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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2] 성씨가 다른 외손녀의 괴로움

만년지기 우근 2007. 10. 25. 00:45

 

 

 

[동방2] 성씨가 다른 외손녀의 괴로움

                                                                   우근 김  정  희

 

지금 창밖에는 겨울비가 스산하게 내리고 푸근한 과거는

수화를 어제로 머나먼 과거의 시간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비는 그대로의 모습인 얼굴을 드러내고 웃을때 하늘가엔 외할머니의

눈물이 하없이 구천을 헤메다가 그 눈물은 강이 되었고,바다를 이루었다.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갈매기 한마리 날개를 푸닥거리며 더이상 비상할 수 없음에

목마른 갈망으로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

갈곳이 없어서 쏟아져 버린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은 인간들 기억속에서 지워진, 없어져버린 사람이라고들 말한다.

잊혀진 사람 그러나 외할머니는 인간중에서 그래도 가장 불행한 사람이 아님에는 틀림이 없다고

자위하며 수화는 그녀의 고개를 끄덕인다.

 

독백처럼 일어나는 고독,외롬,슬픔,애환,기쁨이 그녀를 엄습할때마다 생각해내는 사람은 다름아닌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기억은 그녀가 행,불행을 알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였을 것이다.

그전의 외할머니와는 또 다른 외할머니의 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불쌍한 사람이었다.

외할머니는 그러나 영원히 불행하지는 않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수화 그녀가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그녀의 곁에 숨쉴 것이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의 웃음,눈물 화내시는 모습과 함께 새벽녘까지 호롱불 밑에서 한지로 엮어진

책장을 넘기는 소리까지도 생생하고 선명하리 만치 여유를 부리고있는 수화 그녀의 뇌리속에

박혀 있는 영원히 퇴색하지 않는 사실적인 영상이기에 ---.

"겨울비 내리던날 그대 떠나갔네 ---"

FM에서 흘러나온 "겨울비"라는 비의 노래가 수화 그녀를 더욱더 옛날로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으려

고집을 부린다.

 

정겨움이 왈칵 수화의 가슴에 와 닿을때 이럴때면 갑자기 쓰고픈 욕망으로 아니

끄적거리지 않으면 태산을 갖다 준다해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것 같은 심정으로

감성과 예지를 총 집합시켜 놓고 써 내려 간다.

몇줄 써내려 가다가는 북북 찧어버리고 그렇게 몇번을 거듭하다가 포기해 버리는 습성을 가진 수화

마음과는 달리 글자는 수화 그녀를 비관자로 만든다. 이 비참함.

수화는 언어보다 더 정확한 건 생각이다.

데카르트를 말하지 않아도 관념적으로 알수밖에

그생각들로 엮어진 그녀의 통념을 깨어나지 못했던 향내를 기억 해 낸다.

어느사이 외할머니는 그녀의 숨결보다 가늘고 세차게 옆에 와 잠자고 있는 수화의 의식을 두드린다.

수화의 외가는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동네는 삼면이 산으로 덮혀 있어서

마을 전체가 高씨네만 모여서 사는 집성촌이다.

다른 성씨를 갖은 사람은 소외아닌 소외를 당해야 했다.

 

한마을이 다 한식구였고 얼기설기 친척인 유천리는 자작일촌이라는 말이 맞을것이다. 

유천리는 마을 일들이 아니지 모든것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져 나가는것 처럼 보인다.

수화의 가장 큰 고민은 누가 " 니아버지 성이 뭐냐" 라든가 "니그 아버지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는 물음이였다.

모를리 없건만 짖궂은 아제는 동네아이들과 놀고있는 수화를 볼적마다 "수화야 느그 아버지 이름이 뭣이냐" 해서

대답을 안하면 애비이름도 모르는 쌍놈중에서도 제일나쁘다는 호로자식으로 낙인 찍히는 것이고 말을 하면

놀림감이 되어 싫었고 말하지 않으면 호로자식이 되니, 수화는 죽는것보다 싫어 할수없이 악다구니를 쓰며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도록 "김주만이요"하면 아니나 다를까.

"아니 가마니가 더좋겠다 주마니가 뭐시다냐? 기왕이면 큰 가마니라고 이름을 바꾸라고 그러거라,

그리고 김씨가 성이여, 김씨는 쌍놈 인거여" 하면서 수화의 약을 바짝바짝 올리는 것이였다.

 

이럴때 마다 수화는 "왜 우리아빠가 가마니야 가마니도 아니고 주머니도 아닌 김주만이란 말이야"하고

펄쩍 펄쩍 뛰면서 " 高씨만 양반인줄알아. 우리 金씨도 양반이야 ~~~. 아니야 우리는 양반이 아니라 왕족이야. 경주김씨이니까."

이런 그녀의 모습에 못이기는 채

" 응, 그려 느그 아버지가 양반이라고~? 아닐 것인디 "

수화의 눈은 여지없이 아제의 눈과 정면충돌을 시작한다.

씩씩거리며 가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울기는 싫다.

아제는 묘한 웃음 한번 던지고는 줄 행랑을 놓는다.

수화가 먼저 돌아서는 일은 없으니까.

그러나 아이들과 노는 일도 더 이상은 계속 할 수 는 없다.

수화 혼자 돌아설 때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이런 장난스런 말들에 노골적인 화를 내야 하고 그런 언어의 나열을 인사처럼 들어야 되는지 그들 앞에서 왜...

그들은 수화 그녀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심심해지면 팽겨치는 어른들의 입이 동냥치 만치 싫었다.

수화는 그때마다 어른들에게 입이 다물어 지도록 무한을 줘버려야 겠는데 도저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조금은 미웠다.

원망스럽기 까지 한 적도 있었다.

"왜 우리 아빠는 정말로 고씨가 아니고 김씨지? 다른 아이들 아빠는 다 고씨 인데 말이야.

우리 아빠도 다른애들 아빠 처럼 고씨로 성을 바꾸면 안되나. 고주만.

그러다가 그녀는 고개를 젖는다. 고주만 보다는 김주만이 어울리고 고수화 보다는 김수화가 예뻤다."

이럴때 아빠라도 있으면 " 아빠 나는 왜 김가라는 성을 가지고 있어? 다른 아이들은 다 고씨 여서 나를 놀린단 말이야!"

해보겠지만 아빠도 엄마 앞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없는 아빠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밉기까지 했다.

아빠는 어디에 갔을까.

그녀가 날마다 보고 싶어도 없는 아빠.

수화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아빠는 먼나라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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