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 창작 한마당/사는 이야기

유천리 겨울

만년지기 우근 2010. 12. 4. 09:52

 

 

 

 

 

 

 

 

 

서창아짐 2009년 뒷모습이다.

아직도 비녀를 하고 계신다.

살아가시면서 단 한번도 화를 내신적이 없다.

 

 

서창아짐집 대나무밭이다.

원래는 양쪽으로 대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나무가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니

창평 기순도 죽염공장이 유천리에 있다.

이길을 따라서 우회전을 하면 끝집인데 

옛날에는 택촌할머니집이였다.

 

 

빨간조끼를 입고 마을회관에 계시는 서창아짐 나를보시더니

반가워서 밥먹었느냐고 해서

아니.

나 배고파.

나는 팔순 노인인 서창아짐집에서 상추쌈에 밥을 새로지어서 맛나게 먹었다.

서창아짐은 어린 나에게 항상 말을 올리고

나는 말을 내리고 ~~~.

 

서창아짐도 나랑 오랫만에 집에서 밥을 같이 드시면서

너무나 좋아하시면서

우리는 한식구여.

사실은 막내 작은엄마가 큰딸이니

정확하게 따지자면 우리는 사돈이다.

국민학교 6학년때 효민언니가 작은엄마가 되어서

언니에서 작은엄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몇년이나 걸렸을까?

아마 대학생때도 작은엄마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작은엄마 해놓고 속으로는 어색해 하니까.

그 정도로 친하게 한집같이 살았던 사이였다.

 

 

서창아짐은 항상 단아하시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 내가 말하면 다 들어주었다.

내가 마을회관에서 서창아짐만 찾으니 사실

묘석엄마랑 다른분들은 안좋아 하실거다.

그런데 아빠가 아프고 그래서 외가에가도 항상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고향 창평면 유천리에 가서 살고 싶어하는데

동네 노인네들 아직도 나라면 너무나 좋아하시니까.

한실아짐 서창댁으로 오셔서

몰래 나물 한덩이 주시면서

꼭 서울에 가서 해먹으라고 한다.

서울로 가져와서 보니

시금치였다.

된장국과 나물을 해 먹었다.

나는 시골에 가고 싶다.

아니

아들이 크면 내려가서

글을 쓰는데

여기저기 자료가 필요로 하다.

내가 쓸거다.

상월정도 가보아야 하고

창평면도 자세하게 다시 조사해야 한다.

 

 

 

 

유천리 겨울

                           우근 김  정  희

 

내 고향 유천리 겨울 풍경을 보고 싶다.

용이는 재청이 아재가 중택이 잡아놓고

기다린다며 같이 가자 한다.

내가 국민학교시절 이야기이다.

더 어릴적부터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

용이 아버지 서창아재 술취하시면 동네사람들 아무도 못 말렸다.

용이는 안되고 외할머니 날 찾으면서 서창아재 집으로 모셔가라.

동네 사람들 모두 다 나에게 항상 맡겨 놓으면 되었다.

그 큰 목청은 어느산  기를 받으셨나.

월봉산이야.만덕산이야.

내가 달려가서 "서창아재 취했어. 집에 가야 해."

서창아재 나를 보며 "경자냐? 나 취했다.그래 이만 집에 가자."

지천명에 들어서보니 서창아재 마음을 알거 같아.

나는 말했다.

용아,우리가 아버지들 세대보다 더 못한거 같아.

서창아짐 알츠하이머라며 말하는 용이는 막내 아들이다.

날마다 서창아짐 전화드리는데 날마다 오랫만이라고 말한단다.

창평면 유천리에 인물이 나야 한다고 여름이면 부채선물 나에게 주셨는데

외할머니가 해마다 받으셨던 부채선물을 어느 해부터인가.

나에게 주시면서 서창아재는 세상을 말씀하셨다.

"그릇이 되어야 한다."

 

아무나 부채선물을 받는게 아니다.

외할머니 부채선물이 나에게 왔을 때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른다.

큰 사람되어야 한다.

외할머니 한숨쉬면서 혼자말로 하셨었지

"저게 아들이여야 하는데 --- ."

외할머니도 그러셨지만 외할아버지도 그러셨을거다.

아들이 아니라서 나도 그런 말을 들을때 마다 힘들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음의 세상이 올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태어나는 여자 아이들이 남자 사주가 많다고도 말씀하셨다.

어쩌면 지금을 미리 예견하셨는지.

대나무골 유천리 겨울은 푸르른 창공이었다.

하얀눈에도 대나무 잎파리에 햇살이 비추어지면 반짝이는 바람이 시샘을 한다.

서창아재집과 우리집은 담넘으면 된다.

아니면 골목으로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를 지나 대나무숲을 지나가면 된다.

겨울바람이 대나무밭을 지날때 바람소리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합창을 하기도 했지만 무서울때도 많았다.

통곡하는 소리,절규하는 소리로도 들렸다.

귀신이 우는 소리에는 머리가 쭈삣하게 서기도 했다.

고삿길에서 대나무는 그렇게 겨울을 여러가지로 보여주었다.

 

 

여기는 서창아짐집 화단인데

나는 어려서 서창아짐이 이 화단을 가꾼줄만 알았는데

아니였다

서창아재가 화단을 가꾸셨다는거다

안계시니 화단이 아니다.

사시사철 꽃으로 만발했던 용이네집 화단은 정말

작품이였다

 

 

탱자나무가 아직도 있다.

옆집은 수현이네집이다.

 

 

탱자나무가 봄이다.

 

 

 

서창아짐집 토종 하얀 민들레가 꽃을 만발하고 있다

 

 

용이네집은 소를 키워서

이렇게 큰 솟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

 

 

서창아재 글씨가 아닐련지 ~~~.

누구든지 알면 댓글 부탁해요.

 

 

서창아짐집에 바가지가대청에 가서보니 많이 있다.

서창아짐에게 바가지 선물로 달라고 했더니

2개만 고르라고해서

두개를 골랐는데

하나는 작은것

 

 

하나는 금간것을 나이롱줄로 꿰맨것을 택했다.

지금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옛날에는 이렇게 모든 물건을 아껴서 사용했노라고

그리고 지금 내방에 놓았다.

 

 

바닥이 보이는데 바로 대청마루다.

여름방학때 우리는 여기에서 붓글씨를 한두시간씩 써야 놀 수 있었다.

서당일까.

먹을 갈던 먹과 물을 담았던 연적도 그대로 있다.

벼루와 붓도 그대로 있다.

사진을 찍어왔는데

지금은 안올린다.

 

 

서창아짐집 미싱이다.

싱가가 아니네.

 

사실은 본 글을 수정할거다.

게으름이 자꾸만 친구를 하자고 한다.

이건 내 소설에 들어갈 이야기 이므로

유천에 가서 서창아짐에게 더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

올해로 87세이고 용이 말로는 알츠하이머가 60%이상 진행중이란다.

그래도 나는 알아보니 다행이다.

그런데 옛날하고 다른 건.

말을 내리신다.

아 ~~~.

서창아짐 확실하게 아프신게 맞다.

 

나는 맨날 만날때 마다.

내가 말을 내리는데 아짐은 왜 말을 올리는거야.

그럼 나 이젠 안온다.

아휴~~~.

그러면 안돼요.

우리는 한가족인데요.

내가 말을 내린 건.

애기때부터 였다.

그리고 애기때도 서창아짐은 누구에게나

말을 내리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용이한테도 그랬던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전라도 말로 싹아지가 없는지 모른다.

 

그렇게 금지옥엽들로 키웠으니

용이도 국민학교때는 저수지에 절대로 가지도 못했단다.

그럼 나만 그렇게 큰게 아니네?

 

 

 

지금 내방에서 방금 찍어서 보니

사진은 거짓말을 안한다.

아시는 분만 고개를 끄덕이시면 된다.

 

 

지하방에 냄새가 나지 말라고 여러가지를 말리고 있다

 

 

오가피가지와 잎들,황칠나무 잎들,쑥잎들이다.

2개의 바가지가 함께 있다.

큰바가지가 꿰매져 있는데

두번이나 꿰매져 있다.

안에는 두꺼운 바느질하던 실이다.

내방에 작품은 두바가지와 드라이 풀들이다.

난 이걸보며 언제나 내려가려나 하며

유천리에서 살아갈 날을 기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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