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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서문 뚝지먼당길에 박경리선생님 생가가 있다

만년지기 우근 2008. 11. 29. 13:30

 

 

 

 뚝지 먼당길에서 나는 다리가 풀려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서문고개에 박경리선생님 친필이 보이고 지친 나는 캔맥주를 마셨다.

오른쪽 옆으로 캔맥주가 보인다. 

 박경리선생님이 태어나신 생가이다.

 

통영서문 뚝지먼당길에 박경리선생님 생가가 있다

                                                                                우근 김  정  희 

 

나는 원래 장편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철학을 전공으로 택했고 국문학을 부정공으로 공부했다.

환경이 바뀌어버려서 22년째 생명공학쪽에서 사업을 하다보니 내가 무얼위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박경리선생님의 "토지"는 남다르게 느껴진다.

서울에 살아가시던 동네가 정릉으로 알고 있다.

어느날 칩거하셔서 글만 쓰셨던 박경리선생님 가보지 않고 소설을 쓴다는게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드셨을까?

"김약국의 딸들"은 통영을 그대로 그린것이므로 글을 쓰시는데 좋으셨을까?

살아가는 모든 일이 자신과의 싸움이 아닌게 없지만 글이란 철저하게 자신과의 싸움이다.

명륜동 달동네에서 살고있는 지금 어려움이라는게 무엇인지 철저하게 아니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누군가는 글을 쓰기위해서 술집 작부도 해보고 파출부도 해보았다고 하지만

없어서 직접 당해보면서 체험하는 달동네의 삶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예전이야 육필로 원고지에다 썼던 시절도 원고지 값이 없어서 힘들어했을 글쓰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박경리 선생님께서는 왜 태어나셨던 집을 다시 찾지 않으셨을까?

나는 언제나 내가 태어난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게 인생이다.

나는 달력을 보면서 마지막 12월이 지나면 지천명을 맞는다.

50대로 들어서면 인생의 황금기가 올거라는 생각으로 나는 오십대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철이 들어간다는게 몇살이 되어야 들어갈련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 아침 일어나는데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겨울이 인사를 한다.

이제는 겨울을 맞이해야 한다.

통영서피랑이 시작되는 곳이다.

뚝지 먼당길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지치고 힘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너무나 귀하게 컸다.

창평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산에도 가보지 못했고 여름철에 깊은 물에도 들어가보지 못했다.

외할머니 몰래 가보기는 했지만 나는 39분이 안되어서 집으로 잡혀가면서 혼이 났다.

이렇게 키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귀할 수 록 모든걸 경험할 수 있게 키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랜 걸음을 하지 못한다.

뚝지먼당고개길에서 이미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더이상 걸음을 멈추고 싶었다.

 

서문고개에서 뛰어 놀았던 애기 박경리를 생각해 보았다. 

 

이돌은 어디에서 났으까?

돌담길이 멋져보이는 집이다 

멀리서 걸어오는 실비단안개 선생님을 기다리시는 김형진위원장님과 바다리님이다.

빨간 지붕이 보이는 집이 김춘수선생님께서 살았던 곳이다.

서피랑은 어떨까?

동피랑에 비해서 잘 사는 집들이 있다.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건.

잘 살았기때문일 수 있다고 보아야 할까?

아니면 예술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예술인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작품을 남길 수 있도록 여러 측면에서

도와주어야 하지않을까?

책을 읽지않는 국민이 얼마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호텔에서 커피 한잔 값이면 시집 한권을 살 수 있다.

12월이면 선물을 무엇으로 할까?

올해는 책으로 선물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지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서문고개에는 이렇게 두개의 박경리선생님 육필이 있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이제 서피랑이 나온다.

통영 바다모래로 만들었겠지? 

조개 껍데기가 많이도 있다.

서피랑을 오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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