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21]화가로서 절망한 수화는 고독한 사람
우근 김 정 희
담배 한개피의 연상치고는 너무나 오래된 퇴색해버린
그림같은 잔영들이 그녀를 파고든다.
요즈음엔 그림도 그릴 수 없다.
캔버스에 끄적거릴 4B연필이라도 갔다대는 날엔
어김없는 환상때문에 시달려버리고 만다.
주름진 파카 잠바에 묻은 때를 바라보듯
찌들은 그림,아니 장난쳐버린 아니
답습이나 하는 그림이 이젠 무서워 진다.
국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 수화의 그림과 비슷하다.
누가보면 복사판 같다고 할만큼 거의 비슷했다.
그녀는 여기에서 환멸을 느꼈다.
긴 긴 수렁에 빠져 날마다 소주와 골뱅이로 허기진 배를 채우다 만난
먼 친척 오빠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너무 실망했어 오빠. 적어도 내가 그림을 그릴적에는 다른 사람이
그릴 수 없는것 즉 세상에서 아니 이 우주에서 나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이게뭐야 이게 뭐야"
하자 오빠는 침착하게 말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단다.그렇지만 나는 너같은 생각을 하질않았다.
그것은 견해 차이 아닐까?
나는 논문을 하나 냈는데 똑같은 논문이 두개가 나와있는 것이야.
그것도 기가 막히게 서론도 결론도 거의 같았고 참고하던 책도 같았다.
그분은 서울대 교수님이신데 하바드대에서 박사까지 받아오셨단다.
그 교수님께서 전화가 걸려와서 나는 알았다.
그때 난 힘이 생기던 걸"
머리가 갑자기 감전이 된듯이 번뜩였다.
같은 문제에 부딪쳤을때 수화는 뭐든지 부정적인 면으로만 생각을 했었고
좌절하려고 마음먹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오빠는 거기에서 힘을 얻었다니.
오빠와 이야기를 건성 건성 대충으로 끝내고 수화는 거리로 나왔다.
어디인지도 모를 생전 처음 걷는 거리 그것도 혼자서 ---
거리는 참으로 재미가 있었다.
볼거리도 많았지만 그러나 보지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걸어간다.
겨울 햇살이 유난히도 따사롭다.
다시 살아야 한다. 살아가야 해.
풀섭에 있는 이슬 한방울도 의미없이 생겨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아직도 살아남아서 무엇인가 세상에게 매듭을 풀어야만 한다.
삶의 매듭 인생에 대한 아직은 답이 나오지 않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내야만 했다.
인간은 어차피 혼자다.
엄마의 몸에서 혼자 떠돌아 다니다 혼자 태어남의 고독때문에 인간의 첫선물은 울음이라는
단어로 주어지지 않았던가.
울었다. 울지 않으면 죽은 아이였을게다.
그렇게 태어나 홀로의,홀로된 사랑을 즐기면서도 혼자라는 단어에 고독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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