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 창작 한마당/사는 이야기

하얀 목련 1

만년지기 우근 2008. 6. 18. 12:12

 

 

 

 

하얀 목련

                   우근 김  정  희

목련꽃을 보면 생각나는 양숙은 하얀 미소가 아주 예쁘던 사람이었다.

화사한 웃음이 곱게 느껴진 삼십대 후반 젊은여인이다.

싱싱한 아침햇살처럼 피어 있어야 할 양숙은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는것 같은

짙은 아픔이 숨겨져있는 얼굴이었다. 

그녀가 회사에 면접을 보러 왔는데 첫인상이 예쁜 한떨기 목련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른 나이에 시집을 갔다.

그리고 취직이라는걸 해보겠다고 왔다.

직원들 점심과 샘플박스를 만드는 일을 하기에 아깝다는 말을 했다.

아니라고 말하는 양숙은 다음날부터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을 했다.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그녀가 해주는 점심은 날마다 고급 호텔에서

먹는것보다 더 맛이 있었다.

 

일주일 분 시장을 보면 토요일에는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았다.

경동시장엘 같이 가보면 메모지에 적어서 정확하게 일주일을 보낸다.

회사식당이라고는 하지만 밥이 맛이 있으니 항상 손님들이 들끓었다.

양숙과 나는 오래지 않아서 친해질 수 밖에 직원을 써보았지만 어디 직원이

사장 마음을 알던가!

직원은 직원입장이라는게 있고 사장은 사장입장이라는게 있어서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말은 나게되어 있다.

직원이 사장의 마음을 읽어서 일해준다면 사장이 그걸 왜 모르겠는가.

그런면에서 양숙은 내 마음에 드는 직원이였다.

 

어느날 양숙은 저녁이 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현재 이혼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 둘을 데리고 살고있는 양숙은 누가 보아도 야무진 아줌마였다.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이혼이 유행처럼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이혼을 생각해볼것이다.

그러나 막상 이혼을 하고나서 혼자가 되고나면 생각이 달라지는 여자들이 많이 있다.

양숙도 그 중에 하나였다.

어느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모습으로 출근을 했는데 보아하니 어제 저녁 마지막을 치른 모양이다.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기 싫은 이혼을 왜 해야하는지를 묻지도 않았다.

모두가 성년이기도 했고 자신의 이야기는 자신이 언젠가 하고싶을때 해야한다는게

내가 가지고있는 지론이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하려고해서 나는 양숙에게 말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니 목소리가 나온 다음 그때해도 상관이 없으니

지금은 목이나 다스리라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미소를 짖는 양숙의 얼굴은 많이 부어서 푸석 푸석해 보인다.

하얀 목련꽃같은 그녀에게 나는 다음날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했다.

양숙의 문제는 바로 남편이 마마보이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이혼부부의 몇프로를 차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마보이도 심각한 수준인가 보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양숙은 울었다.

나는 마음이 괜스리 아프고 울음을 그치기 위해서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그렇게 가슴이 아픈데 왜 헤어져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않았다.

부부 일이란 원래 둘밖에 모르는것이기에 그냥 들어 주어야 했고

나는 많이 냉정한 편이라서 둘의 이야기를 다 들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양숙이 하는 이야기는 들을뿐이다.

 

양숙은 며칠후 이혼을 했다.

그 다음날도 출근을 했는데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들어가라고 했다.

아이들이 없는 집에 들어갈 수 가 없다고 한다.

그럼 우리집에서 자고가라고 하면서 그날도 늦도록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양숙은 집을 옮겼고 집들이를 하겠다고 해서 가본 새집은 썰렁하기만 했다.

그 집에서도 양숙은 술에 취해서 내내 울고 또 울어댄다.

아이의 아빠가 엄마를 만나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게 하는것도 나는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새로 재혼을 한 사람에게도 적응 기간이 필요로 할테니까?

그런데 양숙은 그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나에게 그렇게 울며 불면서 날이 갈 수 록 심해지는 양숙을 보면서

나는 어느날 저녁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양숙씨 너만 힘드는게 아니야 . 아이들을 생각해봐. 아이들도 힘들거야.

그리고 너무 그 생각만 하지 말아. 결정을 한사람이 본인 아니야?

결정을 한것에 대한 책임도 져야지."

"그렇지요. 그런데 너무나 억울해요."

"억울한건 그 쪽도 마찬가지 일거야. 이러다가 병들어 조심해."

"그게 안돼요.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이혼하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하나씩 밀려올때마다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나보다.  

양숙은 이혼을 잘못 생각한 사람이었다.

마마보이였던 사람에게 마마보이를 고쳐주려고 이혼을 하자고 했더니

남편은 그날로 시댁에서 지내고 돌아오지를 않았다.

더 화가난 양숙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이 붙들줄 알았는데 이혼을 하러 법원에서 만나자고 한것이다.

화김에 이혼 도장을 찍어주고 와서도 이혼이 안되기를 바라는

양숙은 점점 시들어가는 꽃이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전화를 하면 할머니가 냉랭하게 받으면서 없다고 끊어버린다.

양숙은 점점 병이 깊어가고 있었다.

나는 양숙에게 몇번을 이야기했고 경선에게도 이야기를 했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한번 받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숙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위내시경을 했는데 암이라면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고대병원에 가보라면서 소견서를 써주었다고 했다.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면서 양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지금은 해외학회에 가야하니 2주후에 보자고 한다.

그렇게 말하고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사이를 기다리지못하고 양숙은 수술을 했다.

병실에 가보았더니 친정엄마가 와있었다.

나는 환자가 어떤 상황인지 의사선생님께 물었다.

위를 다 떼어냈다고 하면서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암이라는게 칼을 대면서 퍼진다고 한다.

젊은 사람의 경우에는 암세포도 더 빠르게 퍼져나가니까

조심하지않으면 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의사선생님은 내가 양숙언니라고 생각을 했는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양숙은 살아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컴퓨터에서 암에 좋다고하는 모든 약을 다 먹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나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컴퓨터에 나와있는 약이 검증이 되지않는 약이니 아무거나 먹으면 안된다고

잘라서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에게 많이 서운하게 생각을 했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는가.

알지도 못한 약을 어떻게 권한다는게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병원에서 퇴원을하고 양숙씨는 몇개월이 지나자

예전 모습을 찾아가는 듯 했다.

그래서 다시 회사에 다녀보라고 했다.

 

 

 

 

 

양숙은 여기에 피어있는 목련꽃 같았다.

2000년12월31일에 출발해서 1월3일 돌아오는 제주도 여행사진이

지금도 떠오른다.

고양에있는 그녀의 납골당에가면 제주도에 사진이 올려져있다.

짧게 간추려보려고 했으나 한편으로는 안된다.

줄거리만 쓸려고 하는데 나와의 추억이 많기에

그런가 보다.

나는 그녀의 납골당에가서 방명록에도 긴글을 써놓았다.

조만간 그녀가 있는곳을 찾아가서 디카로 찍어서 올리고 싶다.

이번에는 가면 양숙의 글을 세상에 내보냈다고 하고 싶다.

양숙님 이야기도 소설속에 등장한다고 이야기를 했었고 이제 시간이 되어서 하나씩 써나간다.

나는 늘 주위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필터없이 써보겠노라고 했으나

막상 써보니 필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제는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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