의 눈을 보며 가까히 다가가서
할머니의 숨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외할머니는 "너, 그때가 몇살인줄 아느냐?"
"그럼 알지 할머니는 내가 왜 몰라 내가 세살때 였잖아 오늘처럼 눈이 펑펑 쏟아지고
바람까지 쌩쌩쌩하고 불었는걸, 나는 손을 호호 불었어"
엄마,아빠 나 셋이서 군인차 타고 할머니한테 왔었잖아. 할머니, 할머니는 그것도 생각안나?
정말로 몰라서 그래.응,--- 그리고 생각나는거 또 있다.
시골 사람들이 몇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들 나와서 쯧쯧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할아버지는 추운줄도 모르고 나무속에 들어가 잠을 잤잖아 아니 돌아가셨잖아"
잔서리 처럼 일렁이는 과거라는 추억을 더듬던 수화의 외할머니는 붓대신으로 손에 곰방대에 봉초담배를 꺼내시며
만드시고 성냥으로 불을 부치고 담배 연기가 시간을 역류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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