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 창작 한마당/사는 이야기

하얀목련 2

만년지기 우근 2008. 6. 21. 06:01

 

 

 

하얀목련 2

                       우근 김  정  희

 

양숙에게 나는 말했다.

우리 회사식구들 모두 가족들까지 포함해서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미리 예약을한게 아니라서 30명이나되는 식구들이 탈 비행기 좌석이 나오지 않았다.

2000년 12월 31일에 출발해서 1월3일날 오는 날이다.

양숙은 좋다고 했다.

 

제주도 나는 중학교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그때 제주도는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여러번 제주도를 갈때마다 제주도는 나에게 실망만 안겨다 주었다.

개발이 좋기도 하지만 옛날 모습 그대로를 간직할곳은 간직해야 한다.

제주도에 도착을해서 여러곳을 가보았다.

여미지 식물원에서 다들 입을 벌리고 좋다고 한다.

나는 바다에가서 해녀들이 잡아온 전복회를 다시 먹고 싶다.

이슬이에 전복 해삼을 먹고 싶다.

 

2001년 1월1일 일출을 보기위해서 성산일출봉으로 택시를 잡았다.

성산 앞바다에서 일출이 떠오르는데 새벽바다는 왜 이리 추운가!

가게집에 들어가서 이슬이를 시켜놓고 따끈한 국물에 먹고 나와도 춥다.

아이들도 추위를 잘견디고 있는데 나는 등산용파카를 사입었는데도

추워서 덜덜덜 떨고 있다.

양숙은 나보다 더 추위에 강했다.

새해아침 일출이 바다위에서 떠오른다.

구름에 가려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떠오르는 해에 무언가 있다.

바로 소주병이 그려져 있다.

나는 속으로 후후후 하 하하 웃으면서 보고있는데 보고있던 아이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어! 해속에 소주병이 있네?"

"하하하 그렇지? 누가 그 이야기를 먼저하나 했지?"

"자! 해에도 소주병이 떠있으니 소주나 마시러 가자."  

아침에 마시는 그날 이슬이는 왜이리 맛이 있었는지 모른다.

 

양숙과 나는 새해 아침을 같이 맞이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잘도하는 양숙은 나와는 전혀 다른 여자다운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런 양숙이 언제나 좋았다.

그리고 양숙은 내아들도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내가 바쁘기때문에 양숙은 치우에게는 엄마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니 이모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다.

매일 바쁜 엄마는 아예 무늬만 엄마였으니까?

성산 일출봉에서 뛰어가는 아들 사진을 찍었다.

직원들이 사진으로 1등을 했다고 한턱내라고 해서 내면서 나는 말했다.

1등을했으면 무엇을 주고 한턱을 내라고 해야지.

입으로만 그렇게 웃으면서 회식을 했었다.

 

나는 사실 잘하고 싶은게 몇가자가 있는데 두번째가 사진을 잘 찍고 싶었다.

그렇지만 사진기는 좋은걸 사본적이 없다.

지금도 나는 내 디카에 웬만큼 만족을하는데 가끔씩 좋은게 꼭 필요할때가 있다.

양숙은 예뻐서 제주도에 사진을 내가 많이 찍어 주었다.

삼십대의 양숙은 서울에 돌아와서 다시 근무를 했다.

기다렸던 직원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양숙은 몇달을 그렇게 다니다가 몸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새벽에 전화가 왔다.

 

병원에 재입원을 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이제는 끝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진통이 심해져서 도저히 감당이 안될 정도였다.

그 전화를 끊고나니 눈에서 핑하고 눈물이 나왔다.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양숙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수술을 하지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본인이 완강하게 원하여 2차 수술을했다.

오랜 병에는 효자가 없다고 하듯이 친정집에서도 한사람씩 나가 떨어지는 것이다.

한없이 양숙이 불쌍했다.

병원에서도 빨리 퇴원을 시키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양숙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나는 전화로 찾아가겠다고 했으나 본인의 해골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고 했다.

어느날 양숙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다가 보이는곳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동해바다가 보이는 강릉에 가시라고 했다.

양숙은 먹지를 못하기에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서 불쌍하다고 어머니도

전화통을 붙들면 울고 계신다.

자식이 먼저가면 가슴에다 묻는다고 하지않던가! 

 

회사 야유회를 속초로 가기로 했다.

나는 대관령고개를 넘으면서 전화를 했다.

야유회를 왔는데 나만 가보겠다고 했다.

전화를 받으시던 어머니가 다시 전화를 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괸령고개를 넘어서 우리는 속초를 달리고 있었다.

다시 전화가 울리더니 오지말라고 한다.

그래서 잘 보내라고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아이 아빠만 만난다는 것이다.

둘이 화해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내가 전화를 한지 2주후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말라고해서 안알렸는데 내가 전화한

그날밤에 양숙은 하늘로 갔다고 한다.

 

양숙은 39살 꽃다운 나이에 암으로 갔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기억되는 사람이 있을것이다.

혼자서는 세상을 헤쳐나가지 못하는 양숙은 마마보이라는 이유하나로

잘못된 이혼을 한것이다.

결혼을 했으면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인데  

내가 볼때 너무 쉽게 이혼을 생각했는데 막상 이혼을 하고보니 

세상은 험난하고 고독하다는걸 알았을때는 이미 건너간 물이었다. 

누구나 삶이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살아가는게 사실 만만치 않다. 

나는 속초를 갈때나 대관령고개를 넘노라면 그날 내가 전화를 잘했구나. 

저 세상에 먼저가서 다시 좋은곳에 환생하라고 생각날때마다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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