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 창작 한마당/사는 이야기

수저

만년지기 우근 2011. 1. 27. 02:40

 

 

 

수저

              우근 김  정  희

 

"밥상에 수저 하나 더 놓으면 될 일을 가지고 뭘."

"세상 인심이 그런게 아냐. 이것아."

과연 그럴까.

세상은 그렇게 되질 않아?

머리 비우는 일을 몇일동안 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솔직히 마음을 다 비워 보아도 머리 아프니 책이나 읽자.

정독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내가 해야만하고 할 일들이 나와야 하는데

생각은 자꾸만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1월7일 광주에 내려가서 이황희선생님과 늦은 점심을 먹고

다음 날 오후에 들어간 내 고향 유천은 상중이었다.

작년과 올해는 냉해이다.

저녁까지 말짱하셨던 분이 하루사이에 돌아가신거다.

동네에서는 쉬쉬하면서 하는 말.

"아들이 전화를 했는데 안받아서 집으로 와 보았더니 글쎄 앉은채로 돌아가셨데~~~."

심장마비였을거라는 심중이든다.

고혈압 약을 계속해서 드셨다고 한다.

나이도 사람들에 따라 다르다.

처음에는 60세라고 하더니 65세라고도 한다.

어쩌면 세상사는 일이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말을 들으면서 시골도 이제는 핵가족화 되어서 나이도 가물거리나 보다.

하기는 몇십년을 같이 살았으니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한가.

나도 가까이에 있는 젊은 친구들 나이가 햇갈리고 가물 가물거리니 그럴만도 하지.

1월9일 장례차는 마을 사는집을 한바퀴 돌아서 화장을 해서 한줌 흙이되어 선산에 모셔진단다.

"그래,우리 아빠는 그냥 산소로 갔었는데 ~~~. 산소에 들어 가셔서 그런가."

이 마을 풍습이 그렇다고 한다.

나도 이 마을 사람인데 그런 건 처음듣네.

살아야 할 시간이 더 많을까?

살아야 할 시간이 더 적을까?

이제 시골이나 서울이나 노인네들 마다 모두 다 혼자를 고집해서

밤새 안녕이 결코 남의 나라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은 이제 우리 차례다.

나도 아빠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 모시고 있어봐서 잘 알고 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반드시 몇번씩 전조 증상들이 온다.

정신도 혼미해지고 돌아가셔야 할 시간이 왔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계신다.

갑자기 어느날 머리를 감아야 되겠다고 하셨을 때.

나는 이제는 몇일 남지 않았구나 하고 머리를 내 손으로 잘라 주면서 눈물이 소리없이 흘렀다.

몇번씩이나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 보아야 했다.

나는 그때마다 따주기로 아빠의 위급상태를 넘겼었다.

병원에서 이제는 안된다고 집으로 모셔라고 했다.

아빠는 말씀하시는데 말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

정신이 혼미해지셨다는 거다.

그래서 몇일을 고민하다가 광주로 내려 가셔야 한다고 결정했다.

내 곁에서 가고 싶어하시지만 그건 아니였다.

광주로 모시고 가는 동생들이 마지막까지 내 비위를 건드렸다.

그래,너희도 살아 보아라.

더 살아보고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나이란 그냥 먹어 지는게 아니니까.

아빠를 마지막으로 보내면서 나는 하늘을 바라다 보았다.

하늘에도 눈물 한방울이 귀천을 하고 있다.

무지개빛이 눈에 영롱하게 빛나더니 또르르 주르르 흐른다.

그리고 일주일 후 네째 제부에게 전화가 왔고 또 유천 사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알면서도 말을 더듬거리시면서 나를 동생이냐고 물으신다.

나는 아빠 돌아가신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밤새 안녕하신 고향 동네 아줌마가 얼마나 고통속에 돌아가셨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 힘 안들게 편안하게 돌아가셨을까.

돌아가신 분은 몇시간전까지 일을 하셨다 한다.

저녁때까지 전화 통화를 했었다고 들었다.   

내가 만약에 그런 상황이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전화를 해서 받지 않으면 응급상황이다.

먼저 119에 연락을 해야 한다.

119가 집을 가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집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건 응급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은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자.

서울에서 유천까지 차로 왔는데 집 문이 열리지 않아서 비상으로 창을 뜯고 들어가보니 돌아가셨다는 거다.

고향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시골에는 노인들만 살아가신다.

몇분의 돌아가시는 모습을 들어 보아도 내내 아쉬운 점들이 많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홀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어 버렸는지 참 핵가족이라는게 뭐 그리 좋다고

요즘은 다들 같이 사는것에 넌더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박완서선생님께서 돌아가신걸 나는 몇시간 전에서야 알았다.

박완서선생님께서는 구리 자택에서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병원보다는 집에서 돌아가셨다는게 문학가로서 세심한 결정이셨다는 생각을 한다.

태어나서 살다가 돌아가는게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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