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 창작 한마당/사는 이야기

나에서 우리로 살아

만년지기 우근 2010. 12. 16. 05:58

 

 

 

 

 

 

나에서 우리로 살아

                                  우근 김  정  희

 

1987년 1월 3일부터 진성교역 경리로 일을 시작 했다.

교직을 이수했고 대학원도 다녀서 28살 나이에 여자가 취직을 하려니

아무곳도 없었다.

외대앞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옆자리.

운명은 어쩌면 우연이라는 가면을 쓰고 촛불잔치를 했는지 모른다.

고등학교시절 나는 수학이 좋았다.

수학의 공식이 좋았을거다.

다들 어렵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나는 잘도 풀었다.

그렇다고 누구의 도움도 없었다.

오직 수업시간에 열중하는 정신만 있으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수학이라는 학문이 좋다.

수학을 잘하면 철학을 많이 좋아하게 되고 문학도 좋을 수 밖에 없다.

학문이라는 걸.

왜 학교에서만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수학은 자연이다.

철학은 살아가는 것이다.

천부경을 보라.

나는 천부경을 보면 어쩌면 수학적일까 생각한다.

진성교역은 개업시작달부터 플러스가 났다.

나는 사업은 처음부터 플러스가 나야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새벽에 일어나서 "동방신선송과 나"라는 제목의 글을 쓰며

잡음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도 독수리타법을 고집하는 것은 글을 쓸때 한번 더 심사숙고하려고 한다.

단 한작품을 남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 소설 "동방"은 1986년 겨울 어느날 며칠동안 쳐박혀서 쓴 소설의 뿌리이다.

다시 2007년 소설을 정리하면서 토씨 하나도 틀리지않게 쓰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 시절 내 전부였으니까.

글은 어떠한 글이라도 단 한번도 같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걸 처녀라 생각한다.

즉 처음 순수라고 표현해도 좋다.

나는 철학을 전공했는데 일하는곳은 유전공학이였다.

그 시절엔 나도 잘났다고 생각해서 잘난 최고라고 생각하는 서울의대와 KAIST를 내가 거래하겠다고 했다.

더 중요한 건대 축산대 번식학 실험실과 한대 생물과를 거래했다.

나는 공부와 사업은 지금도 같다고 생각한다.

화요일 서울대병원 알러지내과 민경업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안 받으셔서 처음으로 메세지를 남겼다.

"명함이 새로 나왔습니다."

오후5시경 전화가 왔다.

광주라고 하시면서 내일 아침에 교수님 연구실에서 뵙자고 하신다.

9시에 선생님 방에 들어갔다.

아무말없이 디카를 들이대니 아~~~니 하시면서 일어나신다.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웃으면서 선생님 블로그에 내요.

아니요.

명함 먼저 보자고 하신다.

명함을 보시면서 두성비아이는 무슨뜻이예요.

두성斗成

뒷면을 보셔요.

DOOSUNG BIO INDUSTRY INC.

직위는 무언가요.

CEO.

두성 이번에는 명리의 대가이신 청관 김원희선생님께 부탁해서 지었어요.

머리를 끄덕이시며 좋아하신다.

언제부터 시작하시는 건가요.

2011년 1월1일부터요.

이번에는 제발 돈 많이 버세요.

사실은 두성이라는 회사 이름을 그냥 받아왔다.

왜.

내가 일을 해서 드리려 한다.

사업을 하다보면 청관선생님께 한두번 상의하겠는가.

평생을 조금씩 나누워서 드릴것이다.

선생님께는 말하지 않고 드린다.

 

그동안 바뀐 내 명함이 몇개야.

블랙이 되면서 해성부터 영진생명과학까지 해마다 명함이 몇개나 될까?

사실 작년부터 올해까지는 기도만 간절히 했다.

이 회사는 5월부터 시작 준비를 했다.

1987년에 30만원으로 월세방에서 영진무역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전화,직인,세금계산서,거래명세서,견적서,명함을 하고나니 삼천원이 남았다.

여자경리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2010년 현재 나는 차도 없고 직원도 없다.

작년에 3대의 차가 없어졌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 깜짝 놀라신다.

선생님 말할려면 길어요.

저는 태어날때부터 차가 있었는데 차가 없으니 돌아버릴것 같아요.

오늘도 나와 보니 추워서 ~~~.

회사는 어디에 있는지 주소를 보신다.

생명과학부주소는 연건동28번지를 목표로 합니다.

양치기소년처럼 명함만 여러개였다.

정신과 경제는 과연 같은가.

다른가.

순수하고 맑은 선생님들을 24년 보면서 경제를 너무나 잘 알지만

본인의 보이는 목표만 향해서 일한다.

제일 기분 좋을때가 무엇일까?

선생님 KDR아시지요.

10년전쯤에 들어보았는데 지금도 있어요.

선생님은 우리회사만 거래를 하셨다.

그렇게 거래한 선생님들을 나열했다.

선생님 얼굴에서 함박웃음이 나오시고 국세청에서 날라 온 뜯어 보지도 않은

편지 내용을 꼼꼼히 보신다.

아들 안부를 물으시면서 지금 몇학년이죠.

중3이요.

공부는요.

컴퓨터는 잘해요.

5살때 부터 시작한 컴게임으로 국민학교5학년때 5개게임 운영자를 했는데

지금도 열심히 컴만 해요.

누구보다도 아이를 걱정해 주신다.

차가 없으면 안되는데.

차 이야기를 하시는데 20여년 전 선생님 한참 열심히 연구하실때 생각이난다.

어느날 선생님께서 보자고 하신다.

가보니 연구비가 없는데 선생님 차를 팔아서라도 하셔야겠다고 말씀하신다.

얼마가 부족하신데요.

제가 연구비 나올때 까지 물건을 외상으로  드릴테니 차는 그냥 타고 다니세요.

우리나라 과학발전의 초석이 되신 선생님들은 자신의 집도 팔았고 차도 팔아서 연구비로 쓰셨다.

그건 생명과학사업을 한 내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지금도 벤처회사를 하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아직은 나도 말 할 수 없는 진실들이 있다.

사업을 시작하면 블로그에 글을 쓸 시간이 있을까.

아이를 위해서라도 달동네를 벗어나야 한다.

나는 지금 시작하는 사업으로 다른 나를 만들려고 한다.

나는 이제 바위가 되련다.

그래서 아픈 계란 하나라도 건져내야 한다.

없어보니 없는걸로 묶이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먹고 살아가야 그 다음에 일을 한다.

나는 연금으로 숨만 쉰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려한다.

선생님께서 이창주씨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신다.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답답한 법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느냐 하신다.

신경과에서는 6개월인데 정신과에서는 1년이라고 했더니

무엇때문에 그렇게 시간을 길게 끄느냐고 하셔서 지능지수검사가 다 나와야 하는데

내년 1월3일 받는다 했다.

내가 해도 그러는데 다른 사람들이 하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마마님 이야기도 나왔다.

선생님 들으시고 이번에는 꼭 잘해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시단다.

누구보다도 더 일하고 싶은사람이 나 아닐까.

24시간 365일 일만 열심히 했다.

나는 평생 내가 좋아하는 일만하고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일들을 해보니 아니지 다른쪽 사람들을 만나보니

우리쪽 선생님들이 얼마나 다른 차원인지 절실하게 느끼고 간절하게 일하고 싶었다.

지금부터 나는 회사를 위해서 혼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한다.

내가 회사를 위해서 일하고 회사는 나의 분신이다.

생각하고 키우고 성공을 이루기위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것이다.

수학을 공부했던 정열로 다시 재기할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오늘만 있으니까.

 

 

 

 

 

진해식물원 배일규원장님 3년전 원장님 댁에서 자면서 우리는 의형제를 맺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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