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봉미산 신륵사 일주문이다.
산사에 가면 울리는 풍경소리가 2008년을 마무리 잘하라고 바람에 잡혀있다.
춤을 추고 있는 물고기 댕그렁 땡그랑 온누리에 퍼져 구름이 멈추어서 듣고 있다.
가을 하늘같이 파란 하늘위로 구름이 그림을 그려놓았다.
산사에서 보는 겨울나무는 나목으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풍경에 구멍이 숭숭 뚫어져 있네? 구름이 보이는 풍경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를 냈는지 잘가라 2008년이여!
여주 신륵사에서 겨울 하늘 구름과 풍경과 풍경소리가 지금도 귀에 잔잔하게 들린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다 보았다.
구름이 그려놓은 하늘에 안기고 싶었다.
저곳에 안기면 따뜻한 이야기가 흐를것만 같다.
여주 신륵사에서 본 겨울 풍경소리
허주 김 정 희
2008년 마무리를 지으면서 절을 가보고 싶어하는 제니퍼가 내일은 절에 가자고 한다.
양평 묘각사 큰스님께 전화를 해서 있으면 가자고 했다.
전화를 해보니 안계신다.
어디든지 떠나자.
강이 보이고 여행으로 가보고 싶었지만 가보지 못한 여주 신륵사에 가자고 한다.
여주에 도착해서 먼저 점심을 먹고 마음과 머리를 텅비어 버렸기에 아무것도 없다.
일주문을 지나자 아기예수탄생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제일 먼저 보인다.
어느해 구룡사에서 새해를 맞았을때도 보았던 현수막이다.
2008년 마무리와 새해맞이를 여주 신륵사에서 하고픈 마음으로 바람부는 신륵사 길을 걸었다.
새해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
세상살이는 힘들고 찌들은 마음의 때를 벗어던지고 강물에 아니 부는 바람결에 보내버리자.
산사가는 길이 평지여서 나는 좋았다.
겨울 갈대가 바람의 세기를 말해주었고 하늘에 태양은 빛나서 보이지 않았다.
눈이 아직 녹지 않는 겨울 한자락이 아름다웠고 하늘 구름이 얼마나 장관을 이루웠는지 모른다.
일주문 옆으로 보이는 여강이 유유히 흐른다.
구름이 물고기 모습으로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낙엽이 뒹그는 겨울 풍광 그 앞으로 배가 보인다.
절에 걸려있는 아기 예수님 탄생을 축하합니다.
이렇게 종교도 화합을 했으면 좋겠다.
교회를 다니시는 사람이나 절을 다니는 사람이나 정치가나 국민이나 이렇듯 화합을 해야하지 않을까.
어렵다고 말을해도 자신들 뱃속이나 채우려는 권력자가 아니라 진정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대통령이
우리에겐 있을 수 없는건지 ---
이 정부에는 절대로 뽑아준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광화문 촛불시위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TV도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나 너무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바보퉁이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는데 ---
천년고찰 신륵사에서 새해맞이를 하신분이 계실 것이다.
몇년전 나는 강화도 마니산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정상에 올랐다가 얼어 죽는줄 알았다.
그날 나는 절대로 새해 일출을 보겠다고 산에 오르지 않겠다.
바다라면 몰라도 추위에 떨면서 나는 생각을 했다.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사랑하는 까닭"으로 새해를 시작해보려 한다.
내나라를 내겨레를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그동안 읽었던 책을 오늘 다 읽었다.
"고구려.백제.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
작고 작은 우리나라가 아닌 대륙의 기질을 가진 큰 우리가 되어지기를 바란다.
역사에 남아있는 우리것을 찾았으면 좋겠다.
지평선을 바라보며 수평선을 바라보며 큰 꿈으로 다시 21세기에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강의 조포나루터이다.
겨울 빈배와 겨울철새가 멋진 풍경이다.
대나무 솟대 두마리 솟대에게 나는 2009년 새해는 지금 하늘처럼 푸르른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는
우리나라가 되기를 기도했다.
황포 돛배가 떠있고 겨울철새가 한가로이 노는 생명이 자연이 그대로 있는 섭리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삼보를 찍으면서 아름다운 인연들이 모여서 잘 살아가는 2009년을 열어갔으면 한다.
여주 신륵사 천년고찰에서 찍은 풍경 소리처럼 청아한 울림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기를 바란다.
신륵사 (남한 경기 절) [神勒寺]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봉미산 기슭에 있는 절.
신륵사 /신륵사 극락보전, 경기 여주군 ...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579~631 재위)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으며, 신륵사라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7 여주목불우조(驪州牧佛宇條)에 의하면 신륵사는 보은사(報恩寺) 또는 벽사(璧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벽사는 고려시대에 경내의 동쪽 언덕에 벽돌로 된 다층전탑이 세워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절이 대찰(大刹)이 된 것은 나옹화상(懶翁和尙:혜근)이 입적할 때 기이한 일이 일어난 뒤부터이다. 1379년(우왕 5) 각신(覺信)·각주(覺珠) 등이 절의 북쪽에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나옹의 초상화를 모신 선각진당(先覺眞堂)을 세우면서 많은 전각을 신축하고 중수했다. 1382년에는 2층의 대장각(大藏閣) 안에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발원해 만든 대장경을 봉안했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인해 절이 위축되었으나 1469년(예종 1)에 영릉(英陵:세종의 능)의 원찰(願刹)이 되었고, 1472년(성종 3) 절이 확장되고 다음해에 정희왕후가 보은사로 개칭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671년(현종 12)에는 계헌(戒軒)이, 1702년(숙종 28)에는 위학(偉學)·천심(天心) 등이 중수했다. 1858년(철종 9) 순원왕후(純元王后)가 내탕전(內帑錢)을 희사해 중수했다. 현존 당우로는 금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조사당(祖師堂:보물 제180호)·명부전·심검당·적묵당·노전(爐殿)·칠성각·종각·구룡루(九龍樓)·시왕전 등이 있다. 또한 다층석탑(보물 제225호)·다층전탑(보물 제226호)·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보물 제228호)·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보물 제230호)·석등(보물 제231호) 등과 같은 문화재들이 있다.
출처:브리테니커
눈에 아름다운 강아지 풀은 죽었을까 살아있을까.
이런 사람들이 많은 우리가 되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